MZ세대는 직장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Ch.2 | EP.09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조직의 문화란 결국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집단적 방식이다.
Chapter 1. 왜 일하는가 – 5일을 행복할 것인가, 2일을 행복할 것인가(10회)
퇴근 후 사무실 구석,
회의실 앞 벽면에 기대앉은 채 눈물을 삼키던 신입사원 A의 모습은 오랫동안 동료들의 기억에 남았다.
그는 마케팅팀으로 배치된 지 한 달 만에 그날 같은 ‘소진’을 경험했다.
프로젝트 일정은 타이트했고, 팀장과의 소통은 일방적이었다.
사소한 실수에도 공개적으로 지적당하는 문화.
무엇보다 그의 감정을 알아주려는 분위기 자체가 조직 내엔 존재하지 않았다.
팀장이 물었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팀원들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게 예민한 건가…?’
문제는 A의 상황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조직이 감정의 작동을 ‘비효율’로 간주하며, 업무와 감정을 철저히 분리하는 문화를 고수해왔다.
이른바 ‘프로페셔널’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은 억제되거나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됐다.
감정은 곧 약점이었고, 업무 성과에 영향을 주는 ‘잡음’이었다.
특히 위계가 강한 조직일수록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곧 ‘비합리’나 ‘미성숙’의 증거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감정을 지운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은 효율적인 업무 수행이 아니라, 오히려 몰입과 소통의 단절이다.
감정을 주고받을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팀원들은 피드백을 피하고, 문제 상황에서도 침묵하며,
결국 ‘공감’ 없는 협업은 각자도생의 루틴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단절은 팀워크를 해치고, 구성원 개개인을 ‘로봇화’ 시킨다.
직무는 반복되는 기계적 루틴으로 축소되고, 피로는 점점 쌓여간다.
결국 사람들은 “일이 힘들다”가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는 말로 퇴사를 결심한다.
퇴사 사유로 공식 문서엔 ‘개인 사정’이라 쓰지만,
진짜 이유는 조직에서의 감정적 단절, 소외, 배제인 경우가 많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조직문화란 무엇인가?
목표를 향한 실행 절차만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그 실행이 ‘어떻게 느껴지는가’를 포함한 감정의 흐름까지 포함해야 하는가?
MZ세대가 조직에서 기대하는 것은 단지 자유로운 복지나 수평적 회의문화가 아니다.
그들은 점점 더 감정의 맥락을 중시한다.
왜 이 말을 하는지, 왜 이 업무를 해야 하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정적 납득’이 가능할 때 비로소 협업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설계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조직문화의 핵심 과제다.
20회차에서 우리는 조직문화가 감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는 구조가 아닌,
감정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함을 이야기할 것이다.
감정은 리스크가 아니라 자산이며, 조직 내의 감정 흐름은 생산성과 몰입을 좌우하는 동력이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곧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당신의 조직문화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일은 감정 없이 하는 게 프로지.’
많은 조직에서 여전히 통용되는 말이다.
감정은 사적인 것이고, 일은 공적인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특히 위계 중심의 문화에서는 감정을 통제하고 무표정하게 일하는 사람이 ‘성숙한 직장인’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이 오랜 통념은 MZ세대와 마주한 오늘의 조직에서 벽에 부딪히고 있다.
감정은 더 이상 배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설계하고 다뤄야 할 ‘일의 본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적 존재다.
특히 협업이 중심이 되는 현대의 조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구성원 간 신뢰가 기반이 되는 공동 작업, 팀 단위의 창의적 기획, 상호 피드백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감정은 언제나 배제 불가능한 요소다.
단지 ‘싫다, 좋다’의 기분을 넘어서,
감정은 내가 지금 느끼는 이해, 몰입, 거리감, 불안, 환대 같은 정서적 신호체계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감정은 업무 외적인 것으로 치부되어왔다.
이를 ‘관리’의 대상, 혹은 ‘참아야 할 감정’ 정도로만 취급하면,
일의 본질과 감정의 흐름을 단절시켜 버리는 셈이다.
이때 나타나는 가장 큰 결과는 협업의 단절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감정적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구조와 협업을 꺼린다.
아무리 뛰어난 기획자라 해도,
“이 팀은 나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지식과 의견이 공유되지 않는다.
말수가 줄어들고, 회의가 형식적으로 흐르며, 의견은 메신저에 쌓인 채 읽히지 않는다.
“좋은 피드백 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조직문화 개선의 단골 문장이다.
그러나 정작 피드백이 실제 업무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감정적 장치가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드백은 본질적으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받고 있다’는 감정의 교류다.
평가든, 제안이든, 감정 없는 피드백은 없다. 설사 아주 이성적으로 건넸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감정의 해석이 개입된다.
그러나 많은 조직은 이 과정을 간과한다.
피드백을 단지 '사실 전달'로 착각하고, “그냥 받아들여야지 왜 감정적으로 받아?”라며 수용자의 반응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본다.
여기서 문제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설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드백은 원래 불편하다.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사전 맥락 설명, 충분한 신뢰 관계, 수용자의 해석 여지 확보 등 감정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아무리 ‘좋은 말’도 폭력처럼 들릴 수 있다.
몰입을 ‘개인의 집중력 문제’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몰입은 감정의 흐름 위에 구축된다.
사람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자신의 일이 의미 있다고 느낄 때 몰입한다.
이는 감정적 기반 없이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다.
직무의 명확성, 업무의 자율성, 팀 내 신뢰감, 성취의 피드백 등 몰입을 유도하는 요소 대부분은
감정을 자극하고 감정을 설계하는 요소다.
즉, 감정은 몰입의 적이 아니라 촉매제다. 감정을 제거하면, 몰입은 따라오지 않는다.
불편한 감정을 줄이고, 긍정적인 감정의 루트를 설계해야만 몰입의 경험이 생겨난다.
흥미롭게도,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조직일수록 감정이 표출되는 방식은 더 ‘감정적’이 된다.
쌓이고 쌓이다 폭발하거나,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식이다.
반면 감정을 잘 설계한 조직은 감정이 ‘논의’의 대상이 된다.
감정이 격해질 일 자체가 줄고, 감정이 나타났을 때 수용과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이는 갈등 회피나 억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감정을 설계하지 않은 조직에서 감정을 참는 것은 억압이지만,
감정을 설계한 조직에서 감정을 관리하는 것은 전략이다.
공유오피스 기업인 패스트파이브는 단순한 공간 제공을 넘어 입주사의 업무 몰입과 감정 경험까지 설계한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입주사 만족도 조사’를 진행하면서 감정 중심의 문항을 활용한다.
단순히 “만족하십니까?”가 아니라, “일하면서 얼마나 편안함을 느끼시나요?”, “공간과 사람에 대해 신뢰감을 느끼시나요?” 같은 질문이다.
그 결과 구성원은 공간을 이용하는 고객의 ‘감정의 흐름’을 업무의 일환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피드백도 마찬가지다.
성과 지표는 ‘입주 유지율’과 같은 숫자지만, 그 이면에서 고객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함께 공유하며 해석한다.
덕분에 고객 대응 업무가 단순한 감정노동이 아닌, ‘감정 설계’라는 전략 업무로 전환됐다.
구글은 오래전부터 구성원의 감정과 신뢰를 피드백 설계의 핵심으로 두고 있다.
그들의 ‘피드백은 운동이다(Feedback is a muscle)’라는 슬로건은 감정을 감내하고 다듬는 활동으로 피드백을 정의한 접근이다.
‘피드백을 운동처럼’이라는 철학 하에, 피드백을 받는 사람의 감정 상태를 체크하는 루틴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피드백 예고제’가 그것이다.
“오늘 30분 동안 당신과 프로젝트에 대한 내 생각을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라는 예고는 받는 이가 감정적으로 준비할 시간을 준다.
또한 구글은 OKR 설정이나 리뷰 때마다 ‘감정 상태 공유’ 세션을 짧게라도 포함시킨다.
업무적 충돌이 발생하기 전 감정의 물꼬를 트기 위함이다.
이처럼 피드백은 단순한 업무 행위가 아니라 감정을 동반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며,
이를 전략적으로 설계한 조직은 결과적으로 몰입과 협업 수준이 높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는 한때 '높은 이직률'이라는 문제를 겪었다.
다양한 프로젝트와 유연한 조직 문화가 장점이었지만,
구성원 사이에서 "일은 재밌는데, 팀에 대한 애정이 없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조직은 ‘감정 미팅’을 도입했다.
이 회의는 업무 성과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정해졌다.
리더부터 먼저 “이번 주에 나는 어떤 감정을 많이 느꼈는가”를 나누고, 구성원들이 이를 듣고 감정을 반영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주 1회 이 회의가 정착되자, 팀 내 피드백이 자연스럽게 오갔고, 단절되었던 협업이 회복되었다.
특히 리더의 감정 설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는 이번 기획안 회의에서 팀원들이 말을 아끼는 것을 보고 많이 외로웠다. 혹시 나의 리딩 방식이 위계적으로 느껴졌다면 미안하다”는 식의 리더 발화는 감정적 안정감을 조직에 제공했다.
이로 인해 리더는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 흐름을 연결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확장되었다.
에어비앤비(Airbnb)는 조직의 정체성으로 ‘Belonging(소속감)’을 내세운다.
이들은 단순히 “우리는 따뜻한 조직입니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의 표현과 공유가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명확한 규범으로 설계했다.
예를 들어 신입 교육에서는 “동료의 슬럼프가 눈에 띌 때는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당신의 피드백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될 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등의 질문이 시뮬레이션과 함께 제공된다.
감정을 설계 가능한 요소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에어비앤비 내부의 피드백이나 협업 루틴에는 ‘감정을 다루는 언어’가 존재한다.
‘회피’, ‘수치심’, ‘연결’, ‘감사’ 같은 단어들이 공식 문서에 등장하며,
이는 구성원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유리한 문화적 토대를 제공한다.
“요즘 애들은 감정에 너무 휘둘려.”
이 말은 오랜 세대 간 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이는 감정에 ‘무관심한 조직 구조’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 있다.
MZ세대가 감정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환경에서만 몰입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세대인 것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조직의 문화란 결국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집단적 방식이다.
회의에서 어떤 말을 해도 무방한 분위기인가?
피드백은 정서적으로 안전한가?
갈등이 생겼을 때 감정을 억누르라고 하는가, 아니면 해석하고 조율하는가?
조직문화란 그저 사무실의 인테리어나 팀워크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팀원 개개인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 상사가 피드백을 전달하는 언어, 회의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우선 듣는지의 순서와 같이 아주 일상적인 상호작용에서 결정된다.
앞으로의 조직문화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 구조, 감정이 설계된 언어, 공감과 해석이 가능한 피드백의 방식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감정이 흐르지 않는 구조에서는 몰입도, 협업도, 지속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을 감추는 방식이 아니라, 감정을 조직문화에 반영하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
더 많은 감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덜 상하고, 더 솔직하며, 적절한 경로로 흘러가는 감정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회식이 줄고, 상명하복이 사라졌다고 조직문화가 없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새로운 문화’를 구축할 절호의 순간이다.
좋은 조직은 감정을 억누르는 문화가 아니라, 감정을 다룰 수 있게 하는 문화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문화는 리더의 말 한마디, 팀의 회의 방식, 피드백의 문장 구조에서부터 천천히 만들어진다.
“우리 조직에서 감정을 다룬 방식은 나에게 어떤 기억을 남겼는가?
그 기억은 나를 몰입하게 했는가, 떠나고 싶게 만들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