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 이전 세대의 다행, AI 이후 세대의 과제

[샤인이 찾은 요즘 세상]

나는 생성형 AI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학업을 마쳤다는 사실을 종종 다행으로 느낀다. 학위 논문을 쓰던 시절, 필요한 자료 하나를 찾기 위해 도서관 서가를 오르내리고, 교수님의 소개로 관련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구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날은 자료가 있는 곳이 지방의 작은 연구소라는 소식을 듣고, 하루를 통째로 비워 직접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얻은 한 줄의 정보는 그 자체로 무게가 있었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정보는 더 이상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키워드 몇 개만 입력하면 생성형 AI가 정리된 답을 내놓는다. 과거라면 수일, 수주가 걸리던 작업이 몇 분 만에 끝난다. 정보의 장벽이 사라졌다는 것은 인류의 진보이지만, 나는 한 가지 의문을 품는다. ‘정보를 쉽게 얻는 세대는, 과연 그 정보를 논리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AI 이전 세대는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비판적 시각을 체득했다. 자료를 찾는 데 실패하면 다른 경로를 모색했고, 여러 출처를 대조하며 신뢰성을 가려냈다. 이 과정이 ‘정보를 다루는 힘’을 길렀다. 반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정보의 양은 충분히 확보하지만, 그 경중을 가리고 쓰레기 정보를 걸러내는 식별 능력은 떨어진다. 짓뉴스에 휘둘리고, 편협한 시각에 갇히는 현상이 반복된다. 짧고 자극적인 숏폼이 지식 습득의 주요 경로가 되면서, 깊이 있는 이해보다 단편적 정보의 나열이 일상화됐다.


더 큰 문제는 지식을 쌓으면서도 공허함 속에 머무는 AI 시대의 학습자들이다. 학습이 기본에서 시작되지 않고, 응용과 결과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 교육 현실 속에서, 지식의 뼈대가 빈약한 채로 외형만 확장되는 경우가 많다. 응용은 화려하지만, 토대가 약하니 비판적 검증도, 창의적 재구성도 쉽지 않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AI 시대의 학업에는 단순히 자료를 ‘찾는 능력’이 아니라, 방대한 자료를 구조화하고 체계적으로 재편성하는 능력이 필수라는 점이다. AI가 던져주는 정보는 그 자체로 완성본이 아니다. 중복된 내용을 통합하고, 서로 다른 맥락의 자료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며, 주제와 목적에 맞게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지식’이 된다. 이 ‘자료 구조화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도 그저 산더미 같은 원석을 쌓아둔 것과 다르지 않다.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인간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지식을 내재화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양’이며, 교양의 핵심에는 철학이 있다. 철학은 사물의 본질을 묻고, 당연한 전제를 의심하며, 다양한 관점을 비교·검토하도록 만든다. 비판적 사고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바로 이런 철학적 습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철학과 교양은 저절로 몸에 배지 않는다. 습독(習讀)이 필요하다. 고전을 읽고, 다양한 사상과 논리를 접하며, 그것을 현재의 문제와 연결 지으려는 노력이 필수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권한다.


1. 분야별 고전 읽기 – 인문·사회·과학의 대표 저작을 정기적으로 읽으며, 분야 간 연결점을 찾는다.

2. 비판적 토론 참여 – 같은 주제를 두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논의하며, 논리의 허점을 찾아낸다.

3. 사색의 시간 확보 – 빠르게 소비하는 정보에서 벗어나, 한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재정리하는 습관을 들인다.


정보를 찾는 수고는 사라졌다. 그러나 생각하는 수고, 자료를 구조화하는 수고, 교양과 철학을 쌓는 수고는 여전히 우리 몫이다. AI 이전 세대가 경험한 ‘정보의 무게’를 이후 세대가 느끼게 하려면, 경험과 훈련, 그리고 교양과 철학의 토대를 잇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세대를 잇는 진짜 ‘지식 전수’이며,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을 인간의 경쟁력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신은 누구의 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