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사회, 복지국가 vs 최소국가

[진리 탐구 13] 롤즈 vs 노직

저녁 무렵, 한 대학의 강당. 사회학과와 철학과 학생들이 모여 “청년 세대와 정의로운 사회”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강단 앞에는 세 명의 학생 패널이 앉아 있다. 한 명은 학생회에서 활동하며 복지정책 확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인물, 또 다른 한 명은 경제학과 출신으로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를 맡은 학생은 청중의 질문을 받아가며 두 패널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마이크를 잡은 복지 옹호 학생이 먼저 입을 연다.
“청년 세대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건 기회와 안전망입니다. 우리는 학자금 대출로 출발부터 빚을 안고 있고, 취업은 좁은 문을 두고 경쟁해야 하며, 집값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노력만 강조하는 것은 불공정합니다.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해야만 청년은 공정하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란, 출발선이 공평하게 보장되는 사회 아닐까요?”


청중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이, 자유주의적 입장을 가진 학생이 반론을 던진다.
“저는 정반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년에게 필요한 건 자유로운 기회이지, 국가가 만들어주는 복지 울타리가 아닙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려 하면 결국 세금 부담으로 청년의 미래를 짓누를 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국가가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복지 확대는 좋은 의도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창의와 열정을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정의란, 각자가 노력한 만큼 얻는 자유로운 사회 아닐까요?”


순간 강당은 술렁인다. 두 입장은 모두 절박하고도 현실적이다. 한쪽은 롤즈적 관점에서, 공정한 출발과 사회적 안전망을 강조한다. 다른 한쪽은 노직적 관점에서,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의 절대적 보장을 옹호한다. 양쪽의 목소리는 단순히 이론적 논쟁을 넘어, 지금 청년 세대가 체감하는 삶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사회를 맡은 학생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청중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청년의 권리와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복지국가의 강화입니까, 아니면 최소국가의 자유입니까?”


강당은 조용해졌지만, 그 정적 속에는 무겁고도 진지한 사유가 흐르고 있었다. 어떤 이는 국가의 안전망 없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조차 얻지 못한 현실을 떠올렸고, 또 다른 이는 지나친 규제와 세금으로 자유로운 꿈이 꺾인 경험을 떠올렸다.


이 장면은 단순한 대학 토론이 아니다. 그것은 곧 정의로운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드러낸다. 롤즈와 노직이 던졌던 철학적 도전은 결코 먼 과거의 논쟁이 아니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매일 부딪히는 취업, 주거, 교육, 불평등, 자유, 기회라는 문제의 한복판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철학은 바로 이런 순간에 빛을 발한다. 추상적 개념으로만 여겨지는 정의, 자유, 복지라는 말들이 토론회장의 논쟁 속에서 구체적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쪽은 “사회적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공정한 사회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불평등이 있더라도 자유로운 교환과 선택이야말로 정의롭다”고 말한다. 이 양극단의 충돌이야말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이 책의 이번 회차는 바로 그 논쟁의 현장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롤즈와 노직, 두 철학자가 제시한 정의론은 복지국가와 최소국가라는 두 길로 갈라진다. 그러나 어느 한쪽의 목소리만으로는 청년 세대의 현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두 철학을 통해 우리가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가를 성찰하는 것이다.


오늘의 청년 세대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복지의 보호막 안에서 공정한 출발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최소국가의 자유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회적 선택이다.










철학적 배경 – 현대 정치철학의 두 갈래




정치철학의 역사는 언제나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어 왔다. 고대 플라톤이 『국가』에서 철인정치의 이상을 그린 이래,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용과 시민의 참여를 강조했듯, 철학자들은 시대마다 정의의 본질을 묻고 그것을 제도와 사회 구조 속에 구현하려 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이라는 두 가치가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이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산업화와 세계대전, 그리고 복지국가의 확대 속에서, 정치철학자들은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직면했다. 이때 두 가지 대표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하나는 존 롤즈(John Rawls)로 대표되는 정의론적 자유주의, 다른 하나는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으로 대표되는 자유지상주의적 최소국가론이다. 두 사람은 동시대 미국에서 활동했으며, 같은 자유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해답을 내놓았다.




1) 롤즈 – 공정으로서의 정의



롤즈는 1971년 출간된 『정의론』에서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사회가 정의롭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과 제도가 공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과 제도가 설계되는 원칙 자체가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유명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에 놓일지 모르는 상황, 즉 가난한 사람일지 부자인지, 장애인일지 건강한 사람일지, 교육을 많이 받을지 못 받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사회의 원칙을 정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롤즈에 따르면, 누구나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음을 알기에 합리적인 사람들은 최소한의 안전망과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원칙을 택할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두 가지 정의 원칙을 도출한다.


- 평등한 기본권 보장: 모든 시민은 동일한 기본적 자유(표현의 자유, 정치적 자유, 종교의 자유 등)를 누려야 한다.

-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허용되지만, 그 불평등이 가장 불리한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롤즈의 정의론은 단순히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과 최소자 보호라는 현실적 장치를 통해 불평등 사회 속에서도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길을 제시한다.




2) 노직 – 소유와 자유의 절대성



이에 반해, 노직은 1974년 『무정부, 국가,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Utopia)』에서 롤즈의 입장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복지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보았다. 노직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개인의 소유권은 절대적이다.”


노직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노동과 재능으로 얻은 소득과 재산에 대해 완전한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국가가 세금을 거둬 재분배하는 행위는 일종의 강제노동이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는 사회정의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회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자유로운 교환과 계약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결론은 명확했다. 국가는 치안, 국방, 계약 집행 같은 최소한의 기능만 수행해야 하며, 나머지 영역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시장에 맡겨야 한다. 복지국가는 선의로 포장된 강제이며, 진정한 정의는 자유로운 선택의 존중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3) 두 갈래의 대립 – 복지국가 vs 최소국가



이처럼 롤즈와 노직은 동일한 자유주의적 문제의식, 즉 “개인의 자유와 사회 정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지만, 그 해답은 정반대로 갈라졌다.


- 롤즈: 불평등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가장 약자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정의는 공정한 기회의 보장과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실현된다.

- 노직: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재분배는 부당하다. 정의란 오직 자유로운 선택과 소유권의 존중을 통해서만 성립한다.


두 사람의 논쟁은 단순히 학문적 갈등을 넘어, 이후 전 세계 복지정책과 자유주의 정책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 미국의 자유시장 모델은 각각 롤즈적·노직적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청년 세대와의 접점



이 철학적 배경은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청년들은 학자금, 주거, 일자리,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 앞에서 롤즈적 정의를 절실히 느낀다. 동시에 창업, 투자, 자기계발의 영역에서는 노직적 자유를 요구한다. “국가가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곧 “청년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 갈등은 철학의 언어로만 이해할 수 있는 추상적 문제가 아니라, 청년 세대의 일상과 직결된 현실적 과제다. 두 철학자의 사상은 서로 대립하지만, 청년의 삶 속에서는 늘 복합적으로 공존한다.









롤즈의 정의론 – 공정한 사회의 원칙




존 롤즈(John Rawls)가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을 발표했을 때, 철학계와 정치학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수십 년간 공리주의가 지배하던 서구 정치철학의 지형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원칙을 넘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근본적으로 다시 던졌다.


롤즈는 정의를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라고 불렀다. 이는 단순히 결과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불평등을 인정하면서도, 그 불평등이 모두에게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이익이 되는 조건 속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 무지의 베일 – 공정한 사회 설계의 출발점



롤즈의 사상은 유명한 사고실험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과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에서 출발한다.


가정해 보자. 사람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사회의 규칙을 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 누구도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놓일지 알 수 없다. 부자가 될지 가난할지, 남성일지 여성일지, 건강할지 병약할지, 심지어 능력이 뛰어난지 평범한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어떤 사회 원칙을 선택할까?


롤즈는 답한다.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을 고려하여, 가장 약자에게도 최소한의 보호가 보장되는 제도를 선택할 것이라고. 이렇게 도출되는 원칙이 바로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가 된다.


이 사고실험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특히 의미가 컸다.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 불평등이 여전히 만연했고,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조건에 따라 기회의 불평등을 경험했다. 롤즈는 이런 현실 속에서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철학적 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2) 두 가지 정의 원칙



무지의 베일 속에서 합리적 개인이 선택할 사회의 원칙은 크게 두 가지다.


1. 평등한 자유의 원칙
모든 사람은 기본적 자유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 정치적 자유(투표권, 피선거권),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절대적 토대다.


2.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허용될 수 있지만, 그 불평등은 반드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즉, 불평등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이 원칙은 단순한 복지정책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체가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 등 기본적인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국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3) 공리주의와의 차별성



롤즈가 제시한 정의론은 공리주의와 뚜렷이 구분된다. 공리주의는 전체 사회의 행복 총량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 방식은 소수의 권리를 희생시킬 수 있다. 예컨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고통을 정당화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롤즈는 이에 반대했다. 그는 사회가 아무리 번영해도, 그 혜택이 가장 약자에게 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보았다. 정의는 다수의 만족이 아니라, 모두가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는 질서의 보장 속에서만 성립한다.




4) 청년 세대의 맥락에서 본 롤즈



오늘날 한국의 청년 세대에게 롤즈의 사상은 더욱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청년들은 입시와 취업, 주거 문제에서 이미 불공정의 벽을 절실히 느낀다. 출발선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과 배경이 교육 기회를 좌우하고,

부동산 가격은 청년 세대의 주거 꿈을 가로막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미래 설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런 현실에서 롤즈의 “무지의 베일”은 중요한 성찰을 가능케 한다. 만약 우리가 사회 제도를 새로 만든다고 할 때, 지금의 청년이 느끼는 불평등 구조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합리적이라면 누구도 이 구조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청년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롤즈의 사유를 현실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5) 오늘날의 의의



롤즈의 정의론은 단순히 이론적 논문이 아니라, 오늘날의 정책 논의에도 뿌리 깊게 영향을 미쳤다. 복지제도, 교육 평등, 의료 보장, 사회적 약자 배려 등의 정책적 근거가 바로 이 정의론의 철학적 토대에서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롤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정말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이 질문은 청년 세대가 체감하는 불평등,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 기회의 편중 속에서 날마다 되살아난다.










노직의 최소국가론 – 자유와 소유의 절대성




롤즈가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복지국가적 질서를 제시했다면,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강력하게 반박했다. 1974년 출간된 그의 저서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Utopia)』는 당시 학계에 뜨거운 파장을 일으켰다. 노직은 사회 정의를 “공정한 분배”라는 결과에서 찾으려는 롤즈의 시도에 정면으로 맞서며,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았다.




1) 최소국가(Minimal State)의 개념



노직의 철학에서 핵심은 ‘최소국가(minimal state)’이다. 최소국가란 국민을 보호하고 기본적 법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는 국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가의 임무는 다음 세 가지로 국한된다.


1) 치안 유지 – 폭력과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

2) 재산권 보호 – 개인이 가진 소유를 침해받지 않도록 보장

3) 계약 집행 – 계약 관계가 공정하게 지켜지도록 강제


이 세 가지를 넘어서는 국가 개입, 특히 세금으로 재분배하거나 복지를 확장하는 행위는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간섭이라고 노직은 보았다.


그는 심지어 복지국가적 정책을 “타인의 주머니에서 강제로 돈을 빼앗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누군가가 열심히 일해 얻은 소득을, 정부가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거두어 다른 이에게 분배하는 것은 도덕적 강탈이라는 것이다.




2) 소유의 정의 – 정당한 획득과 이전



노직은 “정의로운 분배”를 논할 때, 결과의 균등이 아니라 과정의 정당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정의로운 소유가 성립하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 획득의 원칙
누군가가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자원(예: 토지)을 최초로 차지했을 때, 그것이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정당하다.


2) 이전의 원칙

소유는 자유로운 교환이나 증여를 통해 이전될 수 있다. 이 과정이 강제나 사기 없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정당하다.


3) 교정의 원칙

만약 획득이나 이전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면, 그것을 시정해야 한다.


즉, 소유의 분배가 아무리 불평등하더라도, 그 과정이 정당하다면 그것은 정의롭다는 것이 노직의 주장이다. 결과적 불평등은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3) 롤즈와의 정면 충돌



노직은 롤즈의 “차등의 원칙”을 특히 비판했다. 그는 말한다.

롤즈의 원칙은 불평등을 약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제한하려 하지만, 이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를 억압한다.

예를 들어, 어떤 농구선수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 많은 관중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고 그의 경기를 본다면, 그는 큰 부를 얻게 된다. 이 불평등은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다. 그런데 롤즈식 원칙대로라면 국가는 이 선수의 소득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어 재분배해야 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계약의 정당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노직은 이를 ‘윌트 체임벌린 사례’로 설명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원해서 지불한 돈이 특정 개인에게 집중되었을 뿐인데, 국가가 이를 다시 나누겠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정의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의 존중이라고 보았다.




4) 청년 세대와 최소국가



오늘날 청년 세대의 현실에서 노직의 주장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자유와 기회의 강조.
청년들은 종종 “내 노력과 성취가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취업, 창업, 투자 등에서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도, 세금과 규제가 과도하다고 느낄 때 노직의 자유주의적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 “내가 번 돈은 내 것이다”라는 직관은 많은 청년의 마음을 움직인다.


둘째, 불평등의 현실.
그러나 동시에 청년들은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몸소 경험한다. 부모의 배경과 자본의 크기가 기회의 차이를 만들고, 소득의 대물림은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노직의 철학은 현실의 불공정 문제를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즉, 청년 세대는 자유와 공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하고 있다. 창업 생태계, 스타트업, 크리에이터 경제 등은 노직이 강조한 자유와 자율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동시에 불평등의 심화와 부동산·교육 격차는 롤즈적 문제 제기를 피할 수 없게 만든다.




5) 노직의 사상의 현대적 함의



노직의 사상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시장 자유화라는 구호 속에 그의 주장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청년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것과, 그 기회의 출발선이 공정한 것은 다른 문제다. 최소국가는 자유를 보장하지만, 그 자유가 모두에게 동일한 가능성으로 주어지는지는 보장하지 않는다.








토론 장면 재현 – 롤즈와 노직의 대화




카페에서 열린 공개 토론



서울 시내 한 대학 캠퍼스의 작은 강당. ‘청년 세대와 정의로운 사회’라는 주제로 열리는 공개 토론회가 막 시작되려 한다. 무대 한쪽에는 차분한 미소를 띤 존 롤즈가, 다른 쪽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청중을 바라보는 로버트 노직이 앉아 있다. 청중석에는 대학생들과 청년 창업가, 취준생,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오늘 우리는 두 철학자의 목소리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첫 번째 발언은 롤즈 교수님께 드리겠습니다.”






롤즈의 발언 – 불평등을 조정하는 사회



롤즈:
“여러분, 사회는 단순히 개인의 경쟁장이 아닙니다. 각자의 능력과 재능은 단지 개인의 노력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사회적 배경, 가정 환경, 제도적 조건이 함께 만든 것입니다. 만약 출발선이 불평등하다면, 경쟁 결과도 불평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속에서 합의할 수 있는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아무도 자신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날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날지 알 수 없다면, 우리는 모두 최소한의 안전망과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를 원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년 주거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이들은 부모의 지원으로 손쉽게 내 집을 마련하지만, 다른 이들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삶의 기반을 불안하게 유지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런 격차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국가가 세금을 통해 일정 부분을 조정하고, 청년에게 주거·교육·일자리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차등의 원칙의 의미입니다.”


청중석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특히 월세와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롤즈의 발언은 따뜻한 위로처럼 들렸다.






노직의 반박 – 자유는 침해될 수 없다



사회자:
“이번에는 노직 교수님의 반론을 들어보겠습니다.”


노직:
“롤즈의 말은 듣기엔 매력적이지만, 그 속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자유의 침해입니다. 어떤 청년이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공했다고 합시다. 그는 열심히 일해 혁신을 일으켰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의 서비스를 구매했습니다. 이제 그는 부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가는 세금을 통해 그의 소득을 빼앗아 다른 이에게 나눈다고 합니다.


그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도둑질과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누구도 강제로 이용하지 않았고, 모든 부는 자발적 교환의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거나 앱을 만들어 수익을 얻는다면, 국가는 그 성과를 온전히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복지라는 명목으로 소득을 강제로 가져간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안전망이 아니라,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노직의 말에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몇몇 청년들이 박수를 쳤다.






롤즈의 재반박 – 자유는 평등 위에 서야 한다



롤즈:
“노직 교수님의 말씀이 단순한 사례에서는 설득력을 가집니다. 그러나 질문해봅시다. 모든 청년이 똑같이 스타트업을 할 기회를 갖고 있었습니까?


현실을 보십시오. 어떤 학생은 어릴 적부터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코딩 학원에 다녔고, 부모의 지원으로 창업 자금을 쉽게 마련했습니다. 반면 또 다른 학생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느라 창업의 기회조차 잡기 어려웠습니다.


자유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 자유가 실질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면 공허합니다. 저는 불평등을 줄이고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공해야 청년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유와 평등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해야 합니다.”






노직의 재반론 – 자유가 먼저다



노직:
“하지만 롤즈의 방식은 국가가 시민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도록 만듭니다. 세금을 더 걷고, 복지를 늘리며, 결국은 개인이 자기 성과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자유가 없는 평등은 결국 강제적 평등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창의성을 억누르고, 청년들이 열심히 노력할 이유를 약화시킵니다. 여러분이 번 돈을 국가가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도전하려 하겠습니까? 최소국가는 불평등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이기에 정당합니다.”






청년들의 개입 – 현실의 목소리



청중석에서 한 청년이 손을 들었다.
“저는 취업 준비생인데요. 롤즈 교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부모의 지원이 없으니 집을 구하는 것부터 너무 힘듭니다. 자유롭게 노력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또 다른 청년이 발언했다.
“저는 창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정부의 청년 창업 지원금 덕분이었습니다. 만약 그런 제도가 없었다면 저는 이미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을 겁니다.”


그러자 반대쪽에서 다른 청년이 말했다.
“저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입니다. 제 채널을 통해 번 돈을 세금으로 많이 가져가고 복지로 나눈다고 하면,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 노력과 창의성이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청년들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그러나 공통된 것은 그들 모두 ‘자유와 평등 사이의 균형’을 찾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대화의 마무리 – 열린 질문



사회자가 정리하며 말했다.
“오늘의 토론은 승부를 가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고, 청년 세대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 스스로 묻는 자리입니다.


롤즈 교수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롤즈:

“정의란 자유를 보장하되,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불평등을 줄이고 기회를 확장하는 사회적 합의 없이는 자유도 허상일 수 있습니다.”


사회자가 노직에게도 마이크를 넘겼다.
노직:
“자유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여러분의 성취는 온전히 여러분의 것이어야 합니다. 사회가 도울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강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를 지켜낼 때만 청년들의 도전 정신도 살아납니다.”


강당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누가 옳은지는 단번에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두 철학자의 대화가 청년 세대에게 깊은 질문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실제 사례 분석 – 복지국가와 최소국가 논쟁 속 한국 사회




1. 한국 사회의 청년 현실 – 주거, 일자리, 세금



오늘날 한국 청년 세대는 ‘정의로운 사회’를 둘러싼 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은 여전히 청년 세대가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러 있고,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는 여전히 가계의 큰 부담이다. 취업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정규직 진입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청년들이 체감하는 사회 구조는 불평등하고, 불안정하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주거 지원, 기본소득, 청년수당, 청년창업 지원 같은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롤즈적 입장)와, 이러한 복지가 과도한 세금 부담을 만들고 시장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반대의 목소리(노직적 입장)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2. 복지국가 논쟁 – 청년층의 지지를 얻는 이유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입장은 청년층에게 설득력을 가진다. 청년 주거 대책으로 시행된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 제도청년 희망 적금 지원은 많은 청년들이 실질적 혜택을 체감하는 정책이었다. 또한 코로나19 시기 정부가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불평등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이 사회적 안정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청년 기본소득” 논의도 주목을 받았다. 경기도에서 일부 시행된 기본소득 제도는 젊은 세대가 최소한의 소비와 학습, 자기계발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청년층은 특히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이 존재해야 자유로운 선택과 도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롤즈가 말한 차등의 원칙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3. 최소국가 논쟁 – 자유를 위협받는다는 청년들의 반론



그러나 청년 세대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 특히 창업, 프리랜스,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청년들은 과도한 세금과 규제가 도전의 자유를 막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한 청년 유튜버는 수익의 상당 부분이 세금으로 빠져나가면서 장비 투자와 콘텐츠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한다. 또 다른 스타트업 창업가는 “정부 지원금은 일시적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시장을 왜곡하기도 한다”고 비판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형식적으로만 창업을 시도하는 ‘좀비 스타트업’ 문제도 발생했다.


이들은 최소국가론자인 노직의 입장처럼 자유와 소유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지지한다. 국가는 최소한의 법과 질서만 보장하고, 나머지는 개인의 창의와 선택에 맡기는 것이 청년의 활력을 살린다고 본다.






4. 실제 정책 속 충돌 – 한국형 복지와 자유의 줄다리기



한국 사회의 현실은 이 두 입장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장이다.


- 기본소득 논의: 일부 지자체는 청년 기본소득을 도입했지만, 전국 단위 확대는 세금 부담 논란으로 가로막혔다.

- 주거 복지 정책: 청년 임대주택이나 보증금 대출 제도는 일부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정부 개입이 시장 가격을 왜곡한다’는 반발도 거세다.

- 청년 창업 지원: 정부는 막대한 지원금을 투입했지만, 성과 측정의 어려움과 도덕적 해이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롤즈와 노직의 대립이 단순히 이론적 논쟁이 아니라, 실제 한국 청년들의 삶 속에서 매일같이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5. 청년 세대의 목소리 – 균형을 원하는 시대



여론 조사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청년 세대는 복지 확대와 자유 보장의 균형을 동시에 원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대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주거·교육 같은 최소한의 안전망은 꼭 필요해요. 하지만 동시에 국가가 제 선택을 지나치게 제한해서는 안 돼요.”


다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 지원 덕분에 다시 공부할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내가 주체적으로 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복지와 자유가 함께 가야 합니다.”


이는 청년 세대가 단순히 복지국가냐, 최소국가냐의 이분법을 넘어, 실질적인 균형 모델을 원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6. 중간 연결



결국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롤즈와 노직의 철학을 동시에 살아내는 세대다. 불평등을 완화하고 기회를 확장해 달라는 요구와, 자유로운 도전과 자율성을 존중해 달라는 요구가 함께 존재한다. 이 두 목소리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가 한국 민주주의와 경제 정책의 핵심 과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음 단계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청년은 권리와 자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 하는가?”
이는 곧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철학적 프레임이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향한 청년의 선택





롤즈와 노직의 대립은 단순히 두 철학자의 이론적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청년 세대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적 딜레마이기도 하다. 주거·교육·의료와 같은 기본권 보장은 분명 필요하다. 동시에,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자유 역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문제는 이 두 가치가 늘 충돌한다는 점이다.




1. 롤즈와 노직의 대립, 그리고 청년의 체감



롤즈는 “정의는 사회 제도의 제1원칙”이라고 보았다. 특히 그는 차등의 원칙을 통해,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허용되더라도 그것이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될 때만 정당화된다고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청년 복지 확대는 정의로운 사회의 필수 요소다. 누구나 출발선이 다르지만, 제도적 장치가 있다면 청년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반면 노직은 “개인은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라는 급진적 자유주의를 내세웠다. 그는 복지 제도를 위해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조차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 침해라고 보았다. 청년 창업자나 프리랜서가 과도한 세금 부담 속에서 창의성을 잃는 장면은, 노직의 논지를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보여주는 실제 사례라 할 수 있다.


청년들은 이 두 논지를 ‘이론’이 아니라 ‘체감된 현실’로 경험한다. 장학금이나 청년 주거 지원을 받으며 롤즈의 필요성을 느끼는 동시에, 과세와 규제 속에서 노직의 주장이 피부에 와닿는다.






2. 자유와 평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이쯤에서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청년 세대는 자유와 평등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가?”


실제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자유가 과도하면 약자는 도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평등이 과도하면 개인의 창의와 선택이 마비된다. 문제는 이 균형점을 어디에 두느냐이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롤즈의 정의론은 제도적 기반을, 노직의 자유주의는 개인적 역동성을 보장한다. 즉, 제도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해 주고, 그 위에서 개인의 자유가 꽃필 수 있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이는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두 철학이 실질적으로 만나야 하는 지점이다.






3. 청년 세대가 배워야 할 선택의 태도



청년 세대가 이 균형 속에서 가져야 할 태도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비판적 수용: 복지 혜택을 받되, 그것이 무조건적 의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스스로의 주체성을 지켜야 한다.

2. 창의적 도전: 자유의 가치를 누리되, 그것이 불평등 심화를 정당화하지 않도록 공동체적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

3. 균형 감각: 제도와 자유를 대립 구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조건으로 이해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청년 세대는 이미 이 균형의 필요성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다. “복지가 있어야 자유를 실험할 수 있다”는 경험, “자유가 있어야 복지도 건강하게 작동한다”는 깨달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4. 다음 단계로의 연결



따라서 청년이 권리와 자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이론적 해설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미래를 설계하는 실천적 지침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 단계에서 이 논쟁을 결론 및 성찰로 끌고 가야 한다.
즉,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롤즈적 정의와 노직적 자유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결론 및 성찰 – 청년 세대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던져야 할 최종 질문




롤즈와 노직의 대립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청년 세대가 실제로 마주하는 사회적 딜레마의 축도(縮圖)다. 청년들은 불평등과 주거난, 불안정한 일자리 속에서 롤즈적 정의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로운 도전과 창의적 기회의 장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이 두 욕구는 결코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사회라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할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현실은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 왔다. 어떤 시기에는 복지 확대가 정치적 슬로건으로 부각되지만, 재정 문제와 이해관계의 장벽 앞에서 좌초되곤 했다. 또 다른 시기에는 자유와 창의가 강조되었지만, 그것이 곧 ‘경쟁의 무제한화’로 변질되어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문제는 이 둘의 균형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1. 청년이 직면한 현실적 질문



오늘의 청년 세대는 이미 다양한 질문을 안고 있다.

“나는 복지 제도의 수혜자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제도의 설계자로 나설 것인가?”

“나의 자유는 공동체의 책임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정의로운 사회란 단순히 혜택이 많은 사회인가, 아니면 공정하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 사회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정책의 선택이 아니라, 청년 세대의 삶의 방향과 직결된다. 주거·교육·노동·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 부딪히면서도 반드시 공존해야 하는 두 축이다.






2. 철학이 주는 성찰의 힘



철학은 이 갈등을 단번에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은 질문을 더 명료하게 던질 수 있는 힘을 준다. 롤즈의 목소리를 통해 청년들은 사회 제도가 얼마나 불평등의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를 묻고, 노직의 목소리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결국 청년 세대가 철학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양자택일이 아닌 균형”이다. 사회 제도가 공정하게 설계되지 않으면 자유는 특권이 되고,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다면 평등은 무기력한 구호에 그친다. 진정한 정의로운 사회는 자유와 평등이 서로를 보완하는 순간에만 탄생한다.






3. 청년 세대의 과제



따라서 청년 세대가 던져야 할 최종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균형점을 스스로 설계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실천할 것인가?”


이는 추상적 질문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직업을 선택할 때, 공정한 출발선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창업이나 스타트업을 도전할 때, 제도적 안전망이 어디까지 필요하며, 어디서부터는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져야 하는가?

정치에 참여할 때, 단기적 이익을 넘어 장기적 사회 비전을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청년 세대가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직접적인 지침이 된다.






4. 결론 – 청년의 철학적 실천



결국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길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거대한 국가 시스템의 변화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 속에서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의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철학적 사유는 곧 실천적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려는 자유의지는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같은 나무의 두 뿌리처럼, 함께 자라야 하는 가치다.


따라서 이 회차가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는 단순하다.
“청년이여, 정의로운 사회를 묻는 질문을 멈추지 말라. 그리고 그 질문을 삶 속에서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가라.”


그 순간 청년 세대는 단순히 미래의 수혜자가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의 공동 설계자로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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