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장님’에서 ‘부장’으로 ― 위계 대신 신뢰를 선택

기자조직의 수평문화 Part.2 | EP.1

수평문화란 조직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되돌리는 일이다.
기자조직은 그 언어의 힘으로
‘자율과 책임이 공존하는 신뢰의 조직’을 만들어냈다.


Part 1. 기자처럼 일하는 사람들(6회)

Part 2. 기자조직의 수평문화(1/4회차)

Part 3. 기자의 경력철학(6회)

Part 4. 조직은 기자처럼 구성원을 관리하라(6회)

Part 5. 기자형 조직의 경영철학(6회)




8화. ‘부장님’에서 ‘부장’으로 ― 위계 대신 신뢰를 선택








Ⅰ. "호칭 하나가 문화를 바꾼다"





한 언론사에서 처음으로 ‘부장님’이라는 호칭을 없애기로 한 날,
편집국 안은 묘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그날 이후, 회의실과 복도에서 들리는 호칭은 달라졌다.
“부장님, 이거 확인해주십시오.” 대신
“부장, 이 기사 방향 어떻게 보십니까?”
처음엔 모두 어색했다. 누군가는 예의를 잃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무례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자들은 깨달았다.
호칭의 변화는 단순한 언어의 조정이 아니라,
관계의 문법을 다시 쓰는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이 변화는 단 한 단어의 삭제로 시작되었지만,
조직의 공기가 달라졌다.
‘님’이라는 존칭이 빠지자,
지시와 복종 사이에 존재하던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졌다.
대화는 명령이 아니라 협의가 되었고,
회의는 보고가 아니라 토론이 되었다.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 생긴 것은 혼란이 아니라 신뢰였다.


“호칭을 버렸더니, 목소리가 커졌다.”
한 기자의 말처럼,
호칭 하나가 사라지자 구성원들은 자신의 언어를 되찾았다.
회의에서 의견을 내는 목소리가 늘었고,
부장은 부하가 아닌 동료로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언어의 실험이
조직의 ‘소통 구조’를 바꾼 것이다.






기자조직은 본래 위계가 약한 구조다.
현장의 판단은 늘 개인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기사는 조직보다 기자 개인의 책임으로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자율’은 곧 존재의 조건이다.
그러나 자율은 방임이 아니다.
기자조직은 자유를 지탱하기 위해
강력한 내적 규율과 상호 신뢰의 윤리를 발전시켜왔다.
그 신뢰가 바로 위계 대신 조직을 붙잡는 보이지 않는 끈이었다.


이 실험 ― ‘부장님’을 ‘부장’으로 바꾼 일 ― 은
그 신뢰를 언어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직급의 높낮이를 가리던 말 하나를 지운 순간,
조직의 권력구조는 평면으로 바뀌었다.
그 평면 위에서 사람들은
“누가 시켰는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중심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호칭은 단순히 부르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구조이자 조직의 철학이다.
‘님’은 위계를 강화하지만, 동시에 거리를 만든다.
기자조직이 이 단어를 지운 이유는
예의를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였다.
결국 언어가 문화를 바꾸고,
문화가 일을 바꾼다.

“호칭을 버렸더니, 목소리가 커졌다.
권위가 사라지자 신뢰가 생겼다.”


이 한 문장이 기자조직의 실험을 설명한다.
호칭 하나를 바꾸는 일은 작아 보이지만,
그 변화는 조직의 DNA를 바꿔놓는다.
그들은 더 이상 상하 관계가 아니라,
신뢰로 연결된 수평의 동료들로 일하기 시작했다.











Ⅱ. 기자조직의 수평적 DNA ― 자유를 지탱하는 규율





기자조직은 오래전부터 ‘위계 없는 협업’을 기본 구조로 삼아왔다.
신문사나 방송국의 편집국 안에는 직급이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그 위계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신입기자도 자신이 맡은 취재 주제의 주인으로서 움직이고,
부장은 단지 데스크(편집자)로서 기사 방향을 조율할 뿐,
명령하지 않는다.


회의에서 ‘부장님’ 대신 ‘부장’이라 부르는 이유도 같다.
그 순간 대화는 지시가 아니라 협업이 된다.
기자는 누구의 명령으로 일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는 기사,
즉 ‘서명’이 곧 책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 자율적 구조 속에서 기자는 매일 판단하고,
그 판단의 결과를 세상 앞에 내놓는다.






1. 자유와 규율의 공존



기자조직의 특징은 자유와 규율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기자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자유는 결코 방임이 아니다.
기자의 자율은 공적 책임(Public Responsibility)이라는 윤리 위에서 작동한다.


기사 한 줄, 문장 하나도
‘사실에 대한 공적 신뢰’를 전제로 한다.
즉, 기자의 자유는 ‘무엇이든 쓰는 권리’가 아니라,
‘무엇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과 검증을 포함한다.

그래서 기자조직에서는 상사가 부하를 통제하는 대신,
동료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검증하는 자율의 윤리가 존재한다.


기자의 자유는 책임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취재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진다.
이 구조가 바로 기자조직을 지탱하는 신뢰의 메커니즘이다.






2. 신뢰가 규율을 대체한다



다른 조직에서는 ‘규칙’이 통제를 대신하지만,
기자조직에서는 신뢰가 규율을 대체한다.
데스크가 기자에게 명령하지 않아도
기자는 마감 시간에 맞춰 원고를 제출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누구도 나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내적 자각 때문이다.


기자조직의 수평성은 방임이 아니라
자율적 규율(Self-discipline)의 결과다.
기자들은 스스로를 관리하고,
동료 간의 신뢰를 깨지 않기 위해 더 철저히 일한다.
즉, 외적 통제 대신 내적 윤리가 작동하는 조직이다.
이 신뢰의 구조가 기자조직의 핵심 DNA다.






3. 수평성과 효율의 관계



많은 기업이 수평문화를 이야기하지만,
기자조직의 수평성은 단순한 세대의 요구가 아니라
성과 중심 협업의 효율적 구조로 기능한다.
기자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결정을 빠르게 내리고, 현장에서 즉시 실행하기 위함이다.


현장의 상황은 늘 예측 불가능하다.
“본사 결재를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말은
기자의 세계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은 판단과 실행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때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는
단순한 문화가 아니라 업무 생존의 시스템이 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기자조직은
의사결정의 속도가 빠르고,
책임의 방향이 명확하며,
협업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4. 자유를 유지시키는 보이지 않는 질서



기자조직의 자유는
무질서한 자유가 아니라, 신뢰로 작동하는 질서다.
신입기자든 부장이든, 모두 같은 원칙 위에 서 있다.
‘사실을 검증하라’, ‘출처를 명시하라’, ‘책임을 져라’.
이 세 가지가 기자조직의 불문율이다.
누구도 이 원칙을 어길 수 없고,
그 원칙이야말로 기자조직을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이 신뢰의 질서가 있기 때문에
명령하지 않아도 일은 돌아가고,
감시하지 않아도 품질은 유지된다.
결국 기자조직의 진정한 힘은
위계가 아니라 자율적 신뢰 시스템(Trust-based System)에 있다.






핵심 문장
“기자조직의 자유는 무질서가 아니라, 신뢰로 작동하는 질서다.”







이 수평적 DNA는 기자조직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늘날 자율과 의미를 중시하는 뉴커리어형 인재에게
이 구조는 곧 일의 새로운 윤리 모델이 된다.
기자처럼 일한다는 것은,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움직이고,
스스로의 이름으로 책임지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이다.











Ⅲ. ‘부장님’을 지운 실험 ― 언어가 권위를 재편한다





2010년대 초, 일부 언론사들이 조용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 실험의 이름은 ‘호칭 파괴’였다.
“부장님” 대신 “부장”, “선배님” 대신 “선배.”
단 두 글자를 지우는 일.
겉으로 보면 단순한 언어의 변화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권력구조를 재편하는 거대한 시도였다.






1. “님”이 사라진 자리, 관계의 문법이 달라지다



기자들은 관계에서 ‘님’을 지우며,
서로의 역할만 남겼다.
그 작은 변화 하나로,
조직 내 의사소통의 방식이 바뀌었다.
호칭이 사라지자 ‘누가 위냐’보다
‘누가 주제를 주도하고 있는가’가 중요해졌다.


회의실에서 ‘부장님’이 아닌 ‘부장’이라 부르면
그 순간 대화는 명령이 아니라 의견 교환이 된다.
신입기자도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고,
부장도 방어적일 필요가 없다.
‘님’이 만들어낸 거리감이 사라지면서
서로의 언어가 가까워졌다.


이 변화를 이끈 한 편집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호칭으로 통제하지 않는다.
역할로 협업한다.”


이 문장은 기자조직의 본질을 드러낸다.
기자는 직급이 아니라 주제의 주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호칭은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협업의 구조를 결정하는 언어적 장치였다.






2. 언어의 변화가 만든 가시적 효과



이 ‘호칭 파괴 실험’은 예상보다 빠르게
조직의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첫째, 보고 체계가 단축되었다.
‘님’이라는 상징적 위계가 사라지자,
중간 승인 절차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부장님께 보고드려야 할까요?” 대신
“부장, 바로 공유드리겠습니다.”로 바뀌었다.
결정의 흐름이 단순해지면서
업무 속도가 평균 20% 이상 향상되었다.


둘째, 회의의 발언 구조가 바뀌었다.
기획회의에서 자유로운 발언이 늘어났고,
의견이 더 다양하게 교차되었다.
특히, 신입기자들의 참여도가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호칭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의사결정의 중심이 ‘경력자’에서
‘주제 담당자’로 이동한 것이다.


셋째, 심리적 위계의 해체.
‘님’이라는 존칭이 사라지면서
부장은 더 이상 권력자가 아니라
프로젝트의 편집자, 즉 조율자가 되었다.
이로써 조직 내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강화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친근함이 아니라
‘발언의 용기’를 가능하게 한 구조적 요인이었다.






3. 언어는 문화다 ― 인식의 재편이 행동을 바꾼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의 도구가 아니다.
언어는 인식의 구조를 규정하고,
그 인식이 다시 행동의 패턴을 결정한다.
기자조직의 ‘호칭 혁신’은 바로 이 언어-인식-행동의 사슬을 건드린 실험이었다.


‘부장님’은 존경을 의미했지만, 동시에
발언의 선을 긋는 단어였다.
‘부장’이라 부르자, 말의 높낮이가 평평해졌고,
대화의 속도가 달라졌다.
이 작은 언어적 평등이
조직문화 전체를 수평으로 이동시켰다.


언어가 권위를 상징하던 시대에서
이제 언어는 협업의 리듬을 만드는 도구로 바뀌었다.
말의 형식이 바뀌면
인식의 초점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행동의 규칙이 변한다.
기자조직은 ‘호칭의 언어’를 바꿈으로써
결국 조직의 심리적 작동 원리를 바꾼 셈이다.






4. ‘호칭의 실험’이 던진 메시지



이 실험은 단순히 ‘예의’의 문제를 넘어
조직의 철학을 재정의했다.
‘님’은 존중을 표현했지만,
동시에 거리의 장벽이었다.
이제 존중은 호칭이 아니라
관계의 질과 신뢰의 방식으로 표현된다.


기자조직의 호칭 실험은
수평문화가 단지 젊은 세대의 유행이 아니라,
협업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선택임을 보여준다.
언어의 혁신은 곧 관계의 혁신이고,
관계의 혁신은 곧 일의 방식의 혁신이다.






핵심 문장
“우리는 호칭으로 통제하지 않는다.
역할로 협업한다.”






기자조직은 호칭 하나를 지우는 일로
조직의 권위를 재편했다.
그 작은 변화가 거대한 구조의 변화를 만들었다.
이 실험은 결국, 언어가 곧 문화이며,
문화가 곧 리더십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Ⅳ. 수평문화의 심리학 ― ‘두려움 없는 조직’ 만들기





수직적 조직에서는 ‘실수의 보고’보다 ‘침묵의 회피’가 더 많다.
누구도 틀린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문제를 먼저 지적하기보다 “괜히 말 꺼내면 책임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결국 잘못은 쌓이고,
조직은 침묵 속에서 서서히 학습 능력을 잃는다.
이것이 바로 위계 중심 조직의 가장 깊은 그림자다.






1. 두려움이 만든 침묵의 구조



수직적 조직은 체면(facade) 위계(authority)를 동시에 중시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실보다 감정을 관리하고,
진실보다 상사의 기분을 먼저 살핀다.
회의에서 의견이 사라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괜히 나섰다가 틀리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실수는 죄, 침묵은 생존의 기술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침묵이 결국
조직의 ‘학습 속도’를 마비시킨다는 데 있다.
두려움이 언어를 막으면,
창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






2. 기자조직의 심리적 안전감



기자조직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자는 매일 틀릴 위험을 안고 산다.
새로운 정보를 다루고, 불확실한 사실을 검증하며,
공개된 공간에 자신의 판단을 드러내야 한다.
그들에게 완벽한 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자조직은 자연스럽게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위에서 돌아간다.


편집회의에서 후배 기자가 부장의 판단을 수정하거나,
데스크가 신입의 기사 제목을 그대로 채택하는 일은 흔하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더 정확하냐’다.
틀림이 곧 무능이 아니고,
의견의 충돌이 곧 반항이 아니다.
이 문화가 기자조직의 빠른 학습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다.






3. 틀림을 허용하는 조직, 빠르게 배우는 조직



“틀려도 된다.”
이 한 문장이 기자조직을 지탱한다.
기자는 매일 실수의 가능성 속에서 일하지만,
그 실수로부터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안다.
기사의 정정보도나 후속취재는
실패가 아니라 복기(Learning Loop)의 한 과정이다.
이 ‘틀림을 허용하는 구조’가
빨리 배우는 문화(Fast-learning Culture)로 이어진다.


뉴커리어형 조직에서 수평성은
단순히 권위를 낮추는 형식이 아니다.
그것은 학습 민감성(Learning Agility)을 높이는
하드웨어적 시스템이다.
누가 말하든 경청하고,
누구의 아이디어든 실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조직은 더 빠르게 성장한다.






4. 위계가 사라지면, 책임은 어떻게 되는가?



많은 관리자는 묻는다.
“위계를 없애면 책임이 흐트러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기자조직의 사례는 정반대의 답을 준다.
위계가 사라질수록,
신뢰 기반의 자율책임 구조(Self-accountability)가 강화된다.


기자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사에 서명한다.
그 한 줄의 이름이 곧 공적 약속이다.
누가 감시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검열하고,
동료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윤리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자조직의 진정한 통제 시스템이다.
즉, 위계의 부재가 책임의 해체가 아니라,
책임의 내면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5. 인간성을 회복하는 수평의 언어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문화는
서로의 인간성을 기억하게 한다.”
기자조직이 호칭을 바꾼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장님’이라는 존칭 속에는 역할보다 권위가 숨어 있고,
‘선배님’이라는 말 뒤에는
말하지 않아도 따라야 하는 암묵적 복종이 있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사람은 직급이 아니라 사람으로 다시 인식된다.
이름으로 부르는 관계는 상대의 개성과 감정, 인간성을 회복시킨다.
결국 수평문화란 인간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두려움이 없는 조직’이란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조직’이다.






6. 수평문화가 주는 심리적 회복력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서
창의(Creativity)가 피어나고,
신뢰의 기반 위에서 몰입(Engagement)이 자란다.
사람들은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장 용기 있는 제안을 내놓는다.
그 용기가 조직을 앞으로 움직인다.


결국 수평문화의 핵심은 ‘평등’이 아니라 ‘심리적 안전’이다.
심리적으로 안전한 조직만이
빠르게 배우고, 깊게 몰입하며,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조직 시사점

위계보다 관계의 질,

통제보다 신뢰의 강도,

보고보다 소통의 깊이가 중요하다.


인용 문장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서 창의가 피어난다.”





기자조직은 오랜 세월 동안
두려움 없는 수평문화를 통해
신뢰와 책임을 동시에 키워왔다.
그 구조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자율적 혁신이 가능한 조직 심리의 설계도다.












Ⅴ. 신뢰가 만드는 속도 ― 수평적 결정의 생산성





많은 이들은 수평적 조직을 ‘자율은 있지만 속도가 느린 구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자조직은 그 정반대의 사례를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엔 회의가 많고, 토론이 길어 보이지만
실제 의사결정의 속도는 놀랍도록 빠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의사소통 단계가 짧고, 실무자의 판단권이 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1. 수평은 느림이 아니라, ‘즉시성’의 구조다



기자조직의 하루는 ‘속도’와의 싸움이다.
뉴스는 실시간으로 변하고,
사건은 언제든 예고 없이 터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가 명령을 내렸는가’가 아니라,
‘누가 가장 빨리 판단할 수 있는가’이다.


현장에서 취재 중인 기자는 부장이나 국장의 결재를 기다리지 않는다.
판단은 현장에서, 책임도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본사 데스크는 단지 방향을 조율할 뿐,
‘지시의 허브’가 아니라 피드백의 허브(Feedback Network)로 작동한다.
이 구조 덕분에 기자조직은 수직적 체계보다
훨씬 빠르게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2. 데스크는 명령자가 아니라, 피드백 네트워크다



기자조직의 데스크 구조는 일반 기업의 관리라인과 다르다.
데스크는 명령을 내리는 자리가 아니라
정보를 흐르게 하는 교차로이다.
현장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데스크에 전달하면,
편집자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고,
다시 기자는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현장을 보완한다.


이것은 ‘상명하달’이 아니라 ‘양방향 순환’이다.
명령보다 피드백이 빠르고,
지시보다 질문이 많다.
이 구조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오히려 정보의 명료도와 결과물의 품질을 동시에 높인다.
이것이 바로 수평적 결정 시스템의 생산성 메커니즘이다.






3. 수평적 신뢰가 만드는 속도



수평문화가 빠를 수 있는 진짜 이유는 신뢰다.
기자는 상사의 결재가 아니라
서로의 신뢰로 움직인다.
“그가 쓴다면 사실일 것이다.”
이 암묵적 신뢰가 보고 단계를 줄이고,
결정을 즉각 실행으로 전환시킨다.


즉, 신뢰가 곧 승인 시스템이다.
이는 공식 결재보다 훨씬 빠르며,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준다.
수직적 명령체계에서는 속도가 위계에 갇히지만,
수평적 구조에서는 신뢰가 그 위계를 대체한다.
결국 신뢰는 가장 강력한 ‘업무 가속기’가 된다.






4.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높이는 시스템



수평성은 단순히 빠르기만 한 구조가 아니다.
그 속도는 품질의 밀도와 함께 움직인다.
왜냐하면 기자조직의 피드백 네트워크는
지시가 아닌 검증의 순환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초고를 쓰면 즉시 피드백을 받고,
그 자리에서 수정한다.
이 과정은 “결정 후 수정”이 아니라
“진행 중 피드백”이다.
결과적으로 완성 속도는 빨라지고,
품질은 더 정제된다.


기업에서도 이 구조는
애자일(Agile) 시스템의 핵심 원리와 같다.
짧은 주기, 빠른 피드백, 즉각적 실행.
수평적 조직은 이 리듬으로 돌아간다.






5. 수평의 본질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



수평적 구조의 핵심은
‘권한의 분산(Distribution of Authority)’이 아니라
‘책임의 분산(Distribution of Responsibility)’이다.
모두가 각자의 기사를 책임지는 구조,
책임의 수평화(Horizontal Accountability)가 작동한다.


기자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사를 내보낸다.
그 이름이 바로 신뢰의 서명이며,
조직은 그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모두가 스스로의 결과물에 책임을 진다.
그 책임이 곧 자율의 질서를 만든다.






6. 애자일 조직과 기자조직의 공통점



기업에서 말하는 ‘애자일 조직’이란
결국 수평적 신뢰와 피드백 순환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기자조직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 방식을 실천해왔다.


애자일의 핵심은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배우는 것’.
기자조직은 매일 그 과정을 반복한다.
기사 한 줄의 오보도 즉시 수정되고,
새로운 팩트가 나오면 바로 갱신된다.
이 속도는 권위가 아니라 협업의 리듬에서 나온다.






핵심 문장
“수평적 조직은 느슨하지 않다.
오히려 가장 빠르고 명확하다.”







기자조직은 느슨한 자율이 아니라
정확하고 명확한 자율로 움직인다.
그들의 속도는 명령이 아닌 신뢰에서,
그들의 품질은 권위가 아닌 책임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바로 수평문화가 만들어내는
신뢰 기반의 생산성이다.










Ⅵ. 호칭 파괴 이후의 진짜 변화 ― 문화의 지속 가능성





언어를 바꿨다고 해서 조직문화가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부장님’ 대신 ‘부장’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곧바로 수평적 조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짜 변화는 언어 이후의 구조,
제도적 문화(Structural Culture)로 이어질 때 완성된다.


기자조직은 호칭 파괴 실험을 일시적 이벤트로 끝내지 않았다.
그들은 그 변화를 조직의 일상 리듬 속에 심었다.
그 결과, 수평문화는 구호가 아니라 습관이 된 문화로 정착했다.






1. 언어의 변화만으로는 조직이 달라지지 않는다



많은 기업이 수평문화를 표방하며
호칭을 바꾸거나 직급 체계를 단순화했지만,
그 중 다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원상복귀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언어만 바꾸고 구조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님’을 없애면 거리감은 줄지만,
피드백 시스템이 그대로라면 위계는 여전하다.
회의에서 상사가 여전히 말의 끝을 정리한다면,
호칭이 아무리 수평적이어도
조직은 심리적으로 여전히 수직적이다.


기자조직의 차별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호칭을 지운 뒤,
그 빈자리에 신뢰를 작동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세웠다.






2. 기자조직이 만든 세 가지 지속 구조



호칭 실험이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래 세 가지 구조적 시스템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① 피드백의 일상화
기자조직은 ‘위-아래’를 구분하지 않는 상시 피드백 구조를 갖추고 있다.
데스크와 기자, 선배와 후배의 경계 없이
누구나 기사에 의견을 낼 수 있고,
그 의견은 평가가 아니라 ‘보완의 제안’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수평적 토론 문화가 일상이 되었다.


② 성과의 투명성
기자의 기획이나 보도는 모두 공개된다.
누가 어떤 아이디어를 냈고, 어떤 결과를 냈는지
편집국 전체가 공유한다.
이 투명성은 ‘위계적 평가’가 아니라
‘공동의 학습’으로 기능한다.
누구의 아이디어라도 좋은 결과를 내면,
그 성취는 모두의 자산이 된다.


③ 존중의 합의
자유로운 발언이 보장되지만,
그 자유는 결코 무례를 의미하지 않는다.
기자조직은 일찍이 ‘비판은 사안에 대해, 존중은 사람에게’라는
비공식 원칙을 합의했다.
이 덕분에 수평적 논쟁 속에서도
인격적 존중이 유지된다.
즉, ‘호칭의 권위’ 대신 ‘존중의 규율’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3. 호칭 실험이 키운 것은 ‘조직 신뢰의 리터러시’



결국 호칭의 실험은 단순히 언어 실험이 아니라,
신뢰의 리터러시(Trust Literacy)를 학습한 과정이었다.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① 명확한 피드백,
② 결과의 투명성,
③ 상호 존중의 규율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될 때,
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조직의 기술로 기능한다.


즉, 기자조직은 신뢰를 설계한 조직이다.
신뢰가 자동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상호작용 속에서 ‘관리되고 편집되는 가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4. 뉴커리어형 조직에 주는 시사점



뉴커리어형 조직이 이 모델에서 배울 점은 명확하다.
수평성은 선언이 아니라,
심리적 수평성(Psychological Flatness)의 제도화다.
호칭을 지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려움 없는 피드백’, ‘투명한 성과 공유’,
‘존중의 합의’가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문화적 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이 회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면
조직은 위계의 통제를 잃지 않고도
자율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진짜 수평문화는 자유의 결과가 아니라
신뢰의 설계도에서 비롯된 문화다.






인용 문장
“호칭은 사라졌지만, 존중은 더 깊어졌다.”






호칭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관계의 문법’을 바꾸는 일이다.
기자조직은 그 문법을 언어 → 구조 → 신뢰 → 문화의 순서로 정립했다.
이 과정이 바로 수평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원리다.












Ⅶ. 정리 ― “호칭이 사라진 자리, 신뢰가 남았다”





기자조직의 수평문화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다.
그것은 ‘젊은 조직의 유행’이 아니라,
세대와 산업을 넘어 작동하는 철학의 구조다.
그 철학의 핵심은
‘위계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높이려는 시도’에 있다.






1. 위계 해체가 아니라, 신뢰의 재구성



기자조직은 위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편집장은 여전히 편집장의 역할을,
부장은 부장의 책임을 갖는다.
하지만 그 역할의 본질은 ‘지시’가 아니라 조율과 지원이다.
위계의 형태는 남아 있어도,
그 속을 채우는 힘은 신뢰의 밀도로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수평문화의 본질이다.
위계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위계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는 일.
기자는 이를 통해 조직을 ‘명령의 구조’에서
‘의미의 구조’로 전환시켰다.






2. 호칭의 평등에서 책임의 평등으로



뉴커리어형 조직이 기자조직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호칭의 평등’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다음 단계인 ‘책임의 평등(Equality of Responsibility)’이다.


호칭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호칭이 바뀌어도
책임이 여전히 위로만 몰려 있다면
그 조직은 수평적일 수 없다.


기자조직은 누구나 자기 기사를 책임진다.
누가 결재했는지보다
‘누가 쓰고, 누가 검증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 구조는 곧 ‘자율적 책임’이라는 이름의 평등이다.
모두가 스스로의 결과물을 책임질 때,
조직은 진정으로 평등해진다.






3. 인간을 다시 중심에 두는 문화



수평문화의 본질은 인간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높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를 대하는가”이다.
호칭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서로를 인간으로 대하는 태도의 윤리다.


기자조직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조직은 제도로 움직이지만,
문화는 사람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이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을 바꾼다.






4. 신뢰로 운영되는 조직의 모습



기자처럼 일하는 조직은
위계로 통제하지 않고, 신뢰로 운영된다.
그 안에서는 명령보다 피드백이,
감시보다 자율이,
지시보다 책임이 앞선다.


이런 조직에서는 리더의 힘이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리더의 진짜 권위는
‘얼마나 신뢰를 축적했는가’에서 나온다.
그 신뢰가 구성원을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결국 조직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만든다.






마무리 문장
“부장님이 사라진 자리에서,
진짜 부장은 다시 태어났다.”







기자조직의 수평문화는
‘호칭 파괴’라는 작은 언어 실험으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신뢰의 문화 혁신이었다.
호칭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백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질서가 남았다.
그 질서는 위계보다 단단하고,
명령보다 빠르며,
감시보다 따뜻하다.


결국, 수평문화란 조직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되돌리는 일이다.
기자조직은 그 언어의 힘으로
‘자율과 책임이 공존하는 신뢰의 조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여전히,
오늘의 뉴커리어형 조직이 가장 배워야 할 리더십의 미래다.



keyword
이전 07화밤샘의 미학 ― 몰입과 소진의 경계를 관리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