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성인 교육 도메인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다. 필자가 기획부터 운영까지 도맡았던 상품 중 온라인 무료 포맷의 교육 상품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이 상품은 고객을 탑티어 IT 회사(일명 네카라쿠배)에 신입 개발자로 취업시키는 것이 목표고, 개발자 취업에 필요한 모든 학습 콘텐츠 및 서비스를 제공하며 교육 기간 동안 발생하는 비용은 전액 무료다.
이 상품의 핵심 컨셉은 서바이벌이다. 고객이 정해진 일정마다 소정의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탈락하는 시스템이다. 대신 통과한 고객은 계속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심화 콘텐츠 및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취업 연계 프로그램까지 받을 수 있다. 무료라는 장치로 고객을 많이 모은 다음, 앞단의 보상과 뒷단의 페널티로 고객을 공부하게 만드는 구조인 것이다.
필자의 예상대로 교육 과정 초반에 고객이 대거 탈락했다. 대부분 소정의 서류(이력서, 자기소개서 등)를 제출하지 않았고 온라인 강의만 완강해도 된다는 최소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 교육 과정 중반에는 고객 중 네이버에 신입 개발자로 취업하는 케이스가 발생했다.
이 엄청난 사건은 고객에게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기폭제로 작용할 줄 알았으나, 처음부터 공부한 고객은 알아서 열심히 공부했고 공부를 하지 않을 고객은 내 옆의 동료가 네이버를 가건 말건 알아서 떨어져 나갔다. 어쩌면 고객이 쟁취할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인 네이버 취업도 고객의 이탈을 막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동일한 시기에 필자의 팀에서 일정 학습량과 과제를 완수한 고객에게 매주 수강료의 일부를 환급해 주는 온라인 유료 교육 상품을 운영하고 있었는데,(실제로 목요일마다 계좌로 쐈다) 이 상품의 고객은 매일 같이 본인의 학습 현황을 인증하고 과제를 제출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필자는 살짝 현타가 왔고, 교육 상품 포맷에 따라 고객의 모습이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교육 상품의 포맷은 아래 그림처럼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고, 교육 상품 기획자는 상품으로 최대한 많은 고객의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 상품 포맷에 따라 고객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무료 교육 상품은 대개 상품의 형태보다 콘텐츠의 형태로 존재하고,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어려운 내용보다 보편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내용을 주로 다룬다. 여러 교육 플랫폼에서도 미끼상품으로 활용하거나 가벼운 지식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고객은 각 잡고 공부를 하기 위해 모이기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러 온 분들이 많고, 온라인 무료 교육의 효용가치를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단, EBSi는 예외다.
온라인 무료는 시공간 및 비용에 제약사항이 없다 보니 상식적인 수준에서 다수의 고객을 모을 수 있긴 하겠지만, 기획자는 고객에게 다른 곳이 아닌 우리 회사에서 교육 콘텐츠를 소비해야 하는 이유부터 설득해야 할 것이다. 하다못해 양질의 온라인 무료 교육 콘텐츠는 유튜브에도 널렸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교육 상품은 경험재이기 때문에 단순히 고객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특정 목적이 있을 때 온라인 무료 카드를 꺼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유료 교육 상품은 고객에게 익숙한 교육 상품 포맷이다. 대부분의 고객은 학창 시절에 인강을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온라인 유료 교육 상품은 교육이 필요한 고객에게 유효한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고객은 동기의 크기에 따라 온라인 유료 교육 상품의 구매를 결정하는데 소요하는 시간이 다르다. 기획자는 고객이 자신의 교육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기 위해 고객을 동기의 크기에 따라 분류하고 레벨별로 다른 메시지 및 솔루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마치 반 1등에게 필요한 조언과 반 꼴찌에게 필요한 조언이 다르듯이 말이다. 얼라인(align)이 맞을수록 고객은 빠르게 구매를 결정할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언급해 보자면, 교육 플랫폼을 막론하고 고객이 온라인 유료 교육 상품을 완강하는 비율은 5% 정도 된다. 필자는 이 역시 동기의 크기 차이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교육 상품은 경험재이기 때문에 고객이 강의를 듣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고객이 강의를 들어야 다음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기획자는 고객을 공부하게 만들어야 하는 미션도 수행해야 한다.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고객은 오프라인이라는 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동기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오프라인 유료 교육 상품을 기꺼이 찾는다. 예를 들어 재수에 성공하기 위해 기숙 학원을 들어간다던가 대학생이 방학 동안 원하는 토익점수를 만들기 위해 짐 싸 들고 서울로 올라온다던가 직장인이 경제적 자유를 얻는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퇴근하고 강의장을 찾는다던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객은 본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 상품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것이지 순수하게 교육 상품을 소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기획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품을 통해 고객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상품 또는 비즈니스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이 오프라인 무료 교육을 교육 상품으로 생각할 것인가부터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오프라인 무료 교육이란 단지 특강, 세미나, 지자체 행사, 기조연설 등이 아니었을까. 필자가 보기에 고객이 본인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오프라인 무료 포맷을 적극적으로 찾은 케이스는 없었던 것 같다.
기획자가 이 포맷을 다뤄야 한다면 고객을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할 텐데, 개인적으로 고객이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필자는 교육을 통해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빠른 수단일 수도 있다. 교육이 상품으로써 나아가 비즈니스로써 의미가 있으려면 누구나 적은 노력을 들여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획자는 이 미션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고민할 때, 나의 고객에게 가장 적절한 포맷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의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