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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을 하며 생긴 결핍

by 원스타

네카라쿠배*라는 신조어와 신입 초봉 5천만 원이라는 키워드를 필두로 취업 시장에 개발자 열풍이 불던 시절, 저는 성인 교육 스타트업에서 상품 기획자로 근무하면서 교육 상품으로 취준생을 직장인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누구나 개발자가 될 수 있는 취업 교육 상품을 기획해서 출시했고 오픈 첫 달 매출 1억을 찍고 바로 다음 달에 2억을 찍었습니다. 당시 사내에서 단일 상품으로 월 매출을 억 단위로 내는 것은 최초였고 이 기세를 두세 달 유지했더니 업계 내 선두 주자였던 경쟁사가 리뉴얼을 핑계로 문을 닫았습니다. 기획자로서 제 기획안이 시장에서 제대로 통하는 경험을 한 건 정말 감격스러웠고, 언더독으로서 탑독을 무너뜨린 경험을 하는 건 그 무엇보다도 짜릿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겼습니다.


성과를 인정받아 연봉이 20% 올랐고 부사수가 붙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승진하지 못했고 권한과 책임도 받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퀘스트를 깰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이미 깬 퀘스트를 또 깨야 하는 현실 때문에 들떴던 마음이 짜게 식었습니다. 이 와중에 매출을 더 올리기 위해 다른 일은 하지 말고 가망 고객에게 전화 상담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저는 사내 CS 담당 동료보다 고객과 통화를 더 많이 하면서 전화 상담과 구매 전환 간의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는 데이터를 대표님께 수차례 보고했으나 시키는 일이나 잘하라는 말만 되돌아왔습니다. 회사엔 예스맨이 필요했고 저는 이미 깬 퀘스트와 납득되지 않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표님께 재미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회사를 제 발로 나왔습니다.

3개월 정도 지나 새로운 퀘스트를 깰 수 있는 회사로 이직했습니다. 회사에서는 팀에 주니어가 많으니 제가 시스템을 만들어 주면 좋겠고 회사에서 추진하고 싶은 일이 많으니 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앞뒤가 달랐습니다. 그저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 월급쟁이 겁쟁이들이었습니다. 이후 제게 권한을 많이 줄 수 있다는 회사로 이직을 했으나, 입사 전에 약속했던 권한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회사가 어렵다며 시용 기간 내내 임금을 체불했습니다. 팔자에도 없던 고소 엔딩으로 회사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회사에서의 권한은 의사결정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고 책임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목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직()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에서 권한을 갖는 사람은 사장님 밖에 없고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역시 사장님 말고는 없습니다. 넓게 보면 C레벨 임원진까지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저는 목도 직도 걸지 않는 직원이었기 때문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고 권한은 없는 게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제 머리가 깨져있었는지, 일을 조금 열심히 한 것에 불과한 걸 책임감을 갖고 일했다고 착각했고 남들이 인정하는 성과를 냈기 때문에 권한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혼자 씩씩댔습니다. 남의 일 말고 내 일을 하면, 이런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새로운 퀘스트를 만들 수 있고 납득되는 일을 할 수 있고 목도 직도 걸 수 있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창업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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