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성인 교육 도메인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다. 올해 초 교육 상품을 새롭게 오픈했고, 필자는 이 상품이 시장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빠르게 행동했다. 기획 일이라는 게 100번 시도해서 100번 실패하는 것이다 보니,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벨로드롬 위의 경륜 선수 마냥 <리서치-가설-실행-회고> 사이클을 무한 반복하면서 시장과 고객이 알려주는 오답을 소거하는 것이 전부였다. 운이 좋게도 그 와중에 얻어걸리는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일한 과정이야 어땠든 간에 필자는 얻어걸린 것들을 성과라고 믿었고, 상품의 성장 곡선을 우상향 그래프로 만들기 위해 성과의 기준을 계속 상향 조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이클을 밟는 템포를 조금씩 높였고, 덕분에 아직까지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3개월 정도 <리서치-가설-실행-회고> 사이클을 반복하던 중 리서치를 하면서 생각의 원천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감이 고갈된 것이다. 마치 우물 속에 있던 물을 다 퍼낸 것 같았다. 리서치 단계에서 우물에 물을 채우고 가설-실행-회고 단계에서 물을 끌어올리면서 기획 일의 사이클을 원활하게 돌려야 하는데, 매일 바쁘고 계속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모든 단계에서 물을 끌어올리기만 한 것이다. 이런 상태로 계속 일을 하면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나중에는 우물 안에 물이 없으니까 급기야 우물을 파게 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물을 열심히 판다고 해서 물이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우물은 비가 내리면 저절로 채워지지만 생각의 우물은 본인이 직접 생각을 채워 넣어야 한다. 직무와 관련된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유관 경험을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대화의 주제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일에 대한 것도 좋고, 일과 전혀 상관없는 것도 좋다. 잡담을 통해 머릿속의 케케묵은 생각을 말하고 나면 새로운 생각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길 것이다. 여기에 상대방의 생각을 담을 수도 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잡담을 하면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내 생각을 풍부하게 해주기도 한다. 일을 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드높은 벽을 만난 느낌이 든다면 당장 옆에 있는 동료를 데리고 티타임하러 나가자.
잡담을 통해 주변 사람의 생각을 담았다면 이번엔 인터뷰를 통해 내가 모르는 사람의 생각을 담아보자. 면접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 형태의 콘텐츠를 보자는 뜻이다. 요즘은 뉴스가 아니더라도 인터뷰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언더스탠딩, 요즘사, 이오 등 유튜브 채널도 좋고 롱블랙, 퍼블리 등 아티클을 제공하는 플랫폼도 좋다.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본인의 일에 몰입한 이야기를 접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본인의 성과를 이룬 에피소드보다 성과를 이루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재밌었다.
밑도 끝도 없이 피그말리온 효과를 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잡답을 하고 인터뷰를 보면서 우물에 새로운 생각을 채워왔으면 내 일을 다시 쳐다보자는 것이다. 당면 과제의 북극성 지표를 되새기고, 요소마다 핵심 포인트를 체크하고, 고객에게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지 등 앞으로 내가 할 행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리서치-가설-실행-회고> 사이클을 타면 목표를 향해 정진할 수 있을 것이다.
영감은 별안간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쁘고 성과를 내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일지라도 시험 직전 밤샘 벼락치기처럼 일하다가 벽을 마주치고 나서야 영감을 찾으러 나서지 말고, 영감을 찾는 활동을 루틴하게 하는 것이 현명하게 일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아마 얻어걸리는 성과들도 더 많을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