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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스타 Dec 05. 2022

고객님, 비추 후기를 남겨주세요.

필자는 성인 교육 도메인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B2C 비즈니스의 담당자들은 포털 사이트에 본인의 회사나 브랜드를 종종 검색할 것이다. 다른 도메인도 그런진 모르겠으나 성인 교육 쪽에서는 어느 정도 장사가 되면 훈장처럼 붙는 연관 검색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비추.

처음엔 욱했다. 마치 내 자식에게 하는 욕을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이랄까.(필자는 자식이 없다) 뉴비 시절엔 비추 후기를 볼 때면 마음속으로 고객님의 불운을 빌었고, 고객이 비추하는 정도에 따라 필자도 고객님의 불운을 다르게 빌기도 했다. 필자가 소인배라 그런지 많이 빌었으면 많이 빌었지 적게 빈 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비추??


하루는 마케터 동료가 본인의 모니터를 가리키며 필자에게 걱정스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꺼냈다. "원스타님. 구글 추천 스니펫*에 비추 후기가 걸렸어요."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후기는 간단한 댓글 후기가 아니라 개인 블로그, 커뮤니티 등에 남긴 어느 정도 분량이 긴 후기를 말한다.

교육 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입장에서는 교육 상품이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상품이라서 고객에게 소구하고 구매를 유도하는 과정이 지난하다. 여기에 필자의 상품처럼 가격까지 비싸면 마케팅 난이도가 몇 배 이상 올라간다. 그래서 나쁜 후기가 치명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동료에게 괜찮다고 했고 그 글을 추천 스니펫에서 내리기 위해 특별하게 리소스를 넣지 말자고 대인배인 척했다. 이때 필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추천 스니펫 : 구글 검색 기능 중 하나로써, 검색 의도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텍스트 정보를 페이지 최상단에 노출시키는 기능



고관여 상품은 비추 후기도 나름 괜찮다.

교육 상품은 고객이 구매를 결정하기 전까지 고려하는 요소가 다양한 고관여 상품이다. 필자가 만난 고관여 상품의 고객은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찾아보면서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자신의 입장에 대입해 보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 중에 당연히 비추 후기를 찾아보는 것도 포함돼있다.

물론 비추 후기가 없는 것이 베스트지만 필자는 잘 작성된 비추 후기가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추 후기는 기존 고객이 상품을 사용하면서 불만족했던 부분을 하소연하기도 하고 어떤 점이 본인에게 맞지 않았는지에 대해 배경, 현재 상황, 옵션, 우선순위, 기대치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잠재 고객이 상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했다.



상품을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비추 후기가 주는 부정적인 인상 때문에 고객 이탈이 발생한다면 마음이 너무 아프겠지만 비추 후기를 100% 막을 순 없다. 필자는 비추 후기를 원천봉쇄하는 데 리소스를 투입하는 것보다 고객 퍼소나를 수정하는 데 투입하는 것이 나을 것으로 판단했다. 우리 상품의 평이 좋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상품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뜻이므로, 고객을 다시 정의하고 상품을 수정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원래 깨진 항아리를 붙이는덴 VOC(voice of customer)가 특효약이 아니던가. 불만의 목소리를 낼 때만큼 고객이 본인의 의중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없다.


필자는 비추 후기를 작성한 고객이 어떤 배경이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상품을 사용하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지 파악하고 어떠한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는지 수집했다. 이를 토대로 상품을 다시 쳐다보고 우리가 고객에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고객이 오해를 했는지 판단한 후 상품 개선 작업을 진행했다.



VOC를 토대로 상품을 개선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비추 후기가 또 나올 것이다. 고객의 모습은 우리 상품의 PLC(product life cycle)에 따라 변하고 시대, 유행, 경쟁사 등 주변 환경 때문에 바뀌기도 한다. 달라진 고객의 모습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건 비추 후기다. 비추 후기를 통해 고객의 모습이 변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으니, 비추 후기도 나름 괜찮은 거 아닌가?(아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완전무결하고 고객 만족도 100%인 상품을 세상에 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객이 자발적으로 좋은 후기만 남겨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고 있다면, 좋든 싫든 비추 후기가 훈장처럼 생길 것이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자. 정말 걱정해야 하는 것은 후기 자체가 없는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 끝.


사실 이게 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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