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성인 교육 도메인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다. 하루는 필자가 회사 라운지에서 온라인 미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남다른 무게감을 지닌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A 의장 : "이 정도 (실패)했으면 됐고, 접고 딴 거 해라."
B 리드 : "아닙니다. 팀원들의 ~한 의견도 있고요." (…)
A 의장 : "넌 왜 네가 결정을 안 하고 그런 말을 하고 있냐. 일을 다수결로 할 거야?"
C 필자 : '그럼 일은 어떻게 하는 걸까?'
필자는 이 대화를 계기로 회사에서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됐고, 이때까지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지부터 되돌아봤다. 필자의 첫 직장인 반도체 제조 회사는 전통적인 산업이라 그런지 대개 위에서 일이 시작됐고 시스템에 의해 일을 시작해야 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은 보통 윗사람 이외에도 일을 시작하는 직무가 있고, 주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기 보다 시장 및 고객 요구와 현재 회사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 판단했던 경우가 많았다.
일을 시작했으면 다음 순서는 일을 전개할 차례다. 일을 전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직관적으로 인원수를 기준으로 하여 1명 또는 2명 이상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1명이라면 혼자 알아서 끝까지 하면 된다. 가장 깔끔하다. 2명 이상부터 협업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의장님의 일을 다수결로 할 거냐는 질문에(물론 필자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협업의 과정이었고, 크게 3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선 2명 이상의 사람이 협업을 하기 위해 모였으면, 일을 먼저 시작한 사람(일에 대해 고민을 먼저 시작한 사람)과 일을 비교적 나중에 시작하는 사람으로 구분될 것이다. 여기서 일을 먼저 시작한 사람이 일을 하지 않겠다(또는 못하겠다)는 동료의 마음을 돌리는 게 설득이 아니다.
일을 먼저 시작한 사람은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는지, 당면 문제가 무엇인지, 우선순위는 어떻게 되는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는지, 기대치는 어떻게 되는지 등 본인이 먼저 고민했던 내용과 맥락을 동료에게 차분히 설명하는 것이 설득이라고 생각한다. 동료가 온전히 이해했다면 설득을 잘했다고 볼 수 있겠다.
설득 후 '믿고 맡길 테니 알아서 잘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위임이 아니다. 인수인계에 가깝다. 필자는 먼저 시작한 사람이 일을 함께 하는 동료에게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위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시간, 권한, 믿음, 조언 등을 선물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일을 위임받은 동료는 본인의 일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수행하면 된다.
설득과 위임을 몇 바퀴 돌고 나면 일을 먼저 시작한 사람과 나중에 시작한 사람 간의 경계가 없어진다.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서로를 설득하고 서로에게 위임을 하게 될 것이다. 원활한 협업은 설득하고 위임하는 과정이 잘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협업이 농사 품앗이처럼 여럿이 일을 분담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농사는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같은 시기에 같은 일을 하지만, 회사 일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시각을 가지고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분담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일을 전개한 결과를 가지고 결정을 해야 한다. 일을 결정하는 것은 일을 전개하면서 협업하는 것에 비해 간단하다. 일의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 현재 주어진 옵션 중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면 된다. 대신 모든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라운지에서 들었던 대화 덕분에 회사에서 일하는 방식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었다. 필자 생각엔 일을 시작하고 전개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수결로 일을 진행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스스로 책임감이 더 생기는 것 같다. 오늘의 이야기 끝.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에피소드 덕분에, 아래 글과 같은 상황에서 동료를 설득하고 동료에게 위임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onestarbrunch/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