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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스타 Mar 02. 2023

동료를 설득하고, 동료에게 위임하기

필자는 성인 교육 도메인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다. 필자의 회사는 프로젝트 팀을 구성할 때 기획자, 콘텐츠 마케터, 그로스 마케터, 운영 매니저의 조합이 디폴트다. 필자의 신규 프로젝트 오픈 당시 필자와 마케터만 있어서 앞단인 고객 유입 퍼널의 트러블 슈팅은 가능했으나, 뒷단의 상품 경험 퍼널을 함께할 운영 매니저가 없어서 필자가 뼈를 갈아 넣어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2개월 정도는 정신없이 지나갔고 3개월 차에는 이 악물고 버텼으며 4개월 차부터는 일하는 내내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필자가 운영 매니저의 합류를 고대하고 있을 때, 필자의 프로젝트 팀에 신입 기획자로 A님이 들어왔다.



하얀 도화지 같은 A님과 함께

A님은 첫 직장으로 필자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했고, 첫 팀으로 필자의 팀으로 들어왔다. 필자는 예상치 못한 신입 기획자의 합류로 인해 업무가 하나 더 추가됐다. A님이 안정적으로 온보딩하고 업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줄여서 사수가 될 것) 갈 길이 멀고 험한데, 발목에 모래주머니까지 차게 된 것이다.


필자는 A님에게 기존 동료들이 일하는 방식, 상품의 네러티브, 당면 과제, 이니셔티브의 목표 및 목적 등에 대해 매일 조금씩 공유했다. 여기서 신경 쓴 부분은 A님이 충분히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속으로 똑같은 말을 최소 10번 이상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A님에게 업무의 맥락을 설명했다. 혹여나 이 과정이 싫증 난다면 스스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려 깊은 A님이 필자의 바쁘고 정신없는 모습을 보고 궁금한 내용이나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것을 우려하여, 필자는 항상 "질문 없어요?", "제 설명 중에 이해 안 된 부분 있나요?"라고 선빵을 쳤다.


필자는 A님과 티키타카를 경험하면서, A님은 업무의 청사진을 이해하고 나면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본인의 역량을 십분 활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분이라고 파악했다. 사수로서 업무를 하나하나 봐주는 것보다,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여 잘했을 때는 왜 잘했는지 안 됐을 때는 왜 안 됐는지에 대해 같이 머리를 맞대어 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A님께 업무를 이니셔티브 단위로 하나씩 위임했다. 한 번에 업무 전체를 위임하는 건 위임이 아니라 떠넘기는 것이 아닌가.


이후 필자는 A님이 리소스를 낭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A님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디테일을 챙겼고 A님이 업무를 추진하다가 어느 구간에 매몰됐을 때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올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 드리는 일을 했다. A님은 이 과정에 동의했는지 런하지 않았고 필자와 함께 일을 했다.


대답없는 너


견고한 틀이 필요한 B님과 함께

한창 기획자 둘이서 운영 업무를 틀어막고 있을 때, 필자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운영 매니저 B님이 팀에 합류했다. B님은 유사 업계에서 운영 업무를 꽤 오래 하신 분이라고 전해 들었기 때문에 필자는 B님이 오면 모든 일의 병목 현상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필자는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하나 더 차게 됐다.


B님은 이전 회사에서 시장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정부기관의 요구 사항에 맞춰 일을 했고, 한 번 정해진 업무 방식 안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래서 B님은 팀에 합류하자마자 업무의 틀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팀은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따라 모든 것을 바꿀 준비가 돼있는 팀이었고 이 모든 것에는 업무의 틀도 포함돼있다.


필자는 혼란스러워하는 B님에게 프로젝트의 히스토리, 마일스톤, 당면 과제의 우선순위, 업무 방향성뿐만 아니라 성과가 잘 나왔을 때와 안 나왔을 때 각각 우리 팀의 액션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까지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설명한 시나리오 안에서 변화가 있었고, 감사하게도 우리가 선택한 변화 때문에 상황을 개선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B님이 업무의 틀이 (수시로) 바뀌어도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때까지 기다린 것이 필자의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이후 B님이 프로젝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몸소 이해했다고 판단했을 때부터, 필자는 B님이 짬바를 발휘할 수 있도록 운영 업무를 하나씩 위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B님이 업무를 하는 데 헷갈리지 않도록 B님의 질문에 대답을 잘하는 것에 신경 썼다. B님도 이 과정에 동의를 했는지 아직까지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필자는 A님과 B님을 통해 동료를 만나고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일을 함께 하기 위해 설득하고 일을 잘하기 위해 위임하고 나서야 진정한 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리 팀에 일하러 왔으니까 환영하고 인수인계하고 기존 사람들과 어울려 같이 일하려 했다면, 협업은 커녕 더 먼 길을 돌아가지 않았을까.

여러므로 부족한 필자와 함께 하느라 고생한 A님과 B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오늘의 이야기 끝.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글의 에피소드를 계기로, 이번에 동료를 설득하고 동료에게 위임하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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