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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ug 26. 2016

중국의 영웅은 누구인가?

삼국지, 수호지, 무협지의 공통점

중국의 영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삼국지의 관우(關羽)입니다. 문(文)의 공자와 함께 무(武)를 대표하는 관우는 중국인들에게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지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관제묘(관우를 모신 사당)가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졸들에 의해 전해져 동대문 근처에 동묘(東廟; 東關王廟)가 건립되지요.

일본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관제묘

관우야 물론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명장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겠습니다만 중국사람들이 관우를 이렇게까지 신성시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삼국지연의의 영향이 클 것입니다. 


사나이들의 으리의 상징 도원결의로부터 데운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가지고 왔다는 신적인 무용(武),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으나 유비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명의 장수를 베고 끝끝내 돌아갔다는 충(忠), 적의 독화살에 맞은 팔을 치료하기 위해 살을 찢고 뼈를 긁어내는 동안 술을 마시며 바둑을 두었다는 일화 등등 관우는 삼국지연의 최고의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지요.


삼국지연의는 실제 있었던 삼국(위, 오, 촉)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정사(正史) 삼국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부족한 사실을 상상력으로 채우기도 하고 혹은 엄연한 사실을 어떤 의도를 갖고 왜곡시키기도 한 작가의 창작물이지요.


사소한 예로, 관우 하면 떠오르는 청룡언월도는 송나라(960-1279)때 등장한 무기로 삼국시대(2세기후~3세기) 장수가 사용했을 리가 없습니다. 82근 청룡언월도가 관우의 상징이 된 것은 그 정도는 돼야 관우의 무용을 드러내기에 적합했기 때문일 겁니다.

네, 뻥입니다.^^/
그렇다면 삼국지연의의 작가는 왜 그렇게 관우를 멋지게 그려낸 것일까요?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 했습니다. 또한 앞의 글들(수퍼맨은 왜 미국으로 왔을까?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07와 한국의 영웅은 누구인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09)에서 썼듯이, 문화는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합니다. 삼국지연의가 씌여진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관우가 왜 그렇게 멋지게 그려졌는지, 또 중국사람들이 관우를 왜 그렇게 사랑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국지연의의 작가 나관중은 생존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1310~1400년 사이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1368~1644) 초기에 걸친 시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중국이 이민족(몽골)의 지배를 받던 시기였다는 것이죠.


원나라가 들어서기 전, 중국에는 한족의 송(宋)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거란족의 요(堯), 여진족의 금(金) 등 최강의 유목민족들이 세운 제국들이 있던 시대였지요. 송나라가 딱히 약했다기보다는 끊이지 않는 부족간 전쟁으로 전투에 익숙해진 이들의 무력이 사상 최고점을 찍었던 때지요.


해동성국 발해를 멸망시킨 요(916-1125), 최강 요나라를 끌어내린 금(1115-1234), 그 금나라를 끝장내고 세계제국을 세운 원(1271-1368). 그야말로 엄청난 시대였습니다. 이런 나라들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송나라는 결국 원나라에 의해 망하고 중국인(한족)들은 본격적으로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때 중국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삼국지 이야기입니다. 중국 한족의 문화적, 역사적 뿌리 한나라(漢)가 멸망하고 혼란하던 세상. 끊어진 한나라의 명맥을 잇겠다는 유비와 그를 돕는 관우와 장비. 삼국지연의는 유비의 촉한(蜀漢)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삼국지연의가 정사 삼국지가 조조의 위(魏)나라 중심인 것에 비해 촉의 정통성을 강조했다는 것은 나관중이 살았던 시대, 중국인들이 무너진 한족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고 다시 한족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바람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주원장이 명(明)나라를 세우면서 이들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졌습니다. 주원장을 비롯한 한족세력을 결집시키고 원나라에 대항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을 삼국지연의에서 찾는 것은 무리일까요?



비슷한 시기에 나관중 등에 의해 창작된 수호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호지의 배경은 송나라인데요. 탐관오리들의 등쌀에 나라를 버린 영웅들이 양산박에 모여 의(義)를 행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나라가 이들의 참뜻을 알아주게 되고 양산박의 영웅들은 송나라의 군대가 되어 북방 유목제국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웁니다.

중국드라마 신수호지의 송강

수호지 108 영웅들의 실질적 리더 송강의 성이 아예 송(宋)이라는 점, 나라의 부름을 받고 북방 유목제국들을 물리친다는 점이 수호지가 갖는 시대적 의미이자, 양산박 영웅들이 중국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일 겁니다.


물론 삼국지, 수호지, 금병매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로 꼽히는 수호지 자체의 풍부한 스토리와 잘 짜여진 서사의 문학적 가치도 충분합니다만, 당시의 중국인들은 송강으로 대표되는 한족 영웅들이 한족의 콤플렉스 였던 뛰어난 무력으로 최강 유목제국들에 맞선다는 점에서 대단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근현대 중국의 무협지들이 있습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소오강호, 의천도룡기, 녹정기, 천룡팔부.. 무협지에 관심 1도 없는 분들도 영화로 드라마로 많이 접해보셨을 이름들이죠. 

이연걸 옹의 의천도룡기(1986년 작)

이 유명한 무협지들의 배경은 녹정기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남송 말에서 원명 교체기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수호지의 배경과 크게 멀지 않으며, 삼국지와 수호지가 널리 유행하던 시기라는 것이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작품들은 놀랍게도 한 사람이 다 썼는데 이 양반이 바로 현대 무협물의 조상이자 중국 문화콘텐츠의 아버지 김용(金庸)입니다. 김용은 1924년 중국 절강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중국은 찬란했던 중국의 역사상 가장 후달렸던(?) 시기였습니다.


청나라 말부터 서양 제국들에게 국권과 영토를 이리저리 빼앗기던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벌이던 중, 설상가상으로 일본에게 침략을 당해 청나라는 멸망하고 만주에는 만주국이라는 일본의 괴뢰국이 세워집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중국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지만 서양과 일본 등에 짓눌렸던 중국의 자존심은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중국이 공산주의식 계획경제를 유지하는 동안 속국쯤으로 생각했던 한국조차 경제력에서 중국을 앞섰고, 공산당의 문화혁명으로 찬란했던 과거의 문화는 쓰레기통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일들을 목도하면서 김용은 땅에 떨어진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보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정신적 노력을 기울였을 겁니다. 그러면서 중국 역사에서 유사한 시기를 떠올렸고 한족의 명예를 지켜낸 한족 영웅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무협지의 아버지, 김용 선생

원래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거나 부족한 것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며, 이 열등감을 만회하기 위해 동기화됩니다. 상상 속에서라도 내가 그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중국인들의 무의식 속 열등감은 바로 무력(武)이었습니다. 송나라 때도, 근대의 청나라도 결국 무력이 약했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것이지요.


김용의 무협지에서는 온갖 상상력으로 극대화된 중국인의 무력(무공)이 등장합니다. 장풍을 쏘고 나뭇잎을 밟고 달리며, 땅으로 떨어지다가 다시 공중으로 치솟는.. 중국 무협영화 특유의 장면들은 모두 김용의 창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수천년 중국의 문화적 자부심이 물리법칙마저도 무시하게 만들었다 할 만합니다.



그렇습니다.
김용의 무협지들은 삼국지연의나 수호지가 원명 교체기에 수행했던 것과
동일한 기능을 현대 중국인들에게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웅의 이러한 기능은 문화를 막론하고 보편적입니다. 수퍼맨이 처음 나타난 것도 대공황의 상처가 가시지 않았던 1930년대의 미국이었지요. 당시의 미국인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자동차도 번쩍번쩍 드는 수퍼맨의 활약에서 경제침체로 억눌린 자존감을 보상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시민들에게 소소한 위로를 주었던 수퍼맨은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떠오르면서 곧 미국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수퍼맨은 세계와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적들을 무찌르고 '인류'는 구경꾼이 되어 수퍼맨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지요.


2000년대 이후 중국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중국인들의 자존심 회복과 관련된 여러가지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베이성 징저우에 높이 58미터짜리 관우상이 세워지기도 했지요. 세계에서 중국의 위상변화와 함께 중국의 영웅들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겁니다.


영웅은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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