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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Oct 31. 2017

서양귀신은 왜 나타나는가?

귀신 이야기에 담긴 서양인들의 마음

귀신이야기에는 사람들의 심층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많습니다. 귀신은 그 나라 사람들의 자연관과 종교관의 반영이며, 귀신이야기는 동기와 욕구, 인간관계 양상, 문제해결방식 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선생 문화심리학에서는 한국귀신과 일본귀신의 차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40)라는 글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 대해 살펴봤었는데요. 오늘은 서양의 귀신이야기를 가지고 서양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무서운 이미지들은 역시 최대한 빼려고 노력했습니다^^. 


우선 영화 등의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서양 귀신(?)의 특징은 대개 몸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인 귀신이라기보다는 괴물 혹은 몬스터..라고 해야겠군요.

크리스토퍼 리의 드라큘라(1958)

드라큘라 백작으로 유명한 뱀파이어, 뱀파이어의 소울메이트 늑대인간, 현대 공포영화의 영원한 마스코트 좀비 등이 몬스터 류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들의 공통점은 '문다'는 점과 물린 사람은 '변한다'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뱀파이어는 서양인들의 시체공포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땅을 깊이 파서 매장하거나 화장을 하는 동양쪽 전통과는 달리 서양은 시체를 얕게 묻거나 지하실 같은 곳에 안치하는 풍습이 많았는데요. 의학이 덜 발달했던 과거, 완전히 사망하지 않은 사람을 묻는 일도 왕왕 있었던 모양입니다.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살아돌아온다.. 아으.. 무섭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 있을 곳에 있어야죠. 뱀파이어가 피를 마시는 것은 피가 생명의 상징인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죽음에서 돌아왔으니 시급히 생명력을 보충해야겠지요. 뱀파이어는 현대 들어 좀비로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물론 조금 더 끔찍한 형태로 말이죠.

늑대인간 (출처, 데반의 자료실)

늑대인간(웨어울프)은 서양인들의 숲 공포가 반영된 괴물이 아닐까 합니다. 유럽은 꽤 오랫동안 숲이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로마제국이 번성하고 있을 무렵에도 말이죠. 유럽이 전반적으로 사람 살 만한 땅이 된 것은 중세 초기(약 10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숲,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 늑대는 호랑이나 사자 등 대형 육식동물이 없던 유럽의 숲에서 짱을 먹던 동물입니다. 늑대인간 외에도 빨간망토 등 늑대가 무서운 존재로 그려진 이야기들은 많죠.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살던 유럽인들이 늑대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괴물들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신화를 분석한 기법을 조금 응용해서 스토리들을 단순화시켜보면, 뱀파이어, 늑대인간, 좀비 이야기의 공통 구조가 나오는데요. 사람과 괴물의 간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이 관계는 '문다'는 행위를 통해 역전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뱀파이어가 사람을 물면 사람은 뱀파이어가 됩니다. 늑대인간에게 물린 사람도 마찬가지죠. 물론 좀비도 그렇구요. 여기서 서양인들의 괴물에 대한 인식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아마도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등의 괴물은 인간 안에 내재된 사악한 이면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즉 사람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문다, 먹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인간은 원초적인 본능을 제어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본능들이 풀려 나올 때, 멀쩡하던 사람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인간관이 반영된 것이 뱀파이어, 늑대인간, 좀비 같은 괴물이 아닐까요.

현대에 씌여진 작품인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역시 인간 내면의 악(惡)이라는 서양 괴물 이야기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 괴물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원래 하고자 했던 귀신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 서양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은 직접적으로 공포의 대상이 아닌 듯 합니다. 영화 중에서 본격적으로 귀신이 등장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엑소시스트, 오멘, 애나벨, 컨저링 등을 들 수 있는데요.

오멘의 데미안

이 영화들에 나오는 귀신들은 보통사람의 영혼이라기보다는 대놓고 악령입니다. 고대의 악령(엑소시스트), 악마의 자식(오멘), 악마 숭배자 (컨저링) 등.. 애초에 악한 존재들이죠. 이들이 어떤 계기에 의해 사람의 몸에 들어가거나 특정 장소에 나타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서양 귀신 영화의 주된 구조입니다. 


악령을 제외하고, 서양귀신 중에도 보통 사람이 죽어서 된 귀신들이 있습니다. 서양의 귀신 이야기 중에는 영국의 앤 불린 유령이 유명한데요.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기도 한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아내입니다. 헨리 8세는 본처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재혼하기 위해 카톨릭을 버리고 성공회를 창시하기까지 합니다.

앤 불린의 초상

그러나 헨리8세는 이렇게 어렵게 얻은 두 번째 아내를 아들을 못 낳는다고 런던탑에 가두었다가 참수해버립니다. 그 뒤로 런던탑에는 목 없는 여인의 유령을 봤다는 목격담이 끊이지 않습니다. 막장드라마 뺨치는 역사를 가진 영국왕실에는 앤 불린 말고도 나름 유명한 왕족 유령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 귀신들은 사람들에게 딱히 해꼬지를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냥 생전에 살던 장소를 배회하거나 하던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죠. 유명한 많은 귀신 스토리들을 봐도 귀신들이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어디서 나타났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죠.


영어에 haunted라는 단어가 있는데 '유령이 나오는' 이라는 뜻입니다. 유령은 말 그대로 '나옵니다'. 나타나서는 말없이 사람을 바라보다가 사라지던가 하는 거죠. 혹은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등(폴터 가이스트)의 현상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보면, 서양의 귀신들은 사악한 악령들 외에는 인간에게 잘 개입하려하지 않는 특성을 보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했어도 한국의 귀신들처럼 사람 앞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서양인들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귀신은 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죠. 신과 인간, 산 자와 죽은 자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기독교적 전통과 근대 이후 이성 중심의 사고가 합쳐진 생각인 듯 한데요. 


때문에 서양에서 귀신들은, 인간 세계에 개입하기 위해 특별한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에서 특히 사랑받았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오다 매(우피 골드버그)와 미드 고스트 위스퍼러의 멜린다 고든(제니퍼 러브 휴잇)은 귀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영매, 한국식으로 하면 무당입니다.

오다 매 누님..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귀신들은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다가, 자신들을 보고 자신들의 말을 산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영매를 찾습니다. 한국 귀신들처럼 아무에게나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특수 영능력자를 통해서만 자신들의 존재를 나타낸다는 것이죠.


일반인들은 때로는 귀신을 보거나 폴터가이스트 현상 등으로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지만 귀신과 소통하는 것은 영매(혹은 퇴마사) 뿐입니다. 


한편, 한국의 귀신들이 주로 말을 걸어오는 대상은 무당이 아닌 권력자(사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력에 의지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은 귀신조차 이 세상의 법칙에 영향을 받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서양과 비교해서 한국문화는 그만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세계가 덜 구분되는 문화라고 볼 수도 있겠죠. 이런 생각들은 그 나라 사람들이 가진 삶과 죽음,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등의 종교적인 관념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보다 깊은 마음, 심층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사람들의 가장 내밀하고도 깊은 문화, 종교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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