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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an 28. 2017

드라마 시간은 왜 나라마다 다를까?

드라마 편성의 문화심리학

즐거운 설연휴입니다. 물론 마음은 몹시 심란합니다만 또 잠시의 휴식도 필요하겠죠. 평소 바쁜 일상을 보내는 우리들은 연휴에 못했던 일들을 몰아서 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밀린 드라마 보기 같은 거 말이죠.

명절엔 드라마

여러 나라의 드라마들을 보다가 궁금해진 것이 하나 생겼는데요. 그것은 바로 드라마의 방영시간입니다. 드라마의 방영시간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최근 끝난 한국드라마 도깨비의 1편당 편성시간은 90분이었습니다. 광고를 뺀 실제 드라마 시간은 75분에서 80분 정도 됩니다.


드라마 시간은 우선 방송사와 제작여건, 그리고 방영날짜 및 시간에 따라 다른데요. 한국의 경우 공중파/공영방송사의 경우 드라마 한 편의 시간은 보통 1시간(60분)입니다. 광고를 빼구요. 매일 방송되는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의 경우는 좀더 짧아서 30분~40분 정도면 끝나죠.

태양의 후예(KBS)는 1시간

케이블 드라마는 편성시간의 여유가 있어서인지 채널의 목적이 오락이어서인지 방송시간이 더 깁니다. 90분 편성에 실제 방송시간은 75분에서 80분 정도죠. 도깨비, 응팔이나 응사, 시그널 등도 그 정도 나오더군요. 1시간 15분에서 1시간 20분. (몇 개 찾아보니 종편채널 드라마들은 1시간 정도 하더군요..)

도깨비(tvN)는 1시간 20분

드라마의 방영시간

그럼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일본 드라마는 대개 45~50분 정도의 방송시간을 갖습니다. 중국이나 대만 드라마는 40~45분, 여러분 많이 보시는 미국 드라마도 40분에서 45분 사이입니다. 


드라마가 수입되지 않는 나라들을 빼고, 우리가 드라마를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드라마의 방송시간은 대략 40분에서 50분 내외인데 비해, 한국 드라마들의 경우는 60분에서 80분으로 다소 긴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일드라마나 시트콤을 제외하구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다른 나라의 드라마가 40~50분인 이유는 대개 방송 편성시간이 1시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들이 1시간 단위로 떨어져야 편성표 짜기가 쉽겠죠.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정도의 시간이 사람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수업시간이 대개 50분 수업, 10분 휴식으로 돼 있죠? 군대 일과도 마찬가지입니다. 1시간보다 길어지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뭘 보고 들었는지 혼동이 오기 시작합니다. 방송도 마찬가지인데요. (대학 수업들은 75분, 90분 짜리들이 있는데 이러면 안됩니다. 교수가 공유가 아닌 이상 ㄷㄷ).


이를테면 어린이채널은 프로그램 하나에 15분, 30분 단위로 편성이 됩니다. 어린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어른보다 짧으니 말이죠. 유아들이 보는 뽀로로 같은 것은 편당 10분 내외, 초등학생들이 보는 로봇 나오는 만화 같은 것들은 편당 방송시간이 20분 내외입니다. 

터닝메카드는 22분

1시간 편성에 4,50분 드라마가 방송되면 남는 시간은 광고로 채웁니다. 드라마로 잡힌 1시간 중에 10분에서 20분은 광고가 나온다는 말이죠. 여기서 미국 드라마 시간이 다소 짧은 이유를 알 수 있는데요. 자본주의의 선도국 답게 미국 TV에는 광고가 엄청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드라마를 볼 때 제일 답답했던 것이 광고였는데요.


시작하고나서 무슨 얘기가 나올 지 궁금해 할 만하면(2,3분 정도) 광고가 나옵니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와 20분쯤 보면 또 끊어지고 중간 광고가 제법 길게 나옵니다. 다시 드라마를 20분쯤 보면 또 광고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다음회 예고 비슷한 스토리가 조금 이어지다가(2,3분 정도) 끝납니다. 


일본특파원에게 확인해 보니 일본도 45분 정도의 드라마에 5번이나 광고가 나온답니다. 시작 전과 끝난 다음까지 쳐서 다섯번이겠죠? 중간광고는 세 번이라 생각됩니다. 중국특파원에 따르면 중화권은 지역과 방송사 별로 광고편성의 편차가 상당히 크다고 합니다. 


암튼.. 드라마 중에 나오는 광고는 몰입을 확 깨는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광고로 스토리가 끊어질 때마다 짜증이 솟구쳤던 걸 보면 한국 드라마가 왜 다른 나라에 비해 길고, 중간광고가 적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사람들이 드라마에 푸욱 빠져들어 집중적으로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한국 드라마의 중간광고는 말 그대로 중간에 한 번 나옵니다. 60분짜리 공중파 드라마는 아예 중간광고가 없죠. 40분 정도는 끊기지 않고 몰입을 해야 만족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이나 일본처럼 광고를 넣으면 방송사에 불이 날 지도 모릅니다. 


'과연 그럴까?' 싶으시면 여러분이 미드를 볼 때 어떻게 보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은 미국 방송국과 동시 방영하는 작품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일 공유사이트 같은 곳에서 다운을 받아서 봅니다. 이 방법이 좋은 것은 중간에 나를 방해할 광고 따위의 것들이 일체 없다는 것이죠. 한번 보기 시작하면 두어 시간, 서너 편은 금방이시죠? 외국 드라마 깨나 본 분들 중에는 하루에 드라마 한 시즌을 통째로 보신 적도 많을 겁니다.


시리즈 당 편수와 주당 방영횟수

한국사람들이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보기를 좋아한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근거가 두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시즌당 편수와 주당 방영횟수입니다. 한국 드라마들은 보통 주 2회 방영됩니다. 한 드라마가 보통 16화에서 20화 정도 되니까. 8주(2달)에서 10주 정도 보는 셈이죠. 일일드라마와 대하드라마를 뺀 일반 드라마 말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거의 모든 나라들은 주 1회 방영을 원칙으로 합니다. 미국 드라마들은 한 시즌에 대략 20~24화가 제작되는데, 주 1회 방송이니까 반 년에 한 시즌 정도 하는 셈이죠. CSI 같은 장수 시리즈들이 그래서 1년에 한 시즌씩 나오는 겁니다. 반 년 방송하고 반 년은 쉬고 제작하고..

일본 드라마들은 한 시리즈에 10, 11편 정도가 거의 정확하게 나옵니다. 일본 드라마들은 분기별로 방영이 되는데요. 한 분기가 석 달이니까, 한 달에 4주 해서 한 분기는 12주입니다. 11주 방송하고 한 주는 총정리나 예고로 쉬고 다음 주부터 새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대만 드라마는 한 시리즈에 보통 20~22편, 중국 드라마는 무협 드라마들이 많은데 무협 드라마는 대개 50편 안팎으로 편수가 많고 현대물은 24편 정도가 제작됩니다. 일일드라마나 사극의 편수가 많은 건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시리즈 당 편수로 봤을 때, 주 1회씩 3개월에서 6개월에 드라마 한 시리즈를 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은 주 2회씩 2개월에 하나를 보는 셈이군요. 편당 시간은 60~80분으로 제일 길고 중간광고도 적은 편입니다. 한국사람들이 드라마를 대단히 집중해서 본다는 것은 사실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몰입하는 한국인

한선생은 그 이유를 한국인의 '몰입'으로 설명하렵니다. 한국의 문화적 개념으로서의 몰입은 긍정심리학에서의 몰입(flow)과는 매우 다릅니다. 자신이 가진 기술(skill)과 과제의 난이도(challenge)의 균형이 맞을 때 발생하는 flow와는 달리, 한국사람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어떠한 상황이나 행위에 빠져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몰입의 대표적인 예로 노래방 같은 상황을 들 수 있겠습니다. 자기차례에 얌전히 노래만 부르는 일본사람들과는 달리, 한국사람들은 노래방에서 별 짓을 다 합니다. 떼창을 부르고, 춤을 추고, 특정 상황을 설정해서 역할놀이(?)를 하죠. 남들이 춤추고 노래할 때 소화기 같은 거 들고 촬영감독 놀이 해 보신 분들 계실 겁니다. 

싸이 뮤직비디오 중, 노래방 씬

이런 게 바로 의도적 몰입입니다. 폐쇄된 무대가 아닌 열린 마당에서 연희를 펼쳐 온 전통 때문인지, 한국인들은 순간순간 의식의 전환이 빠르고 또 달라진 역할에 쉽게 집중하는 모습이 강합니다. 이러한 문화적 전통이 드라마를 보는 현재의 습관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신명연구자에 따르면(그게 접니다), 몰입은 신명의 조건 중 하나이자 신명 현상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어딘가에 빠져들 때 신명이 나고, 또 신명을 내기 위해 어딘가에 빠져듭니다. 한국사람들은 재미있는 드라마에 빠져들어서 신명이 나고, 또 신명을 내기 위해 드라마에 빠져드는 게 아닐까요?


드라마 같은 한 나라의 문화콘텐츠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물론 제작비나 제작환경, 기술과 노하우 등 외적인 요소도 있겠습니다만, 드라마의 장르나 주제, 스토리라인, 인물들의 행동 등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심리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이 수도 없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 방영시간 하나만 가지고 잠깐 썰을 풀어봤습니다.



한편 드라마 계에서 조금 특이한 나라가 영국입니다. 영국드라마의 편당 방영시간은 2시간이 넘습니다. 긴 것은 두시간 반 짜리도 있죠. 웬만한 영화보다도 깁니다. 대신에 영국드라마의 한 시즌은 다른 나라보다 매우 짧은데요. 짧은 것은 3회가 한 시즌이고 긴 것이 6~8회 정도입니다.


영국 드라마는 왜 이렇게 길고 시즌 당 편수는 적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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