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강함을 추구하는가
오늘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영웅을 탐구해 볼 시간입니다. 영웅은 짧게 말하자면, 사람들의 욕망이 투사된 인물입니다. 누가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 계속해서 이야기가 전해지고, 만들어지고, 나누어진다는 것은 그가 그 사람들이 되고 싶은 모습, 하고 싶은 일들을 대신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이런 측면에서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인물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일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극이 많이 제작되는데요. 사극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인물들은 과거의 무장(武將)들입니다. 무사인 사무라이가 곧 지배층이었던 일본의 역사에서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랑받는 인물들이 있는데요.
타케다 신겐(武田信玄),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등 전국시대의 무장들입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센고쿠 시대)는 무로마치 막부 말기(15세기 후~16세기 중), 중앙정부의 권위가 떨어지고 각지의 다이묘들이 세력을 다투던 혼돈의 시대인데요.
특히 간토(關東)평야의 지배권을 건 타게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의 전투는 오랫동안 전설, 설화, 민담으로 구전될만큼 격렬했다고 합니다. 100년 넘게 지속된 전국시대는 결국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거의 종결되지만 가신의 배신으로 죽고,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그 뒤를 이어 일본을 통일합니다.
그러나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나 최종적으로 에도 막부의 주인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보다는 타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 오다 노부나가 등의 인기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업적이 의미가 있겠지만 일본인들은 피튀기는 전장에서 칼을 부딪치며 싸웠던 그들에게 더 공감과 애착을 느낀다는 것이겠지요.
일본인들에게 사랑받은 에도시대의 인물로는 전설의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가 있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13살부터 싸우기 시작하여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가 했던 유명한 싸움으로 요시오카 일족과의 결전, 사사키 코지로와의 '간류 섬의 결투' 등은 문학작품과 민담, 만화, 게임 등등으로 현재까지 무수히 재상산되고 있습니다.
에도 막부 이래 오랫동안 평화로운 시기기 이어지면서 사무라이들이 칼 쓸 일이 좀처럼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근대 들어 칼 쓰는 이들이 주목받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 시기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기 조금 전의 막부말(幕末)입니다.
막부를 전복시키고 근대 일본을 설계하던 이들을 (일본에서) 유신지사라고 하는데요. 이들 유신지사들로부터 막부의 수장인 쇼군(將軍)을 지키고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신선조(新選組-신센구미)라는 조직이 만들어집니다.
메이지 유신은 서구식의 근대적 개혁을 꿈꿨던 지식인 계층의 주도로 시행된 개혁입니다. 일본이 오랜 쇄국정책을 끝내고 근대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일본이 아시아 최초의 근대적 산업국가로 발돋움하게 된 사건이죠. 그리고 우리나라 등 주변국들에 제국주의의 야심을 드러내게 된 시점이기도 하구요.
이 유신에 반대하는 지배층이자 기득권이었던 막부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이 신선조는 막부편에서 유신에 저항하여 끝까지 싸웠던 무사조직입니다. 유신이 성공한 뒤에는 정부군에 대항하는 반란군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까지 말이죠.
그런데 이 신선조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이 또 엄청납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다양하게 재생산되고 있죠. 현대 일본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메이지 유신에 반대한 이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극한 사랑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현대 들어서는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 오오야마 마쓰다츠(大山倍達: 최배달)가 있습니다. 일본청소년들이 꼽은 일본의 10대 영웅에 선정되기도 한 최배달은 수련 과정에서 일본의 수많은 무예 고수들과 겨루었으며 단 한번도 지지 않은 그의 신화는 에도시대의 전설 미야모토 무사시에 비견될 정도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일본의 문화콘텐츠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이들의 행보는
'강함을 추구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 무장들이 싸운 이유는 '권력을 갖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권력에는 많은 이익이 따르지요. 지금도 이 땅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계속해서 싸울 상대를 찾았던 것은 그가 추구했던 어떤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방편이었을지 모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화가로도 유명하거든요.
신선조의 투쟁은 기득권에 편입되기 위한 하급무사들의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신에 참여했던, 또 막부편에 섰던 많은 하급무사들의 신념은 신분상승의 길이 철저히 막혀있던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황소와 맨손으로 맞서야 했던 최배달 선생의 치열한 싸움도, 식민지 출신 2등 국민으로서 찾아야 했던 자신의 존재이유와 자긍심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들의 동기를 '강해지기 위함'으로 설명합니다. 강해지기 위해 싸움터에 섰고, 더 강한 상대를 찾았으며, 역사의 소용돌이야 어쨌됐든 더 강한 자와 싸워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살았다는 것이죠. 이는 그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왔든 간에 그들을 보는 이들이 부여한 의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본의 컨텐츠에서 주인공들은 '강해질거야'를 되뇌입니다. 솜털도 못 벗은 소년이, 일본애니메이션 특유의 여리여리한 소녀가 "난 강해질거야!"를 외치며 전장(농구, 축구, 배구, 피구, 테니스 등등을 하러)으로 달려나가는 모습은 때로 한국인인 저에게는 기괴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일본인들은 강해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일본인들에게 강함이란 무엇일까요?
일본인들이 그렇게까지 강해져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