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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Sep 14. 2016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 지각

무지개는 몇 가지 색깔인가?

무지개는 몇 가지 색일까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당연히 일곱가지 색이라고 대답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실제로 무지개를 일곱가지 색으로 표현한 이미지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또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선명한 빨주노초파남보


그런데 무지개는 진짜 일곱 색깔일까요? 

여러분은 비온 뒤 하늘에서 진짜 무지개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 무지개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파란 하늘에 빛줄기가 무지개입니다. 일곱 가지 색깔이 다 보이십니까? 사실 우리가 보는 무지개는 이렇게 보입니다. 여기서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보인다는 사람은 잘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무지개를 오색 무지개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오색은 다섯 색, 즉 빨강, 노랑, 파랑, 흰색, 검정을 말합니다. 이상하지요? 무지개에 흰색과 검정색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서양이 무지개를 일곱 색깔로 구분하는데 우리나라(동양)는 다섯 색깔로 나눈다는 것이 우리문화가 서양만큼 정교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곱색깔에 포함되지도 않는 흰색과 검은색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기만 한 모양인데요.

왜 우리는 무지개를 다섯 가지 색깔로 본 것일까요?


일단 사람들이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이후입니다. 뉴턴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여러 가지 색깔로 나누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최초로 일곱 가지 색으로 구분했습니다.

아이작 뉴턴, 1642~1727

사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일곱 가지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색깔로 나눌 수 있습니다. 빨강에서 주황 사이만 해도 중간 색이 엄청나게 많죠. 그런데 이것을 굳이 일곱 가지 색으로 구분한 이유는 뉴턴이 살았던 당시 7이라는 숫자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성한 숫자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럭키 세븐). 


원래 사람의 기억 능력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한번에 기억할 수 있는 대상의 숫자는 5~9개에 불과하지요. 우편번호나 전화번호의 자릿수가 5에서 9자리 내외인 것은 이러한 기억 용량의 한계 때문입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 수도 대략 그 안에서 결정되지요. 


뉴턴은 결국 프리즘을 통해 분류한 수많은 색깔을 기억하기 좋고 뜻도 좋은 일곱 가지로 (편의상) 나눈 것입니다. 뉴턴이라는 천재 과학자가 프리즘이라는 과학적 도구를 사용해서 분류해 냈지만 결국 무지개의 일곱 색깔은 당대의 문화적 인식에 의거해서 정해졌다는 것이 우리가 주목할 점입니다. 

즉, 인간의 지각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동양사람들이 무지개를 다섯 가지 색깔로 구분한 것도 동양의 문화적 인식에 근거합니다. 동양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設)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주의 만물은 음(陰)과 양(陽)으로 나눌 수 있고, 다섯 가지의 기(氣)로 구성된다는 이론입니다. 

오행의 상생상극

이때,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의 기는 나무(木), 불(火), 흙(土), 금속(金), 물(水)인데, 그 각각의 색깔이 나무는 푸른색(靑), 불은 붉은색(赤), 흙은 노란색(黃), 금속은 흰색(白), 물은 검은색(黑)의 오색입니다. 오행은 방위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목은 동쪽, 화는 남쪽, 토는 중앙, 금은 서쪽, 수는 북쪽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고구려 벽화의 사신도는 이러한 오행사상에서 나왔습니다. 동쪽의 푸른 용(靑龍), 서쪽의 흰 호랑이(白虎), 남쪽의 붉은 봉황(朱雀), 북쪽의 검은 거북(玄武)이 그것입니다. 

왼쪽위-백호, 오른쪽위-주작, 왼쪽아래-청룡, 오른쪽아래-현무

따라서 오색무지개의 오색은 단순한 빨강, 파랑, 노랑, 흰색, 검정이 아니라 모든 방위와 우주 만물을 포함하는 색깔, 즉 세상의 모든 색깔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때문에 동양사람들은 색깔이 많고 화려하다는 말을 '오색찬란'하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를 색채지각이 부족하다거나 서양에 비해 단순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더 보면, 미국에서는 무지개를 남색을 뺀 여섯가지 색으로도 봅니다(현재는 성적소수자의 상징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독일과 마야문명에서는 다섯가지 색으로 보았고,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세가지 색으로 본다고 하네요. 여기에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이 있을까요?



지각은 인간 심리의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빛, 소리, 냄새 등 외부의 정보들이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와서 우리의 뇌에 전달될 때까지를 감각이라고 하는데 감각은 생물학적 과정이고, 지각은 이렇게 들어온 정보들을 해석해서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를 해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인간의 마음이 생성되는 최초의 단계인 것이죠.


문화는 바로 이 '해석' 과정에 영향을 줍니다. 동양의 하늘에 뜬 무지개나 서양의 하늘에 뜬 무지개나 같은 물리적 원리에 의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빛을 지각하는 과정에는 각각의 문화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변을 인식하고 해석해 온 지식들의 체계, 바로 그것이 문화입니다.


인간 마음의 최소단위인 지각단계에서부터 영향을 미치는 문화.

그렇다면, 보다 복잡한 사고나 판단, 사회적 상호작용, 상징과 예술 등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문화의 영향이 배어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문화가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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