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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Oct 19. 2016

한국인이 영어가 잘 안되는 이유

명사 중심의 영어 vs 동사 중심의 한국어

저도 그렇습니다만.. 독자 여러분들도 영어로 스트레스 많이 받으실 줄 압니다. 언제부턴가 영어를 못하면 세상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많은 대학에서 영어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언어능력 향상을 위한 수업이 아닌 전공수업마저도 영어로 강의하라는 곳들이 많습니다.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은 대학에 와서야 처음 접하는 전문지식으로 한국말로 들어도 이해가 잘 안될 판인데 이것을 영어로 강의하고 또 들으려니 수업의 전문성은 떨어지고 학생들의 이해도는 낮아지고 교수의 말하기 능력만 향상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지요.


뭐.. 현장에서 거의 쓸 데가 없는 영어점수가 취업의 중요한 스펙이 되고 또 승진이나 더 좋은 기회를 위해서도 영어가 필수적인 상황이니 이런 스트레스가 꼭 대학만의 문제는 아닐겁니다. 문제는 영어를 잘 하고 싶어도 이게 잘 되지 않는다는 건데요. 많은 한국사람들이 사회에 나오기까지 10년 이상 영어를 배우지만 여전히 영어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말과 반대인 영어의 어순, 문법 위주의 학습체계, 발음에 집착하는 습관 등 우리가 영어가 잘 안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영어와 한국어의 근본적 차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어권 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의 사고방식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명사 중심의 영어 vs 동사 중심의 한국어

영어를 잘 하는 사람도 잘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영어는 명사 중심의 언어라는 점입니다. 반면에 한국어는 동사 중심의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앉으세요'라고 말할 때 영어로는 'have a seat.'이라고 합니다. 물론 'sit down'이란 표현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미국사람들은 'have a seat'을 훨씬 더 많이 쓰더군요.


'결정하다'는 영어로 decide라고 하죠. 하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make a decision'이란 표현을 더 일반적으로 씁니다. 몇 가지 더 예를 들면, '고르다'를 choose 대신 'make a choice'라고 하거나 '보다'를 look 대신 'have a look'이라고 하는 등, 동사가 있지만 명사를 활용한 표현이 훨씬 더 일반적입니다.


이외에도 '서두르다'를 'get a move on', '전화받아'를 'get a call' 등으로, '도와줘'를 'give me a  hand', 누구를 차에 태워주는 것을 'give a ride' 등으로 표현합니다. 미국에 있을 적에 밤늦게 차 없이 집에 가야 했는데, "나 좀 태워줘"를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몰라서 한참 끙끙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명사를 많이 사용하다보니 중요해지는 것이 관사(a/the)입니다. 한국어에는 관사가 아예 없기 때문에 더 헷갈리는 부분이죠. 그러나 영어에서는 지금 말하고 있는 대상이 셀 수 있는지 없는지, 셀 수 있다면 몇 개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언어 습관에 그대로 배어 있는데요.


여러 가지 과일들을 갖다놓고 한국 아이들에게 '과일 먹어라'하면 우르르 몰려와서 알아서 잘 먹습니다. 그런데 영어권 아이들에게 "Eat some fruits."하면 과일을 먹는 게 아니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물어볼 겁니다. "Which fruit are you talking about? One apple? One orange?"


그만큼 말을 하기 위한 체계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인데요. 따라서 명사와 함께 다니는 have나 make, get, give 등의 보조동사 몇 개와 a/an, the 등의 관사만 자연스럽게 써도 훨씬 자연스러운 영어가 되는 것이죠.


사실 언어는 습관이라서 습관이 잘 든 사람은 이런 거 몰라도 어떤 나라 말이든 잘 합니다. 하지만 언어가 습관이기에 내가 익숙해져 있는 습관과 내가 배워야 할 언어의 습관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 습관은 그들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 동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한국어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중국어, 일본어 등 동양 언어 전반의 특징이죠. 명사와 관사를 중시하는 것 역시 영어 외의 서양 언어들에게서 일반적으로 타나나는 특징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언어의 차이가 동서양의 사고방식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잠깐 퀴즈 보고 가시죠.

가운데 있는(A,B 사이) 꽃은 A그룹과 B그룹 중 어디에 속해야 할까요?

대다수의 한국(동양)사람들은 A에 속한다고 대답하는 반면, 서양사람들은 B에 속한다고 대답합니다. 대답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공개하겠습니다.


원숭이와 판다, 바나나 그림이 있습니다. 이 중 두 개를 묶는다면 무엇과 무엇을 묶으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한국(동양)사람들은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습니다. 그리고 서양사람들은 원숭이와 판다를 묶습니다. 그 차이를 눈치채셨습니까? 동양사람들은 사물의 '관계'를 우선시합니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는 것이죠. 원숭이와 판다는 사는 데도 다르고 또 서로 만날 이유가 없으니까요.


반면에 서양사람들은 원숭이와 판다가 같은 '포유류'이고 바나나는 과일이기 때문에 원숭이와 판다를 묶는 것입니다. 서로의 관계보다는 개체의 특성에 주목을 하는 것이죠.


아래 그림에서 가운데 있는(2번 티셔츠) 사람은 행복합니까? 라는 질문에 한국(동양)사람들은 그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는 대답을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하지요.

서양 사람들은 가운데 있는 사람을 보라고 했으면 걔만 봅니다. 주변 사람들은 상관 안하죠. 주변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건 말건 가운데 있는 애는 웃고 있으니까 '얘는 행복하다'는 응답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국(동양)사람들은 가운데 사람 뒤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함께 있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혼자 웃는 것은 동양인들의 판단으로는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행복하지 않은데 어떤 이유로(예를 들면, 인터뷰라든가) 억지로 웃음을 짓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심리학에서는 이런 식의 실험이 동양인과 서양인을 대상으로 엄청나게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실험들의 결과로 알아낸 것은, 동양인들은 개개의 사물(사람)보다는 그것이 어떤 배경, 환경에 있는가, 각각의 사물(사람)이 다른 사물(사람)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주의를 집중하는데 반해, 서양인들은 사물(사람)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시 처음에 보신 그림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가운데 있는 꽃은 꽃잎이 둥글고 줄기에 잎사귀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B그룹의 꽃들은 잎사귀가 뾰족한 것이 대부분이고 잎사귀가 있는 것도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A그룹은 네 개 중 세 개의 꽃잎이 둥글고 네 개 중 세 개의 꽃이 잎사귀를 달고 있습니다. A그룹이 가운데 꽃의 특성을 전체적으로 많이 갖고 있죠.


그래서 한국(동양)사람들은 A그룹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가운데 꽃은 A그룹과 더 관계있어 보이니까요.

반면에 서양사람들은 가운데 꽃을 꽃잎과 줄기, 잎사귀를 따로따로 봅니다. 그렇게 보면 A그룹의 꽃들과 꽃잎의 모양이 비슷한 듯 하지만 하나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잎사귀도 하나는 없고, 줄기는 모두 휘어 있지요.


그러나 B그룹의 꽃들은 꽃잎의 모양도 다르고 잎사귀의 수도 다르지만, 줄기의 모양이 직선으로 일치합니다. 규칙성이 발견되는 것이죠. 이것이 서양사람들이 B그룹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이렇게 서양인들처럼 개체의 특성을 분리해서 분석적으로 보는 것을 '분석적 사고(analytic thinking)',라 하고, 동양인들처럼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보는 것을 '종합적 사고(holistic thinking)'라고 합니다. 동, 서양의 사고방식을 구분짓는 대표적인 기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이것이 서양의 언어가 명사 중심이고 한국어를 비롯한 동양의 언어가 동사 중심인 이유입니다. 개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개체의 특성을 드러내는 명사와 관사가 발달한 것이고, 개체와 배경/환경과의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개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동사가 발달한 것이죠.


해서.. 영어를 보다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명사를 많이 쓰는 그들의 언어적 습관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 오늘의 결론이었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은 문화와 사고과정의 관계를 연구한 리처드 니스벳(Nisbett, R.)과 그 동료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한 것입니다. 니스벳의 저서 '생각의 지도'나 EBS에서 방송된 '동과 서'라는 다큐멘터리를 참고하시면 보다 깊이 있는 지식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Richard Nisb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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