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생 Dec 29. 2015

오리엔탈리즘: 그들이 보고 싶은 동양

서양에 의해 왜곡된 동양 이미지

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가 종언을 고하면서 제국주의의 이론적 배경이었던 사회진화론적 시각은 힘을 잃게 됩니다. 더 이상 문화의 차이를 진화의 결과로 설명할 수 없다는 합의가 도출된 셈이죠. 그러나 한 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진화론적 설명을 따라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럽인들 눈에 다른 지역, 다른 문화는 여전히 낯설었고 그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방식의 설명을 찾아내는데 그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입니다. 사실 오리엔탈리즘은 최근의 것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로부터 서양인들은 동방(오리엔트)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유럽사람들이 막 문명의 초입에 들어섰을 무렵 동방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는 이미 엄청난 문명들이 꽃을 피우고 있었지요. 일례로 그 눈부셨던 로마제국(BC 27~AD476)의 초기에는 말을 운송에 사용하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로마인들은 말을 수레에 묶는 기술을 몰랐거든요. 한편 고대 동방의 여러 제국들에서는 한 1000년 전부터 말이 끄는 전차가 전쟁에 널리 쓰이고 있었죠.

히타이트 제국(BC18C~BC8C)의 전차

당시 유럽인들의 동방에 대한 인식은 이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무지와 동방의 눈부신 문명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어우러진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중세 이후 서양문명이 동방을 앞지르면서(?) 이러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보셨던 것처럼 진화론의 잣대를 동방에도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유럽인들이 철저히 낮게 보았던 남미나 아프리카와는 달리 동방(중동 및 인도에서 동아시아를 포함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이미지들이 포함된 여러가지 환상들이 섞여 들어갑니다. 고대로부터의 버릇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동방을 보는 서구의 이러한 시각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합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중국과 일본 등이 세계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근대 이후에는 고전적인 동방의 범위가 동아시아까지 확대됩니다. 물론 한국도 포함됩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그러니까, 서양사람들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을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거 되겠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을 두 마디로 요약하면 이겁니다.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이 말은 프랑스 사람 프리데릭 불레스텍스가 근대 프랑스인들이 한국에 대해 남긴 기록을 정리한 책의 제목입니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인들이 한국인들을 저렇게 생각했다는 것인데요. 꼭 한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략 동양'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라는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적 사고의 표본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개한데 착해, 뭐 있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어..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 에는 두 가지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미개문명이 그것이죠. 진화론의 설명에 따르면 일단 '미개'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조금 들여다보면 또 서구문명과는 다른 나름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음이 발견되는데 이것을 이해하자니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대충 '현자'라는 말로 덮어 씌우는 것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는 오리엔탈리즘의 환상 중 어느 쪽도 실제 동양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적 배경에서 나온 '미개'는 말할 것도 없고, 동양인들도 웬만큼 받아들이고 있는 '현자' 이미지 또한 재고의 대상입니다. 


서양인들은 대개 아래와 같은 이미지로 동양을 이해하고 또 소비합니다(관광을 오고 컨텐츠를 만듭니다). 

명상하러 한국을 찾는 서양인들
쿵푸하는 짐승 처음 보시나?

어떠십니까? 낯설지 않으시죠? 동양인인 우리도 상당히 익숙한 풍경입니다. 문제는.. 저것이 과연 동양이고 동양문화냐 하는 것이죠. 여러분은 살아가다가 마음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할 때 몇 분이나 "절에 들어가서 참선을 하십니까?" 또 몇 분이나 "기를 수련하고 무예를 연마하십니까?" 


물론 동양문화에는 저와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런 부분만으로 동양을 이해하는 것이 과연 동양을 진짜로 이해하는 것일까요? 잘 안 와닿으시면 다음의 예를 보시죠.

좌로부터 장쯔이, 양자경, 공리...     어라?

영화 '게이샤의 추억'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게이샤는 일본의 문화로 우리나라의 기생(妓生)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뭘까요..

네... 배우들이 전부 중국사람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서양사람들은 '어차피' 동양사람 구분 잘 못하니까요. 


그런데 이상한 점이 또 있습니다. 이 영화는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씁니다. 게이샤들이 영어를 썼던가요? 일본사람들이 영어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쓰던가요? 집이 가난해서 게이샤로 팔려가는 여섯살 짜리 여자아이까지?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어차피' 서양사람들 볼 영화인데 일본어로 돼 있으면 누가 보겠습니까? 그죠? ㅎㅎ

I live here now... .. 나.. 나니?

그런데 이상한 점이 또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게이샤가 추는 춤입니다. 주인공인 장쯔이는 패션모델들이 걷는 런웨이 같은 무대에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특수효과를 받으며 아래 사진처럼 팔다리를 심하게 휘젓는 춤을 춥니다. 

푸드덕 푸드덕...

바로 이게 이상한 점인데요.. 게이샤 춤에는 저런 동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게이샤들이 추는 춤의 영상을 링크해 드리겠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HU7ai3FIJrs). 

보시면 아시겠지만.. 으음..... 하여간 저것은 게이샤도 게이샤춤도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쯤 돼도 괜찮은 걸까요? 

중국 배우들이 영어를 쓰면서 되도 않는 현대무용을 하는 이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으셨다면 당신은 '거의' 서양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했던 많은 수업에서 수업을 들으셨던 분들은 제가 일일이 쟤들이 중국사람이고, 말을 영어로 하고, 저 춤이 일본춤이 아니고.. 를 주워섬기고 나서야 저 영화가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으셨을 겁니다. 그만큼 이런 식의 이미지가 우리 주변에 흘러 넘친다는 이야기겠지요.


위의 글에는 '어차피'가 여러 번 나왔습니다. '어차피' 서양사람들 보는 거니까... 

그러나 그 과정에는 동양이나, 동양문화, 동양사람에 대한 이해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서양사람들이 동양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죠. 


바로 이것이 오리엔탈리즘이고 오리엔탈리즘의 폐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생각보다 깊숙이 우리의 삶에 들어와 있습니다. 


동양은 어떤 곳입니까?

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3: 얼굴이 연탄색이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