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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Feb 16. 2017

체감 지지율의 심리학

"내 주변에는 OOO 지지하는 사람 하나도 없던데?"

탄핵 정국과 대선 정국이 뒤섞이면서 연일 유력 후보들의 지지율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지하는 후보가 있으시겠지요? 그런데 언론에서 발표되는 내 후보의 지지율에 만족하십니까? 마음에 안 드시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상하네. 내 주변 사람들은 다 A후보 지지하는데 지지율이 왜 이렇게 낮지?

이상하네. 나 아는 사람들은 B후보 아무도 안 지지하는데 지지율이 왜 저렇게 높지?


오늘은 이런 의문들을 해소해 보는 시간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혹은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지지율이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선 조사기관과 조사방법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조사기관의 성향과 조사방법에 따라 지지율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조사기관의 성향은 그렇다치고, 조사방법에 따라서도 조사의 방향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죠.


예를 들면, 조사방법을 '유선전화'로 한다고 했을 때 그 조사의 응답은 집에 놓인 유선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이 되겠죠. 그러나 요즘 집에 유선전화 있는 집이 별로 없고 또 있더라도 조사 시간에 집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되기 때문에(노년, 무직 등) 이런 방법을 통한 조사결과의 신빙성은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도 질문방법이나 문항의 형식, 순서 등에 의해서도 조사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러니 만큼 자격있는 조사기관의 엄격한 관리에 따른 조사결과만을 발표할 수 있는 제도가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조사의 결과를 믿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신뢰로운 기관에서 신뢰로운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임에도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래도 믿기 힘든 것이 사실이실 겁니다. 아니, 믿기 싫다고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조사대상(표본)의 대표성이나 사례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자격이 의심스러운 기관들을 제외하고 나름 전문적인 조사기관들은 조사대상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을 갖고 있습니다. 사례수도 마찬가지인데요. 전국민이 5천만인데 1000명 조사한 게 믿을 수 있느냐는 말은 잘못된 얘기입니다. 


여러가지 통계학적 얘기가 있습니다만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표본만 타당하게 추출했다면 1000명이 모집단을 대표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여러 계층에서 무작위로 뽑았다면 다시 그런 작업을 반복해도 그 결과는 거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사결과를 못 믿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 듣고자 하는 것을 듣습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주장하는 바이죠. 한번 신념 또는 도식이 형성되면 사람들은 그 도식에 적합한 정보만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확증적 가설검증을 하는 것이죠.


다음은 집단역학입니다. 사람들은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주변에서 얻습니다. 주변에 필요한 정보가 없다면 꼼꼼한 정보검색과 치밀한 사리판단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죠. 내가 판단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는 내 주변에서 옵니다. 


현대인들이 많이 모이고 또 정보를 얻는 SNS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정보를 공유합니다. A후보 지지자가 B후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색다른 정보가 들어와도 내 생각과 맞지 않은 것들은 무시되거나 걸러집니다.


집단 내에서 이러한 과정은 더욱 강화되는데요. 집단적인 정보 수합과 이를 바탕으로 한 토의가 이루어지지만 오히려 다양한 시각은 배제되고 집단의 의견이 더욱 극화되는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집단사고(group thinking)', '집단극화(social polarization)'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집단 바깥에서 일어나는 현실에 대해, 다시 말해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지지율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내 주변에는 OOO 지지하는 사람 한명도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거 조작 아냐?


이런 현상은 지금 시국에서도 어렵잖게 발견됩니다. 대표적으로 탄기국(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나 박사모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죠.

집단사고의 결과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은 환장할 노릇.. 입니다만 당사자들은 그것이 진실이라 믿는 것이죠. 그들의 도식이 다른 정보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고 그들의 집단역동 또한 이를 강화하는 쪽으로만 작동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일들이 다른 집단들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면, 혹은 집단 내의 동조압력이 너무 강하다면, 집단 내로 들어오는 정보의 다양성은 제한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편의 정체성이 굳건해질수록 상대 진영을 적(敵)으로 간주하려 하겠지요.


제 이전 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49)에서 정보의 공유를 바탕으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새로운 군중의 시대를 전망했습니다만, 스스로 차단한 정보 속에서 주어진 정보만을 확대 재생산하는 집단사고와 집단극화는 분명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어떤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어떤 정보를 받아들여서 어떤 결론에 이르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국가기관의 여론 조작과 같은 시도가 없으리라는 가정에서 유효합니다. 민주국가에서 그런 부분부터 의심해야 한다면 정말 슬픈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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