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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n 24. 2016

일부일처제는 가장 진화한 결혼제도인가?

문화상대주의 연습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판단합니다. 어느 정도는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구요. 그런 경향성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를 이해하자는 것이 문화상대주의입니다. 이것이 말로는 쉬워도 실제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은 조금 쎈 예를 가져와 봤습니다.


현재 한국의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제, 즉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가 결혼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북미, 유럽권 등 소위 선진국이라 알려진 나라들은 대개 일부일처제를 가지고 있지요. 따라서 사람들은 일부일처제가 아닌 결혼제도(예를 들면, 일부다처제)들은 뭔가 뒤떨어지는, 미개한 결혼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네 명의 아내를 둔 남편

일부다처제란 한 사람의 남편이 여러 명의 아내와 사는 결혼형태입니다. 일부다처 하면 우리는 남성의 지나친 성적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수의 여성이 희생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일부다처제 국가들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지역에 많은데, 이 지역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후진국'으로 분류해 온 곳들입니다. 


이 지역의 결혼제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 동네는 미개하고 서구 유럽은 우월하다는 도식을 되새기게 되지요. 그런데 이러한 도식은 과연 진실일까요? 일부다처제는 일부일처제보다 미개한 결혼제도일까요? 

인류는 일부다처제에서 일부일처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요?


일부다처제의 유래

우선, 일부다처제의 기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부다처제는 대개 유목문화 지역에서 발달된 결혼제도 입니다. 유목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건조한 지대라 동물들에게 먹일 풀이 제한적이기 때문이지요.

초원을 찾아 이동하다보면 다른 부족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이때 맞닥뜨린 부족들은 엄청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대개 싸움을 하게 됩니다. 어렵게 찾아낸 초원을 다른 부족에게 양보한다면 우리 부족의 생존이 어려워지니까요. 


이렇게 싸움이 벌어지면 죽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가위바위보나 씨름으로 승부를 낼 수는 없으니까요. 고대의 전쟁에서 전투에 임하는 이들은 대개 10대 후반에서 40대 근처의 건장한 남성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이 연령대의 남성은 대개 결혼한 상태지요. 따라서 전쟁에서 군인들이 죽는다는 것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남겨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날마다 말을 타고 양떼를 몰아야 하고, 외적에게서 부족과 동물들을 지켜야 하는 유목민족의 삶에서 남편 없는 여성과 어린 자녀들이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가장을 잃은 가족들은 도태되어야 할까요?


전쟁이 잦은 유목민족에게 부족의 머릿수는 곧 부족의 힘입니다. 아직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들을 평생 수절하도록 하는 것은 부족의 입장에서 엄청난 인적자원의 낭비인 것입니다. 따라서 유목문화의 일부다처제는 전사한 전우의 아내들을 거두어 유가족의 생존을 보장하고 이들이 계속 아이를 낳아 부족의 인구를 확보하도록 하는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의 성격을 갖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일부다처제는 인간의 도리가 아니니 당장 그만두고 일부일처를 시행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유목문화에서 그 부족의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처다부제는?

세계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문화들이 많습니다. 결혼제도도 마찬가지인데요. 일부다처제가 남성중심의 제도라 불만이실 분들을 위해 일처다부제를 소개해 볼까합니다. 


중국서부(리장), 네팔, 티벳, 인도북부의 고산지대 종족들에는 한 명의 아내와 여러 명의 남편이 사는 일처다부의 풍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는 여성들의 천국일까요?

두 명의 남편을 둔 아내

이 지역에서 일처다부제가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여기가 세계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히말라야 고산지대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산지대는 농사를 지을 만한 넓은 땅도, 동물을 먹일만한 넓은 초원도 없기 때문에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비탈을 개간해서 화전을 일구는 것이 식량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농지가 극도로 제한된 이런 환경에서는 인구유지가 최우선 과제입니다. 여타 농경민족들처럼 아이를 낳았다간 한 세대도 못 가서 굶어죽고 말 테니까요. 불과 두 세대 전의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나라였습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만 해도 6남매, 7남매가 흔했지요.


그런데 마땅한 피임도구가 없었던 과거에 어떤 방법으로 산아를 제한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아이를 낳는 여성의 수를 제한하는 것이었고, 남편들의 거부감을 가장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형제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가서, '남편의 형제와 사는 것은 음란한 짓이니 당장 멈추라'고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일부다처나 일처다부에 우리가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단지 우리가 일부일처라는 결혼제도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일부일처제에 대하여..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일부일처는 매우 자연스럽지 않은 결혼제도입니다. 90% 이상의 동물들이, 그리고 인류의 역사상 대부분의 시간은 일부다처를 유지해 왔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부다처가 옳으니 일부다처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스럽지 않음에도 일부일처제가 인류에게 받아들여지게 된 이유가 또 있겠지요.


일부일처제는 생존공동체로서의 가족이 관계 중심으로 바뀌어 가면서 비교적 근대에 나타난 결혼형태입니다. 개개인의 생존이 최우선이었던 과거에 남녀의 결합은 공동체(부족 혹은 가문)의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경제력이 생존의 필요를 능가하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 결혼은 사랑하는 남녀의 결합이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결혼에 사랑이라는 낭만적 의미가 들어가면서 발생한 부가적인 현상은 '모든 남성'이 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존이 우선과제였던 과거에 노예나 노비, 농노를 포함한 일반 남성들은 쉽게 결혼하기 어려웠습니다. 결혼에는 경제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국가체제의 정립과 경제의 성장이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안전 욕구를 충족시켰고, 이어 애착의 욕구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근대국가의 성장은 지속적인 인구의 증가에 힘입은 면이 큽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아사망률 저하와 안전한 출산 등 의학의 발전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그 시기 언저리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한 근대적 일부일처제의 영향이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일부일처제가 더 진화한, 우월한 결혼제도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부일처제 또한 인류가 주어진 환경에서 찾아낸 생존에 가장 적합한 결혼제도일 뿐입니다. 


더우기, 최근 일부일처 문화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결혼의 대상도 이성이 아닌 동성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 삶의 기반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 생존을 가문이나 부족이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 가문의 결합이라는 결혼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고, 인구의 증가가 생존을 보장하는 시대가 아니므로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줄어듭니다. 또한 개인의 욕구와 목표가 중요해지면서 결혼이라는 제도로 개인을 구속시킬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또한 결혼에서 가문유지과 종족번식이라는 의미가 빠진다면 애착 및 사랑의 욕구가 남게 되는데,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면 그 대상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중요치 않게 되는 것이지요. 현대사회의 동성애, 동성결혼은 이렇듯 결혼제도의 변화라는 관점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는 그의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문화가 틀렸다고 낙인찍고 혐오하기 전에, 그들의 가치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먼저 이해한다면,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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