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얼굴에 얽힌 미스테리
인류사에 수많은 위인들이 있었지만 예수(BC 4~AD 30 추정)만큼 유명한 분도 없을 겁니다. 신이지만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사람들을 위한 사상(사랑)을 전파한 위인이시죠.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아직도 분쟁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류의 현재를 생각해보면 사상과 종교, 신분, 귀천에 관계없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분의 메시지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종교적이거나 신앙고백과 관련된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소 생뚱맞지만 예수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과연 예수는 어떻게 생겼을까(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하는 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의 이미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교회 출입문이나 주보 같은데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죠.
이 외에도 양을 안은 모습,
기도하는 모습,
설교하는 모습,
십자가를 지고 걷는 모습,
개봉되는 영화에서,
등등 천만명이 넘는 기독교 신자가 있고 세계 10대 교회 중 7개를 보유한 우리나라답게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예수의 이미지들이 많습니다.
이런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예수는.. 일단 잘 생기셨습니다. 네. 잘생기셨습니다. 예수님이니까 뭐 잘 생기셨겠지요? 그런데 잘 생긴 건 그렇다치고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의외로 눈치채기 어려운 부분인데요.
예수가 백인의 얼굴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실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으며,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을 거두셨고,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다 이스라엘 땅, 팔레스타인 안입니다. 이집트 북쪽, 요르단서쪽, 시리아 남쪽, 이 지역이 어디입니까? 중동middle east입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활동하신 분이 저렇게 백인처럼 생겼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영국 멘체스터 대학교 연구팀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부근에서 발굴된 1세기 경 남성들의 인골 수천구의 특징을 평균하여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복원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가 살아계실 당시의 이스라엘 남성은 이 얼굴과 비슷하게 생겼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실제 얼굴은 이 사진과 가까울 가능성이 큽니다. 적어도 1세기 유대지역에 살던 남성의 얼굴이 백인보다는 이 얼굴에 가깝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충격을 받으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제가 강의에서 이 사실을 말씀드리면 대개 충격을 받으시더군요.
그러나 사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는 그동안 예수가 백인?이라는 데 추호의 의문도 갖지 않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뻔히 예수께서 중동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활동하셨다고 씌여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제한된 정보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카톨릭+개신교)는 서양을 통해 전래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양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들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죠.
서양에서 기독교가 주된 종교로 받아들여진 것은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랜 세월동안 예수의 이미지는 교회의 벽화나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등을 통해 만들어지고 서양인들의 마음에 각인되었을 겁니다. 서양사람들이니만큼 자신들에게 친근한 얼굴을 모델로 했을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의 불상이나 장승이 한국인을 모델로 한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러면서 서양인들은 예수가 진짜 서양인처럼 생겼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1500년 이상 유럽에서 발달한 종교이니만큼 그런 믿음을 갖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한 것이 '토리노의 성의'나 '마노펠로의 성면' 같은 실물 증거들입니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뒤 그 시신을 감쌌던 천입니다. 그 천에 예수의 몸과 얼굴이 찍혀 남아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노펠로의 성면'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예수의 얼굴을 닦아드렸던 베로니카라는 여인의 수건에 남아 있는 예수의 얼굴입니다. 이탈리아의 마노펠로라는 마을에서 지금도 보관되고 있지요.
이들은 예수가 실존한 증거로 과학적 증거들은 상충하지만; 종교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레스 신부라는 분의 분석에 따르면 토리노 성의에 새겨진 얼굴과 마노펠로의 성면의 얼굴이 일치한다고 합니다. 다음은 토리노 성의의 얼굴과 마노펠로 성면을 합성한 그림입니다.
이 유물들이 발견된 것은 15세기 무렵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뒤 1500년의 시간이 흐른 뒤죠. 이때 발견된 물건들이 예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토리노와 마노펠로는 둘 다 이탈리아에 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유추할 수 있을까요?
15세기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시대였습니다. 수 세기의 십자군 원정에서 유럽이 털어온 이슬람의 부는 유럽을 살찌우는 원동력이 되었고 특히 지리적으로 서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가운데 위치한 이탈리아는 그 떡고물을 제대로 챙깁니다. 그 바탕에서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이 시대에 거대한 성당들과 그 성당을 장식할 벽화 및 조각들이 엄청나게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예술품들의 상당수가 이 시기 것들이죠.
그러한 시기에 예수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지역과 성당에 엄청난 호재가 아니었을까요? 이후 이탈리아는 네덜란드와 영국 등이 떠오르기 전까지 오랫동안 유럽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사실이야 알 수 없는 일이고 이 증거들을 믿으시는 분들께는 죄송스런 상상이지만 토리노의 성의에 남은 얼굴이나 마노펠로의 얼굴이나 '중동사람의 얼굴'하고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서양사람들이야 그게 자기들의 역사고 문화였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사람들이 예수가 서양사람처럼 생겼다고 믿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리엔탈리즘 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도식은 정보를 거르는 역할을 하며, 이미 가지고 있는 이론을 확증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예수가 백인이라는 도식은 어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일례로 중동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이미 서구 중심적인 정보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유럽과 중동, 자유와 테러리즘, 선과 악,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도식이 작동하는 가운데, 서구인들의 종교인 기독교, 기독교의 신앙의 대상 예수는 유럽인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 상당수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러면 중동사태에서 '나쁜 쪽'은 어디가 되겠습니까? 서구 편향적인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정보들은 그 나쁜 쪽이 중동인들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정보들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뇌까지 전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동인'들의 테러로 숨진 유럽인들을 위해 페이스북 프사를 바꾸지만 서양군대의 폭격으로 죽어간 중동인들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당연한 일일까요? 백인의 얼굴을 한 예수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