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는 왜 그리스를 침략했나?
영화만 보시면 전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페르시아의 시커먼 야심이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마수를 뻗친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문제 많은 이 영화의 설정입니다. 진실은 찾으려 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지요;
(이 글은 '오리엔탈리즘의 폐해: 영화 300의 숨은 메시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6' 의 후속편입니다. 갑자기 뜬금없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전 글을 참고해 주세요^^. )
때는 기원전 499년, 페르시아의 이오니아 지역(아테네와 마주 보고 있는 곳)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반란군의 수장 아리스타고라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스파르타는 "거리가 멀다고" 거절하고 아테네가 원군을 보내죠. 아테네가 뭐 자유와 평화의 수호자여서 그랬느냐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시 아테네는 참주정(독재정치)에서 민주정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던 시점이었는데요. 추방된 독재자 페이시스트라토스의 가문이 페르시아에 망명을 가 있었습니다. 국내 정세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페르시아에 있다는 사실은 아테네에게는 찜찜한 일이었기에 아테네는 이오니아 독립을 지원하여 페르시아를 견제하려 한 것이죠.
이오니아+아테네 연합군은 페르시아의 사르디스를 침공하여(어... 아테네가 먼저 쳐들어갔습니다?) 도시를 싸그리 불태웁니다. 빡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버지)은 이오니아의 중심도시 밀레투스를 파괴하고 반란을 진압한 뒤, 원군을 파병했던 아테네를 혼내주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렇게 '페르시아 전쟁'이 시작이 되는데요. 페르시아 입장에서 보면 자국에 침입했던 적을 응징하는 일입니다. 헤로도토스 이후의 서양 역사가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야욕이라고 표현해 왔지만 말이죠. 그럼 페르시아쯤 되는 제국이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어줘야 되는 걸까요?
암튼 페르시아는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하구요(BC 491).. 여차저차해서 아테네는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칩니다. 전투 후에 마라톤 평원에서부터 아테네까지 달려가 승전보를 전하고 숨진 아테네 병사로부터 우리가 잘 아는 마라톤 경기가 탄생하지요.
아테네를 정벌하려던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죽고 그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아버지의 유지를 물려받아 2차 그리스 원정을 나섭니다. 영화에서 미친 또라이 전쟁광으로 묘사된 크세르크세스 1세는 사실 별로 전쟁을 하고싶지 않았었다는데요.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아버지의 유지..라는 점이 작용하여 원정에 나서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영화 300에 나온 테르모필레 전투입니다. 아시다시피 스파르타의 300용사들은 전멸하고 아테네는 불바다가 됩니다. 그러나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테네 해군이 페르시아 해군을 대파함으로써('300: 제국의 부활'이 이 내용입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퇴각을 결정했습니다. 애초에 내키지 않는 원정을 떠난 크세르크세스 1세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도 달성한 만큼 더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이 전쟁은 그리스에서는 침략군을 물리친 대대적인 승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인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와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페르시아에서도 '적들을 혼내주고 왔다'고 역시 승리로 기록하고 있지요. 여러 주체가 개입된 역사라는 건 여럿의 입장을 다 들어봐야 하는 거겠죠.
대략 여기까지가 영화에 나온 부분이구요. 영화 이후가 더 흥미롭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그리스가 최종적으로 사악한 악의 무리를 물리치고, 악의 제국은 멀리서 찌그러져 지내고 그리스는 희망차고 아름다운 날들을 이어갔을 것 같지만.. 사람 사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더군요.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과 페르시아가 한창 싸움 중일 때에도 두 세력은 활발한 교류를 갖고 있었는데요. 페르시아의 고관이 그리스로 넘어오기도 하고 그리스의 세력가가 페르시아로 망명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페르시아 용병이 되는 그리스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요.
더 막장스러운 일이 지금부터 소개됩니다.
살라미스 해전 이후 아테네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맹주가 됩니다. 페르시아의 재침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일대 도시국가들과 델로스 동맹을 맺고 대장노릇을 하게 되죠. 그런데 아테네의 라이벌이었던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독주가 꼴보기 싫었습니다.
결국 스파르타는 반 아테네 도시국가들을 규합하여 아테네와 패권싸움을 벌입니다(펠로폰네소스 전쟁 BC 431~404). 여기에는 그리스의 맹주가 된 아테네의 전횡도 한몫 했습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공동 기금을 조성했는데, 전쟁 위험이 아예 사라진 이후에도(BC 448, 페르시아와 불가침 조약) 그 돈을 자기들 돈처럼 갖다쓰는 등, 힘없는 동맹국들에게 갑질하고.. 막 그랬거든요.
아테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테네의 독주가 그런대로 유지되었으나 페리클레스 사후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지고 맙니다. 무려 28년이나 계속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싸움에서 승자는 "페르시아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스파르타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밑줄 쫙!!! 페.르.시.아.
스파르타는 아테네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레오니다스 왕을 비롯한 300명의 용사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악의 축, 사악한 제국 페르시아와 손을 잡았던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세상은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웠던 적대국들은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루아침에 동맹국이 됩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것.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 은혜를 갚는답시고 청나라와의 외교를 등한시한 조선이나.. 현재.. 중국과 러시아를 등한시하고 으흠.. 미국과.. 으흐흠...
또한 역사는 2500년 전의 어느 전투 하나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얄팍한 시도 역시 꿰뚫어 볼 수 있게 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로 아테네는 완전히 망합니다(BC 404). 그리고 개방적이고 상업에 능했던 아테네와는 달리 폐쇄적이고 경제관념이 모자랐던 스파르타는 그 잘난 중장보병을 빼면 믿을 구석이 없었습니다. 점차 쇠락하던 스파르타는 테바이에게 패권을 넘겨주고(BC 371), 테바이도 곧 마케도니아에게 그 자리를 내줍니다(BC 338).
우리의(?) 페르시아는 이때까지 꿋꿋이 드넓은 제국을 관리하며 잘 살고 있었습니다. 스파르타를 이용하여 숙적 아테네의 뿌리를 뽑아내는 등, 페르시아 전쟁의 최후 승자는 페르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평정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로 쳐들어오기 전까는 말이죠;
스파르타를 물리친.. 테바이를 물리친.. 마케도니아의 왕이 바로 그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입니다. 이 양반은 왕이 되자마자 테바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고 나서는 페르시아를 시작으로 인더스 강 근처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불과 12년 동안 점령하고 32세의 나이에 전장에서 눈을 감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의 유럽+중동+인도 일대의 역사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하지요. 모두들 정복왕 알렉산드로스의 현란한 무공과 그리스문화와 토착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 문화의 아름다움을 찬탄해 마지않지만 현대 서구 우월주의의 뿌리가 된.. 해당 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골치아픈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대해서는 언제 또 기회가 되면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