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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an 14. 2016

오리엔탈리즘의 폐해: 영화 300에 숨은 메시지

스파르타 vs 페르시아, 서방해방군 vs 중동테러리스트

300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의 이야기죠. 평화롭게 잘 지내던 그리스에 전쟁의 기운이 감돕니다. 악의 무리 페르시아가 투항을 요구해 온 것입니다. 용맹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은 페르시아의 사신을 개구멍에 차넣으면서 그 유명한 대사를 외칩니다.

디스 이스.. 스파르타!!!

이제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흉폭하기 짝이없는 페르시아의 100만 대군이 그리스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생긴 것만 봐도 과연 흉악무도해 보이는군요. 아아.. 그리스의 앞날은 어찌 될까요..

우리의 레오니다스왕과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은 용감하게 싸웠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맞습니다.

사랑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승산없는 싸움에 뛰어든 레오니다스와 300용사들의 비장한 죽음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낸 이 영화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영화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눈으로 본 동방(동양)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일컫는 말이죠. 오리엔탈리즘으로 본 동방은 실제 동방과는 전혀 상관없는 '서양이 보고 싶어하는 동방'이 되기 때문에 동방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오리엔탈리즘 1 참조).


이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페르시아가 바로 서양인들이 본 동방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고 있는데요. 일단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그리스 문명으로 봅니다. 철학, 과학, 민주주의 등 현대 서양에서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들이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리스에서 동쪽에 있으면서 그리스와 적대관계였던 페르시아가 자연스럽게 악역을 맡게 됩니다. 단지 지리상의 구분이었던 서양 vs 동방의 구분은 페르시아의 침략과 함께 선 vs 악의 구도로 넘어가게 되고, 그 결과 이 영화에서의 이미지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죠.


영화에서 그려진 페르시아인들을 보면 위의 사진에서도 보셨고 아래 사진에서도 보이다시피..

크아아아앙

대단히 흉악무도하고 거칠고 잔인한 야만인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묘사가 철저히 잘못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영화에서 빡빡머리에 웃통은 벗고 온갖 황금 장신구를 휘감고 포효하는 저 친구가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인데요.


이 양반은 사실 아래 사진처럼 생겼습니다. 아버지 다리우스 1세의 사진이긴 합니다만; 같은 제국의 왕이고 아들이니까 크세르크세스 1세도 비슷하게 입었었겠죠?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버지 다리우스 1세

네.. 입을 거 다 입으신 분입니다. 머리에 쓴 관과 치렁치렁한 의상은 왕의 위엄을 드러내주고, 손에 든 잔과 지팡이는 제국의 풍요와 번영, 그리고 그 제국이 잘 정비된 행정제도로 다스려지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크세르크세스1세는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최전성기때의 왕입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영토는 소아시아에서 이집트, 인더스강 인근까지를 아우르는, 당대 그리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문명국들을 통합한 대 제국이었습니다. 이런 제국의 지배자가 저렇게 조폭처럼 웃통벗고 금목걸이 번쩍거리며 교양없이 행동했을까요?


크세르크세스 1세 당시 페르시아의 영토


사람들은 착한 그리스 vs 못된 페르시아의 도식을 지키려고 노력할 겁니다. 

'뭐.. 땅은 넓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막 미개하고 그랬을거야. 쟤가 막 폭정을 하고.. 백성들은 억압에 시달리고.. 그랬겠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케메네스왕조의 창시자 키루스 대왕은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바빌론 제국을 병합하고 일종의 인권선언문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보면 모든 시민들은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노예제도를 금하고, 국가사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급여를 지급한다고 나옵니다. 우리가 막연히 상상했던 미개, 억압, 폭정.. 등등과는 매우 상반되는 기록들입니다. 


참고로.. 바빌론에 잡혀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돌려보낸 것이 이 키루스 대왕(성경의 고레스 왕)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왕이 영화의 저 빠박이(크세르크세스 1세)라는 사실입니다. 암튼 뭐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영화는 페르시아를 저따위로 묘사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편인 그리스(스파르타)와 대비되는 강렬하고 부정적인 적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역사는 왜곡되고 동방에 대한 이미지 역시 부정적으로 변해갑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영화에 나오는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전쟁이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페르시아가 있는 중동 지방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계속해서 서방세력과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등에 업은 미국 중심의 서방 대(vs) 중동 이슬람 국가들(현재의 IS말고..)이라는 구도가 떠오르게 됩니다.


영화 300의 그리스 vs 스파르타는 자연스럽게 현 중동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방 vs 중동의 갈등과 오버랩되면서 '착한 서방'과 '사악한 중동'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이죠. 이 영화를 보면서 페르시아 편에 자신을 동일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큼 선 vs 악의 단순한 구도로 만들어진 영화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현실도 영화처럼 그렇게 단순하기만 할까요?

전세계적 골칫덩이로 떠오르고 있는 IS를 비롯해서 현재의 중동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시대부터 계속된 서방의 정치공작과 2차대전 이후의 이스라엘 건국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 문제, 중동의 석유를 둘러싼 이권다툼, 아랍 국가들 사이의 뿌리깊은 정치적, 종교적 갈등 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CNN에는 오직, 자유와 평등, 정의를 위해 어둡고 미개한 지역에서 싸우고 있는 서방의 군대를 보여주니까요. 이렇게 중동에 대한 우리의 도식은 선 vs 악의 싸움으로 단순화되고 서방의 언론들을 거쳐 걸러진 정보들은 이 도식을 확증하는데에만 활용될 겁니다.


해방군으로서의 서방군대와 흉폭한 이슬람 테러리스트


이것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오리엔탈리즘의 폐해 중 하나입니다. 세계의 모든 현상을 서방 중심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경향은 영어열풍을 타고 훨씬훨씬 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어공부를 위해 보고 듣는 Voice of America나 CNN, BBC 등이 어느 편 언론인지 생각해보시면 사태의 심각성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들은 전혀 가치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문화를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여담으로.. 페르시아라는 명칭 자체도 서구중심적 시각을 잘 보여줍니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아케메네스왕조의 수도가 있었던 '파르스'에서 유래됐는데요.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단 한 번도 페르시아라고 부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자기들을 부르던 이름은 '이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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