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지난 글에 언급한 '대항해시대'란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대항해시대란 15~16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 세계로 진출하던 시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의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다른 나라에 식민지를 건설하던 시기이지요.
세계사를 읽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로망의 시대입니다. 드넓은 바다, 꿈과 희망과 모험. 이국적인 풍경과 금은보화.. 어릴 적에 일본 KOEI사에서 나온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밤새는 줄도 모르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항해시대를 촉발한 사건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콜롬버스는 스페인 이사벨라여왕의 후원을 받아 1492년 아메리카 대륙(바하마 제도)을 '발견'합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당대 유럽인들은 세계에는 세 개의 대륙, 즉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만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T-O지도라는 지도를 쓰고 있었는데요.
그림을 보시면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에 있고 위쪽에 아시아, 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이 있구요. 홍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가 있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 지중해가 있구요. 세 대륙의 바깥에는 거대한 바다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콜럼버스는 유럽의 서쪽, 즉 세상의 끝으로 항해를 나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다의 끝은 낭떠러지로 되어 있어서 거기까지 간 사람들은 모두 떨어져 죽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도전은 대단히 무모한 짓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새로운 대륙(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은 섬이었지만서도..)이 나타났으니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도 이해가 갑니다. 이전까지의 세계관을 뒤집는 일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콜럼버스는 자기가 발견한 땅이 인도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사실 유럽에서 인도를 가려면 아시아를 넘어 한참한참 가야되지 말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당연히 인도사람이라 생각했죠. 우리가 남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을'인디언(인디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콜롬버스의 착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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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나 '대항해시대'라는 용어를 매우 익숙하게 쓰고 있습니다. 인류사에 없었던 새로운 대륙이 유럽의 한 항해자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고, 인류는 그때를 기점으로 새로운 곳에 '진출'하게 된 것일까요?
이러한 생각은 상당히 유럽중심적(서구중심적)인 사고입니다. 그 땅에서 계속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도 거기가 '신대륙'일까요? 그들 입장에서 1492년의 그 사건을 기술하자면 한 무리 유럽인들의 '방문'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유럽인들은 신대륙 발견 이후로 식민지로부터 엄청난 부를 끌어모읍니다. 유럽은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키게 되고 인류사의 변방이었던 유럽이 문명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됩니다.
반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콜럼버스의 방문을 기점으로 헬게이트가 열립니다. 유럽인들은 그들을 기본적으로 자신들과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콜럼버스 자신부터가 개를 풀어 원주민들을 물어죽이게 하거나 어린 원주민 소년들에게 할당량의 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손목을 자르는 만행을 저지르죠.
불과 수십 년만에 남북아메리카에서는 두 개의 문명이 사라지고 막대한 양의 금은보화가 유럽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우리가 찬탄해 마지 않는 근세 유럽의 성취는 이들의 희생으로부터 피어난 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역사는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서술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역사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유럽(을 비롯한 서구)은 정치, 경제, 사회, 학문, 문화, 예술, 스포츠..등 모든 인간활동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런 생각들이 우리가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을 판단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구가 모든 인간행동의 표준이 되기 때문에 서구가 아닌 지역의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서구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이해되기 쉽죠.
"어?, 맞는 말 아닌가? ..사실이 그렇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많을 줄 압니다. 바로 요 지점이 어려운 점입니다.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을 달리 생각해 보는 것. 문화이해의 기본 전제가 되는 포인트지요.
대항해시대로 시작된 유럽의 강세는 산업혁명 이후의 제국주의시대를 거치며 더욱 확고해집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거치며 형성된 사고방식들이 현재까지도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국주의 시대가 우리의 문화이해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