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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an 25. 2016

피라미드 건축의 비밀

피라미드는 누가? 왜 만든 것인가?

한선생 한걸음 문화심리학의 인기글 3위는 의외로 '외계문명설: 변형된 오리엔탈리즘'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고대문명의 유적들이 사실은 외계인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외계문명설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 즉 서구의 시선으로 왜곡된 동방이라는 이야긴데요. 


유입 검색어를 보면 피라미드는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피라미드를 만든 것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심층기획으로 마련해보았습니다. 

                 

외계인이 피라미드를 만들었을 거라는 주장은 고대 이집트 기술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합니다. 즉, 고대 이집트(BC 2485~2475 추정)의 원시적인 도구와 기술로는 피라미드같은 거대하고 정교한 건축물은 만들 수 없다는 주장이죠. 과연 그럴까요? 피라미드 건설의 비밀을 하나씩 살펴봅시다.


돌을 어떻게 떼어내고 다듬었을까?

피라미드의 건설에 사용된 돌은 대부분이 석회암입니다. 석회암은 석회물질이 물밑에 쌓여 굳어진 퇴적암으로, 경도가 가장 무른 활석 다음으로 가공하기 쉬운 재료지요.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원시적인 연장으로도 얼마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크기의 돌을 떼어내고 가공할 수 있었습니다. 

피라미드 채석장 전경

돌에 나무로 된 쐐기를 박고 물을 부으면 나무의 부피가 늘어나면서 돌이 쉽게 쪼개집니다. 실제로 카이로 인근의 한 고대 채석장에서는 다듬다 만 오벨리스크가 발견되었는데, 돌을 떼어내고 다듬던 쐐기와 정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돌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채석장에서 피라미드가 건설되는 장소까지는 50km에서 최대 900km에 이릅니다. 바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고대에 과연 굴대(롤러)만으로 평균 2.5톤에 달하는 돌을 운반하는 일이 가능했을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배죠. 채석장들과 피라미드 건설장의 위치는 나일강변입니다. 돌들은 우기에 범람한 나일강의 흐름을 타고 채석장에서 건설장소로 옮겨졌습니다.

나일강에는 길이 40m가 넘는 배들이 다녔습니다.

이집트에 배가 있었냐구요? 네 있었습니다. 1954년 대피라미드 남쪽에서 발견된 '제1 태양의 배'는 당시 이집트의 조선 능력을 잘 보여줍니다. 현재 원형이 복원돼 전시되고 있는 이 배는 총길이 42.3m, 폭 5.6m로서 한번에 약 1백50톤의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피라미드에 사용된 최대크기의 석재의 무게는 70톤입니다.


어떻게 쌓아올렸을까?

그렇다면 가져온 돌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쌓았을까요? 그 무거운 돌들을..

스핑크스 덕후로 유명한 시카고 대학의 레너 교수는 고대의 연장만을 사용해서 50명도 채 안되는 인원으로 0.75t에서 3t에 달하는 1백86개의 돌로 8층짜리 피라미드를 건설했습니다. 이때 걸린 시간이 3주일입니다. 고대인들이 충분히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크 레너 교수(왼쪽)와 하와스(오른쪽)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런 미니미니한 피라미드 하나 만든 것으로 고대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방법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피라미드는 한 변의 길이가 290m, 높이 147m, 돌의 갯수 230만개, 추정 무게가 600만 톤이 넘으니까요.. ㄷㄷㄷ


그러나 규모는 문제가 아닙니다. 적절한 기술과 공법만 있다면 못 할 일은 아니죠. 프랑스의 건축가 장 피에르 우댕은 피라미드가 두 가지 건설방법으로 건축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기단부터 43m 지점까지는 외부 경사로를 이용하여 쌓고,

요기까지는 외부경사로를 이용하고...

이후부터는 피라미드의 외벽에 나선형 경사로를 만들어 돌을 운반했다는 것이죠.  

요렇게 외벽에 나선형 경사로를 만들어가지고...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서 경사로의 경사각은 9~10도 정도로 유지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대피라미드에 대한 근래의 조사에서 외부경사로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요. 우댕은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4,000명의 인원으로 대피라미드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피라미드는 당대 사람들의 손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외계인이 아니구요. 이집트에는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훨씬 많습니다.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증거는 사실상 없죠. "설마 저렇게 크고 정교한 것을 옛날 이집트인들이 만들었을라구.."하는 믿음밖에는요.


자. 사실 제가 보여드린 증거는 이미 돌고 돌던 것들입니다. 뉴스로도 여러 차례 나왔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도 다뤄졌었습니다. EBS에서도 '문명과 수학' 시리즈에서 방영된 바 있지요.^^ 하지만 이미 '외계문명설'의 도식을 쓰는 분들에게 이런 정보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제가 문화이해에서 '도식'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 찜찜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제 피라미드가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치자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도대체 왜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요?


피라미드에는 종교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그간의 정설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신 그 자체였는데요. 이들이 죽고 나서 사후에 머물 곳, 즉 파라오의 무덤이 피라미드라는 것입니다. 파라오들은 살아있을 때부터 피라미드 건설에 힘썼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예들이 동원되었다.. 이게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요.


피라미드는 노예들이 만들었다?

어서 돌을 날라. 이  노예들아! 

성경의 출애굽기에 근거하여 제작된 영화 십계 등의 영향으로.. 이스라엘 노예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잔학한 파라오의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피라미드 등의 거대 건축물 건설에 동원되었다는 썰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최근에는 영화 10,000BC에서 사악한 이집트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신석기 부족들을 납치해서 피라미드를 짓게 했다는 설정이 나왔습니다. 제가 영화 300가지고도 글 하나 올렸었는데 이 영화도 상당히 문제가 많은 영화입니다..

영화 10,000BC에서 돌을 나르고 있는 노예들과 매머드

어느 쪽이나, 피라미드는 국력은 강하나  잔인하고 사악한 세력(이집트인)에 의해 일개 개인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동원된 노예들의 피땀으로 건설된 것이라는 가정을 담고 있습니다. 


피라미드는 임금노동자가 만들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고고학적 자료에 따르면 피라미드는 노예가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까 저 위에, 스핑크스 덕후 레너 교수와 같이 사진을 찍은 자히 하와스라는 학자가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몇 가지 의미있는 발굴을 합니다. 그 자료에 따르면...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피라미드를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은 파라오와의 자유계약을 통해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했는데요. 노동자 한 사람이 네 자루의 밀과 한 자루 반의 보리, 기름과 야채, 과일, 생선, 육류등을 풍족하게 지급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근 18세기까지의 유럽인들의 임금수준을 웃도는 것이었습니다. 네, 피라미드 건설연대는 기원전 2500년 경입니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가 건설된 때지요.


자세한 내용을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씩 8일 작업을 하고 2일을 쉬었는데요. 이 쉬는 동안에도 임금을 받았습니다. 하루 8시간은 커녕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기원후 2016년의 어느 나라하고 비교가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채찍질하는 감독도 없었습니다. 당시 서기들이 기록한 결석자 명단을 보면 노동자들이 작업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요. 


뭐 이런 이유들로 결근을 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노동자들은 임금이 체불되자 파업을 하는가 하면 피라미드 옆에 자신들의 무덤을 만드는 등 몹시 자유롭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증거들이 많습니다. 노예들이 채찍질 당해가며 피라미드를 만들었다는 상식은 빨리 수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지사업으로서의 피라미드 건설

그럼 피라미드는 도대체 왜 만든 것일까요? 왕의 사후세계만을 위해서?

카트 멘델슨 같은 학자는 피라미드를 일종의 복지사업으로 이해합니다.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민이었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하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 근처는 비가 별로 안 오지만 나일강의 상류인 에티오피아 근처에는 비가 엄청 오기 때문에 나일강은 1년에 4개월이나 범람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강이 넘치면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할 게 없어지고 가정에는 수입이 끊기게 됩니다. 이는 이집트에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니지요. 이러한 사람들에게 수입을 제공하기 위해 이집트의 지배층들은 평소에 거둬들인 세금을 이용해서 국가주도의 건설사업을 벌였던 것입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도 상당히 발전된 개념의 복지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하와스는 기자 지구 피라미드 건설 당시 노동자들 식량으로 날마다 소 21마리와 양 23마리가 제공됐다며, 이를 근거로 노동자 수를 1만명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노예 10만명이  20년동안 동원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썰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수지요. 이들은 가족과 함께 공사장 근처에 집을 짓고 살면서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피라미드를 지었던 것입니다.



다시 오리엔탈리즘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한 서양인(유대인이 왠지 편의상 서양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들을 노예로 부리는 사악한 동방인(이집트인)이라는 도식이 그대로 살아있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사고입니다. 


이집트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1948년 중동 한복판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미국과 유럽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위시한 주변 중동국가들은 길고 긴 분쟁의 터널로 빠져들게 되는데요. 1~4차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과 대척했던 중심국가가 바로 이집트였습니다.


착한 이스라엘 노예들을 사정없이 수탈했던 사악한 이집트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낸 영화 십계가 제작된 1956년은 2차 중동전쟁(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이집트 침공)이 벌어지던 해였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크흑.. 우리 모세님을 ㅠㅠ, 이 이집트 놈들 ㅂㄷㅂㄷ

결국 피라미드를 외계인이 건설했다는 주장이나 노예들이 만들었다는 주장 모두 서양에 의한 몰이해 내지는 의도적 왜곡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들은 피라미드가 이집트의 복지제도의 일환으로 자유 노동자들에 의해 건설되었음을 거듭거듭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제까지 피라미드의 놀라운 규모에 감탄하는 한편, 정작 그 피라미드를 만들어낸 이집트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감탄을 아껴왔습니다. 이제 이집트와 이집트 문화에 대해서 살짝 미안한 마음을 가지셔도 됩니다. 그리고 어디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피라미드와 이집트처럼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도 살짝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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