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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Dec 19. 2015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

신(神) 또는 괴물, 신화적 이해

한선생의 이미지는 악학궤범에 실린 '처용'의 얼굴입니다.
처용은 삼국유사 헌강왕 조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어느날 헌강왕이 개운포(울산)에 순시를 나갔는데 바다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냐고 묻자 그 사람은 '나는 용왕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처용은 진짜 용왕의 아들이었을까요?

처용의 얼굴

문화의 교류가 많지 않던 고대 사람들은 외국 사람을 처음 봤을 때 괴물 내지는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켄타우로스 족 아시죠? 하반신은 말이고 상반신은 사람인.. 
켄타우로스 족은 해양민족이던 그리스 사람들이 내륙을 여행하다 발견한 기마민족의 이미지일 겁니다. 말이란 동물도 처음 보는데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켄타우로스

그런 것처럼 처용도 신라에 여행 온 외국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헌강왕은 9세기(AD 875~886)에 재위한 왕인데요. 9세기는 이슬람 세계의 확장으로 아랍상인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던 때입니다. 

실제로 이슬람 학자들(AD 851-술라이만, 996-알 마크디시, 1145-알 이드리시)이 신라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요. 신라에는 금이 흔하고 자연이 아름다우며 사람들도 예쁘고 잘생겨서 신라 땅에 정착한 아랍 상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신라에 정착한 아랍인들은 독특한 외모와 체형으로 신라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신라 원성왕의 무덤인 괘릉의 무인석을 보시면 상당히 이국적인 무인의 모습인데요. 당시 신라의 왕족이나 세력가들은 덩치가 좋고 험상궂게 생긴(신라인 기준으로) 아랍인들을 고용해서 보디가드로 썼다고 합니다. 괘릉 무인석은 그 흔적이지요.

괘릉 무인석

처용도 헌강왕에 의해 채용되어 공무원으로 근무합니다. 아리따운 신라여인과 결혼도 시켜주죠. 하루는 처용이 야근을 하고 늦게 퇴근해보니 아내가 역신(疫神)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닙니까? 처용은 조용히 물러나며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이불 밑에 다리가 네개인데 둘은 내 것(아내)이지만 둘은 뉘 것인가.."하는 그 노래 말입니다.

노래를 들은 역신은 참회하며 "당신의 얼굴 그림만 봐도 그 집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 후로 신라사람들은 역병을 막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그려 문에 붙이고 처용이 부른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때 부른 노래와 춘 춤이 중요무형문화재 39호 처용무입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죠. 

처용무

오랫동안 사람들은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을 괴물이나 신 같은 신화적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고 그들이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런 방식의 이해는 점차 바뀌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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