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객관화의 첫 걸음
우리가 사는 나라, 한국은 작은 나라입니다. 남한의 면적은 99,720㎢로 이웃나라 일본의 약 1/4정도의 넓이입니다. 참고로 이 넓이는 중국의 1/96, 미국의 1/98, 러시아의 1/170에 해당합니다. 정말 작다구요?
우리나라는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은 면적 순위로 109위에 해당합니다. 세계에는 총 237개(세계지도 표기)의 나라가 있습니다. 109위면 상위 50% 안에 드는 순위입니다. 세계에는 우리보다 작은 나라가 120여개나 더 있는 셈이죠.
실제로 많은 나라가 있는 유럽 한복판에 우리나라를 갖다 놓으면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보다 작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122,762㎢)이 더해지면 222.482㎢로 세계 85위에 해당하는 면적이 됩니다. 영국(243,610㎢)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작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세계지도에 우리나라가 진짜 조그맣게 나오기 때문인데요. 눈으로 보기에도 작으니 실제로도 작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것은 지도의 만드는 방식 때문에 나타나는 오류입니다.
현재 세계지도는 대개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려집니다. 구형인 지구를 평면화하는 과정에서 경도선이 완전히 모이는 극지방을 적도의 경도와 같은 비율로 편 것이 메르카토르 도법입니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항해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실제 면적이 왜곡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린란드나 남극대륙의 넓이가 어마어마하죠? 적도에 가까울수록 정확하지만 극지방에 가까울수록 실제 크기보다 더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피터스 도법인데요. 쉽게 이해하자면 실제 면적을 반영하기 위해 고위도로 갈수록 위도 간 길이를 줄였다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학자들은 대항해시대에 개발된 메르카토르 도법이 유럽과 북미의 크기는 확대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의 크기는 실제보다 작게 보이게 만들어 서구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고 주장 합니다. 미국 메사추세츠 보스턴 교육당국은 이런 이유에서 학교에 붙어있는 세계지도를 피터스 도법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도 도법의 차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늘 보고 듣고 느끼는 내용에 따라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자기 나라가 실제 크기보다 작은 지도를 보면서 사람들은 나라가 작으니 거기 사는 사람들도 별 볼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사람들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한 주, 중국의 한 성보다도 작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작은 영토에 묘한 열등감을 느끼거나, 심지어 '코딱지 만한 나라에서 맨날 갈라져 싸움이나 하고...'등의 비하적 표현까지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단히 문제가 많은 인식입니다.
첫째, 땅이 작다고 사람들까지 시원찮다는 생각은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한국보다 96배가 크지만 중국사람들이 한국인들보다 96배 잘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죠. 한국은 면적으로는 세계 109위이지만 경제력으로는 세계 12위입니다.
군사력, 외환보유고 등 국력을 가늠할 수 있는 각종 지표에서 세계 10위 권 안에 있는 나라죠. IMF는 2016년 세계 10대 선진국에 한국을 포함시키기도 했습니다. IQ나 학생들의 수학능력, 과학기술 관련지표와 문화산업의 규모 및 영향력에 있어서도 한국은 쉽게 볼 나라가 아닙니다.
더구나 한국은 이 모든 지표를 지난 6,70년 동안 이뤄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저개발국으로 분류되던 나라 중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나라가 커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둘째, 작은 나라는 갈라져 싸워서는 안된다..는 생각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코딱지 만한 나라에서' 운운하는 말들은 작은 나라는 당연히 잘 통합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생각인데요. 세계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이게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북한 면적과 비슷한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의 네 개의 나라가 아직도 통합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월드컵에도 죄 따로 나갈 정도지요. 독일은 1871년 프로이센에 의해 통일되기 전까지 300개가 넘는 소국들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죠.
최근 스페인에게서 독립을 선언한 카탈루냐 지방의 면적은 32,111㎢로 경상도 넓이 입니다. 한반도 정도의 면적에서 3,4개의 지방이 대립하는 것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있어왔던 일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의 지역갈등은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확대재생산된 측면이 크죠.
셋째, 우리와 땅 넓이를 비교하는 중국, 러시아, 미국은 세계사적으로 괴이한 방법으로 영토를 늘린 나라들입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유럽계 이민자들이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학살해가며 대륙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케이스고, 중국과 러시아는 공산혁명으로 세워진 정부가 2차 세계대전 후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나라들을 엄청나게 침공해서 영토를 넓힌 경우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착한 심성(?) 때문에, 혹은 정당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그 땅을 갖게 된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굳이 이런 나라들과 땅 크기를 비교해서 자존감을 낮추고 쓸데없는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국토면적 세계 109위인 우리나라가 코딱지만하고 그래서 그렇게 보잘 것이 없으면, 110위부터 237위까지의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대단히 높이 평가하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등은 남한의 반도 안 되는 면적을 가진 나라들입니다. 그렇다고 그 나라 사람들이 땅이 좁다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땅이 좁은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65평에 사는 사람이 18평에 사는 사람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듯이 국토의 면적이 그 나라 사람들의 지위를 결정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큰 집에 사는 것이 그 사람의 지위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우리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대한민국은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니며, 국토의 크기와 관계없이 이미 충분한 저력을 보이고 있는 나라입니다. 비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필요 이상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에도, 상대방과의 건강한 관계형성에도 해가 되는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