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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Nov 24. 2017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의 진실

인디언들의 입장에서 본 추수감사절

미국에서 11월 넷째 주 목요일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로 불리는 명절입니다. 1620년 종교박해를 피해 영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1621년, 미국에서 첫 수확을 거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유래를 가진 날이죠.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깊게 받은 한국에서도 11월 셋째 주 일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수가 끝난 뒤로도 달포나 지난 뒤에 찾아오는 기념일인 셈인데요. 한국의 추수감사절이라 할 수 있는 추석보다도 훨씬 나중에 있는 이 날은, 절기로 보나 역사적으로보나  사실상 '미국'의 기념일입니다. 


미국에서 이 날이 뜻깊은 이유는 그들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애초에 영국에서 떠나온 이민자들이었던 미국인들의 조상들이 미국에서 맞는 첫 수확은 그들이 새 땅에 비로소 정착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죠.  


19세기 말까지 이 날은 뉴잉글랜드(미국 북동부 동해안 지역의 6개 주) 전역에서 축제로 자리잡았고 1863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미국의 공식 국경일로 선포됩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인들의 대표적인 명절로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여 칠면조 등의 요리를 먹으며 즐기는 날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미국 사람에게만) 뜻깊은 날에는 잊혀진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역사죠. 콜럼버스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땅을 인도라고 믿었기에 생긴 '인디언'이라는 초월적 이름을 갖게 된 이들은 '위대한 미국'의 역사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존재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의 실체에 다가가 보고자 합니다. 어떠한 사건이나 현상의 의미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구성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화심리학이 전제로 삼고 있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입니다. 



메사추세츠 남동 해안 플리머스 록에 상륙한 첫 이주민들(필그림)은 곧 정착지를 건설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추위, 굶주림 등으로 그 해 겨울 도착한 인원의 절반이 사망합니다. 도착할 때 102명이었던 필그림들은 53명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플리머스 록에 상륙한 필그림

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 희망의 땅을 찾아온 이들을 구원한 것은 근처에 살던 인디언 '왐파노아그' 부족이었습니다. 왐파노아그 족에는 스콴토라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족은 그를 통해 정착민들에게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은 물론 농사지을 땅과 농경 및 어업기술을 제공합니다. 


왐파노아그 부족의 도움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은 정착민들은, 이듬해(1621) 추수를 마치고 왐파노아그 부족 90여명을 초대하여 성대한 축제를 엽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의 시초입니다. 

인디언들과 정착민들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플리머스를 시작으로 영국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미 북동부 해안 일대로 6개의 주(메사추세츠,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가 건설됩니다. 점점 늘어나는 인구로 더 많은 땅이 필요하게 된 이들과 그 땅에 이미 살고 있었던 인디언들과의 갈등은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원주민과 이주민과의 화합의 축제가 열린 지 54년이 지난 1675년, 왐파노아그 부족과 플리머스 정착민들은 전쟁을 벌였고, 이 싸움의 결과로 600명의 정착민과 4000명의 인디언이 희생되었습니다. 추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왐파노아그 족은 학살되었으며, 추장의 아내와 8살 아들은 노예로 팔려갔죠.


슬픈 역사는 그 이후로 계속됩니다. 우리가 '서부개척시대'라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이름으로 부르는 그 시대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실로 끔찍한 시대였습니다. 그들은 선조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나 소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가져온 전염병과, 알콜 중독, 부족들을 이간시키기 위한 계략 등으로 서로 싸우다 죽어갔습니다. 강제이주에 저항하거나 맞서 싸운 인디언들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서부개척시대 미국 기병대의 '영웅적인 전투'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죠.

운디드 니 학살

그 결과,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때 3천만명으로 추산되는 인디언들의 인구(학설에 따라 500만에서 6천만, 1억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는, 백인들과 인디언들의 마지막 전투였던 '운디드 니(1890)' 학살 즈음에는 25만명으로 급감합니다. 


현재 인디언들의 후손은 미국 영토의 1.5%에 해당하는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과 역사, 문화, 언어와 전통을 잃어버린 채, 전통의상을 입고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팔면서 말이죠.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 추수감사절, 정오가 되면 왐파노아그 부족을 필두로 하는 뉴잉글랜드 원주민 연합(UAINE)은 애도의 날(National day of Mourning) 행사를 개최합니다. 


그 날은 그들에게, 수백만의 인디언들이 목숨을 잃은 것을, 선조들이 살던 땅을 빼앗긴 것을, 수천의 부족과 그만큼의 언어, 그만큼의 문화를 빼앗긴 사실을 일깨우는 날입니다.


출처_ http://www.uaine.org/

We Are Not Vanishing (우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We Are Not Conquered (우리는 정복당하지 않았다)

We Are As Strong As Ever (우리는 강하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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