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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Mar 26. 2018

러시아는 왜 황제를 원하는가?

푸틴 연임의 문화심리학적 배경

3월 18일, 푸틴이 러시아의 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 러시아의 3대 대통령에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4대 대통령을 연임하였고, 5대 메드베데프 대통령 때는 총리를 맡아 실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6대 대통령에 다시 당선되었고 이번에 7대를 연임하게 된 것입니다.


2024년까지 무려 24년 동안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 푸틴. 이오시프 스탈린의 31년 집권 후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우고 있는 그의 연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가 러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랜 고정관념대로, 독재가 일상화된 공산주의 국가의 당연한 모습일까요? 


방사능 홍차로 상징되는, 잔인하고 철저한 정적 관리로 악명이 높은 푸틴이기에 그의 장기집권은 야욕에 불타는 권력자의 독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독재자에게 핍박받는 민중들의 이미지와는 달리 푸틴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푸틴의 역대 대선 득표율은 2000년 53.4%, 2004년 71.3%, 2012년 63.6%, 2018년 76.6%로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국정지지율 70%를 달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이 41.1%였던 것과 비교해도 푸틴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지지가 얼마나 절대적인가를 잘 알 수 있는데요. 


러시아인들은 왜 이렇게 푸틴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우선 러시아의 환경적, 지리적 조건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니까요.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17,098,200㎢의 면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춥고 척박한 땅이기도 하죠. 현재도 대부분의 인구가 우랄 산맥 서쪽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거칠고 광대한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절대자인 자연 앞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만 했을 것입니다. 


두번째는 역사입니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했느냐에 따라 집단의 문화는 달라집니다. 개인의 성격이 형성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지요. 러시아는 오랫동안 이민족들로부터 침략과 지배를 당해왔습니다. 러시아의 영토가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걸쳐있기 때문인데요.

특히 1240년~1480년의 원나라의 지배는 러시아인들의 의식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는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난립해 있던 유럽과는 전혀 다른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240년 동안 황제라는 강력한 절대군주가 군림하는 원 제국의 일부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죠.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이후 러시아 역사의 모든 것을 쥐고 있는 열쇠로 봅니다. 러시아는 유럽과 분리되어 전제정치, 중앙집권, 전체주의 문화 등 절대권력과 지배자에 대한 순응적인 태도를 체화하게 된 것이죠. 러시아인들의 푸틴에 대한 사랑은 우선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세번째 이유는 러시아인들의 자존심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 러시아는 근대 이전까지 유럽의 변방에 불과했는데요.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세운 이가 바로 표트르 대제(1672~1725)입니다. 푸틴의 집무실에 초상화가 걸려 있다는 바로 그 양반이지요.


근대 러시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표트르 대제는 약소국이었던 유럽의 문물을 수입하여 러시아의 제도를 정비하고 오스만투르크 및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등, 러시아가 유럽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푸틴의 워너비, 표트르 대제

이후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에 이어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이르기까지 강대국으로서 세계사에 자취를 남깁니다. 특히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던 냉전 시대,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위엄은 그야말로 후덜덜 했지요. 이러한 역사를 통해 러시아인들은 과거의 아픔을 잊고 민족적, 국가적 자부심을 회복할 수 있었는데요.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90년대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연방으로 묶여 있던 나라들이 독립한 데다 오랫동안 경직돼있었던 경제체제가 갑작스런 개방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개혁개방의 실패와 체첸 전쟁의 패배 등 연이은 악재로 국민소득이 75%까지 줄어든 러시아는 결국 1998년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을 선언하고 맙니다. 


당시 대통령이던 보리스 옐친은 임기를 채 마치기 전에 총리였던 푸틴에게 권한을 이양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푸틴 집권의 시작입니다. 집권 후 푸틴의 행보는 '강한 러시아'로 요약됩니다. 유가를 이용하여 경제를 안정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복지와 사회제도를 정비하여 국민들의 강한 지지를 받게 되지요.

국제적으로도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을 틀어쥐고 서방세계를 압박하는 한편, 꾸준히 군비를 확장하여 군사적으로도 과거의 영광을 회복해 가는 중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푸틴은 슈퍼 신무기 5종을 공개하며 막판 지지율을 끌어올렸습니다. 


푸틴의 개인적 특성도 그가 내세우는 '강한 러시아' 전략과 잘 부합합니다. 구소련 정보기관이었던 KGB출신이이라는 이력에, 200조에 육박한다는 재산, 곰을 타고 다니며 사냥을 즐기는 호방함(?), 외국 정상들 앞에서의 결례에 가까운 거침없는 행보 등, 푸틴은 강한 러시아를 이끌기에 충분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와의 회담에서 개를 풀어놓은 푸틴..

이렇듯, 푸틴의 장기집권은 단순히 한 독재자의 꿈에 그치지 않습니다. 푸틴의 연임과 높은 지지율에는 러시아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기반이 약화되고 크림 자치공화국 합병 등 주변국들과의 갈등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푸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보면 러시아 국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무너졌던 자부심의 회복이 그것이지요.


2024년 7대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푸틴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러시아인들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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