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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n 30. 2018

마음은 Mind인가?

한국인의 마음 이해, 그 첫번째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판단하고 행위하는 근거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심리학이 주류심리학의 개념과 이론들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심리와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과 이론들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동은 보편적일 수 있지만, 인간 행동의 세부적인 측면은 문화에 따라 고유성을 보입니다. 이를테면, ‘마음’은 영어로 ‘Mind’라고 옮겨지지만 ‘마음’과 ‘Mind’가 의미하는 바는 같다고 할 수 없죠. 한국인들은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면서 가슴을 가리키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out of my mind' 같은 표현을 할 때 머리를 가리킵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Mind’는 정신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능력과 관계된 의미로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mind가 들어간 대표적 이론으로 TOM(Theory Of Mind)이 있는데, 여기서의 mind 역시 인지능력을 의미하죠. 


한편, 한국인의 ‘마음’이 가지는 의미는 ‘mind’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말 사전(이희승 편, 1961)은 마음을 “사람의 지(知), 정(情), 의(意)의 움직임 혹은 그 움직임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상태의 총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인지능력(知)과 관계있는 mind에 감정(affection)과 의지(will)이 포함된 개념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한국인의 심리에 있어 ‘마음’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마음은 행위의 근거(준거)가 되기 때문이지요. '왜 그렇게 했어?'라는 질문에 '내 마음이지'라고 대답해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것이 준거로서의 마음의 역할입니다. 


주류심리학에서는 행동의 준거를 self(자기)로 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 개념을 갖고(self), 그것에 비추어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서구인들의 심리경험에서 self가 준거로 작용한다면, 한국인들은 ‘마음’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유추하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인들의 심리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첫번째 단추는 바로 '마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대한 인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첫째, 마음은 움직임이라는 생각입니다. 

Jesus Chapa-Malacara의 사진

마음은 활성화된(activated) 것이고, 불러일으켜진(arousal) 것이며, 어떤 상태가 되고 있는(becoming) 것입니다. 마음은 지, 정, 의 각각의 요소가 아니라 그들의 움직임을 뜻합니다. 마음은 움직임이 있어야 드러나는 것이고, 사건이 있어야 나타나는 현상이며, 사건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죠. 


일상의 용례에서 “미운 마음이 들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다” 등의 표현은 이러한 시각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의 작용원리를 생성적으로 본다는 측면에서 본체론(ontology)적으로 보는 서구적 관점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또한, 생성된 마음에는 진실성(authenticity)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아빠 미워!”라며 운다면 그 순간 아이에게는 아빠가 미운 마음이 든 것입니다. 미운 마음이 든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미운 마음이 생긴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죠. “남은 속여도 자신은 못 속인다”는 말은 마음의 생성에는 의도적 조작이나 왜곡이 작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억울하다, 서럽다, 섭섭하다, 서글프다 등 한국인의 정서를 나타내는 많은 어휘들이 이러한 생성적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말들입니다. 이들은 마음의 주체가 되는 사람의 의향이나 바램과는 관계없이 특정 사건에 대해 내적으로 생성된 상황적 마음들이며, 이때 해당 상황에서 당사자가 경험하는 진실성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둘째, 마음은 지, 정, 의의 움직임의 근원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마음의 작용이 사건 속에서 전개되지만 그 궁극적 소재의 책임은 마음의 주체인 사람에게 있다는 인식입니다. 여기서 마음의 중층적 구조가 드러나는데요. 우선 마음의 표층, 즉 외현적으로 드러나는 마음에는 생활 속에서 작용하고 구현되는 성격, 태도, 정서, 동기 등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대상화되어 연구되고 있는 주제들이죠.


한편, 마음의 심층에는 이들 요소적 마음을 주관하는 주인성(agentive) 마음이 자리합니다. 일상 생활에서는 이 두 종류의 마음이 구분되지 않고 쓰이지만, 자신의 마음이 왜, 어떻게 발생하고 움직였는지를 돌아보는 경우에 마음은 주재자로서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와 관련된 표현으로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마음을 다스린다”, “마음을 바로 써라” 등을 들 수 있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 동기, 정서 등의 요소적 마음은 결국 마음 주인이 할 나름이라는 마음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행위의 주체가 되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큰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여기에 현대 심리학과 한국 전통의 심학(心學)과의 차이가 발견되죠. 


현대 심리학이 요소적 마음이 실체적으로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이들의 객관적 특성을 규명하려 하는 반면, 한국의 지적 전통은 마음을 주재자의 위치에서 요소적 마음을 다스리는 주체로 간주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심학은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심리학(대표적으로 수신제가(修身齊家))의 모습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은 정신적 상태의 총체라는 인식입니다. 

여기서 총체성의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선 넓은 의미에서 마음을 지, 정, 의의 각 요소를 아우르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한 마음이 들었다”, “슬픈 마음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 등 일상의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마음은 때로 감정, 성격, 동기를 포괄적으로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좁은 의미로, 마음의 주재자적 성격을 강조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성(性-성격)과 정(情-감정)이 마음먹기에 따라 제어될 수 있다는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고, 마음의 각 요소들이 성격상 구분될 수 있지만 분리될 수는 없다는 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한국인들이 마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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