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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l 11. 2019

한국인들이 "밥 한번 먹자."고 말하는 이유

의례적 표현의 문화적 의미

우리는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사람과 밥을 먹는 경우는 많지 않죠.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인사말에 “그래? 언제?” 라며 다이어리를 꺼내면 눈치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들은 이 말을 각박해진 현대 한국사회의 상징 쯤으로 알고 있는 듯 한데요.


한국인들에게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의례적 표현입니다. 의례적 표현이란 특정 상황에서 의사소통의 기능을 하는 문화적 표현이란 얘기죠. 한국인들은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는 뭣한 사람을 만났을 때, 또 보고 싶지는 않지만 그냥 헤어지자니 정 없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은 상황에서 밥 한번 먹자고 말합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밥 한번 먹자는 말을 듣고도 실제로 먹은 적이 없다면 그 사람과 자신과의 관계의 질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인들이 아무에게나 밥을 먹자고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에게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사이는 매우 가까운 사이임을 뜻합니다. 식구. 밥 식(食)에 입 구(口). 밥을 같이 먹는 사이는 가족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밥 한번 먹자는 말은 내가 너를 가족처럼 가깝게 생각한다는 표현이 됩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이렇게 헤어지지만 나는 너와 언제든 밥을 먹을 수 있는 사이라는 사실을 서로 확인하는 것이죠.

한국인에게 있어 밥의 의미는 ‘밥 한번 먹자’ 말고도 수많은 맥락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성에게 작업을 걸 때도 “저랑 밥 한번 드실래요?”, 누군가가 고마울 때도 “내가 밥 한번 살게”, 친구가 아플 때도 “밥은 꼭 챙겨먹어”라고 말합니다. 밥은 한국인들의  인간관계를 매개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밥을 통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또 느껴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먹는 것이니까요.


가장의 책임은 식구들 밥 안 굶기는 것이고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도 밥을 해 먹이는 것입니다. 장철문 시인의 시, ‘어머니가 쌀을 씻을 때’에는 먼저 보낸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이 드러납니다.

“이 쌀 씻는 소리를 들을 수 없구나, 너는 바가지 밑에 앉는 이 그늘을 볼 수 없구나.

내 아가, 에미 손으로 씻어서 안친 따순 밥 한술 멕여서 보내고 싶은 내 새끼야. ”


미운 사람을 대할 때도 밥은 중요합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송강호가 범인과 마주쳤을 때 한 말은 “밥은 먹고 다니냐?”였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들을 모욕한 건축업자가 사과하러 왔을 때 어머니가 건넨 말 역시 “밥 먹고 가요.”였습니다.


이렇듯 밥은 한국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한국인들에게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마음을 나누고 우리가 가족(식구)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하는 의식입니다.


최근, 사회가 여러 모로 변화하면서 한국인들의 식사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가족이 머리 맞대고 밥먹을 시간 자체가 별로 없기도 하고,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생활 주기가 다양해지면서 누군가와 밥먹을 기회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충족해왔던 욕구들마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 증거는 ‘먹방’입니다. ‘먹방’은 아프리카나 유튜브에서 주야장천.. 먹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방송을 의미합니다. 먹방을 아예 'Meokbang'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현상이죠. 한국인들이 먹방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가 더 많이 먹고, 누가 더 희한한 음식을 먹느냐는 먹방의 본질이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나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사람이 보고 싶은 것입니다. 늦은 시간 퇴근하여 지친 몸으로 돌아온 집. 나를 맞아줄 사람도 없는 집에서 늦은 식사를 하며 어느새 컴퓨터를 켜고 먹방을 검색하는 것이죠.


TV에 요리하고 먹는 프로그램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왜 연예인들 놀러다니면서 먹는 걸 봐야 할까요? 그들과 함께 밥을 먹는 느낌을 받기 위해섭니다. 혼자 먹으면 외로우니까요. 혼밥, 혼술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고 나 혼자 사는 것이 새로운 생활 스타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대인관계에 대한 욕구는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관계적 동물입니다. 사람은 다른 이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죠.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는 영장류의 사회적 본능이 생존 가능성을 증가시켰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지었고 더 잘 살아가기 위해 다른 이들과 소통해 왔습니다.


타인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은 정신뿐 아니라 신체건강에도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가족을 비롯해 친구, 이웃과 잘 지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수많은 연구들이 지지하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밥을 먹으며 우리는 마음을 나누고 서로 의지해 왔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 밥을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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