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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Nov 19. 2018

미륵의 한국 vs 지장의 일본

민초들의 신앙에 반영된 심층심리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래된지도 천 수백년. 불교는 사람들의 마음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각국이 받아들인 불교의 모습은 같지 않습니다. 불교로부터 보고자 한 것, 바랬던 것이 달랐기 때문이겠지요. 


오늘은 불교에서 엿볼 수 있는 한국과 일본의 심층심리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불교는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매우 다릅니다. 학술적인 부분은 또 다른 기회에(공부 좀 더 해서)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두 나라의 민초들이 가장 가깝게 여겨 온 부처님들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에는 미륵이 많습니다. 미륵은 유난히 민초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요. 절에 모셔진 부처님들 외에도 길가에, 논밭 구석에, 산 기슭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어디든지 돌미륵이 서 있습니다. 백성들은 길을 걷다가 들에서 일하는 짬짬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가다가 그곳에 계신 미륵님에게 소소한 소망들을 빌었겠지요.

당진군 신평면 운정리 돌미륵

한편, 일본에는 지장불이 많습니다. 일본 여행 다녀오신 분들은 절 외에도 길가에, 논밭 구석에, 마을 어귀에 세워진 석불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것이 지장불입니다. 일본사람들은 지장부처를 오지조사마(お地蔵様)라 부르며 한국사람들이 미륵을 대하는 것만큼 친근하게 생각합니다.

출처(여우비 역마살 님 블로그)

두 나라의 이러한 문화는 불교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문화가 불교와 융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민초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빌 곳을 찾는 것은 종교와 관계없이 보편적일 테니까요. 


그런데 왜 하필 한국은 미륵, 일본은 지장일까요?

그 이유에 다가가기 위해 미륵과 지장의 성격을 살펴보겠습니다.


미륵은 미래불입니다. 미래에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할 분이죠.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민초들의 삶이 힘들어지면 미륵신앙이 성행했고 이를 틈타 자신이 미륵이라고 주장하는 인물들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있지요. 

짐은 미륵이라~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로서 미륵을 믿었습니다. 한국에서 구세신앙으로서의 미륵의 위상은 '매향(埋香)'이라는 풍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안가에 가면 매향리라는 지명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요.

사천 흥사리 매향비

매향이란 미륵이 오실 날을 기다리며 향나무를 갯벌에 묻는 의식입니다. 향나무를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 갯벌에 묻어놓으면 수백년 후 침향이 되는데 이것을 미륵님께 바치고자 한 것지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어 고려말 조선초에 민초들에 의해 주도된 이 풍습에서 현세의 삶에 지친 민초들의 간절한 바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솔암 마애불

이 외에도 운주사의 와불이나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처럼 세상을 바꾸려는 민초들의 소망과 관련있는 부처님들은 대개 미륵입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은 숨겨진 비급을 찾으려 도솔암 마애불의 배꼽을 열었다고 하지요. 사진에서 보이는 흔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장의 성격은 무엇일까요? 지장은 미륵이 오시기 전까지 이 세상을 담당하는 분이며 덧붙여 저승을 담당(?)하시는 분입니다. 당신은 이미 깨달았지만 지옥에 떨어진 중생까지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지옥으로 내려가신 분입니다. 아직 부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장'보살'이라고도 불립니다.

청량사 지장보살상

한국에서의 지장불(보살)은 대개 스님처럼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육환장(지팡이)을 짚고 한 손에는 보주(구슬)을 든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반면, 일본의 지장불들은 아이를 안고 있거나 턱받이, 머릿수건 등을 하고 서 있습니다. 여기서 일본 지장신앙의 특징을 알 수 있는데요.

출처: 동경라멘학교 님 블로그

일본에서 지장은 죽은 이(특히 아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해준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지장부처님의 원래 하시는 일이 죽은 이들의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장불은 한국에서도 널리 신앙되고 있습니다. 지장불이 계신 명부전은 웬만한 절에는 다 있죠. 

일본 동네 추모원에 모셔진 지장보살상

일본에서도 지장 본연의 역할은 동네에 한 곳씩 있는 추모원에서도 드러나지만, 죽은 아이들로 그 의미가 이어진 것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 흔히 만나는 빨간 턱받이나 모자를 쓴 지장보살들은 죽은 자신의 아이가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나아가 결국 자신의 살아있는 아이가 건강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만들어낸 풍경인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의 심층심리를 엿볼 수 있는데요. 

요약하자면 한국사람들은 미륵이 오셔서 이 세상을 바꿔주길 바래왔다는 것이고, 일본사람들은 지장이 현 세상의 안위를 보살펴주기를 바래왔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 나라 사람들의 현실 인식과 삶에 대한 태도, 문제해결 방식 등에 연결짓는 것은 '오바'일까요? 저는 운만 띄우겠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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