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개념을 번역할 때의 문제점
도깨비의 수출명은 고블린(Goblin)입니다. 원래 수호자..란 의미의 Gardian으로 하려고 했는데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혼동을 우려, 고블린으로 정해졌다는데요.
고블린은 유럽의 민간 설화에 등장하는 괴물입니다. 고블린은 키가 작고 귀가 크며 피부가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묘사되며, 교활하고 악랄하며 돈을 밝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도깨비는 고블린일까요?
아닙니다!
도깨비는 고블린이 아닙니다. 돈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장난을 잘 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고블린은 도깨비가 아닙니다. 유래, 생김새, 품성, 습성, 하는 짓.. 고블린과 도깨비는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존재입니다.
한 마디로 고블린과 도깨비는 다른 문화의 산물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이렇게 일대일로 대응하여 번역을 했다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지경입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도깨비가 뭔지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해서요?
도깨비가 뭔지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도깨비가 고블린이라고 가르쳐주면 그들이 도깨비를 알게 될까요? 외국인들이 고블린이라는 제목을 듣고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그들의 문화적 배경에서 공유하고 있는 내용들 뿐입니다.
이것들이 '도깨비'라구요?
문화는 이렇게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비슷해 보이는 개념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의 역사와 배경, 맥락까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 둘을 같다고 보게 되면 그 뒤로 크나큰 오해들의 연쇄가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블린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본 외국인들이 도깨비라는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도깨비를 고블린으로 번역하는 순간, 그럴 가능성을 애초에 봉쇄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도깨비=고블린이라는 정보만 남겠죠.
이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들은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최근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류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가 많아지면서 이러한 번역의 문제점들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독일 친구들 편에 나온 사례들입니다. 여행 중 휴게소에 들른 친구들은 음식을 사먹기 위해 매점에 들르게 되는데요.. 독일 친구들에게 떡볶이와 어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떡이 rice cake입니까?
좋습니다. 떡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떡을 이해시키기 위해 '쌀로 만든 케익'이라고 옮겼군요. 어떤 떡은 케익처럼 생긴 것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떡볶이는 fried rice cake이 되나요? 이게 말이 됩니까?
프라이드 라이스 케익을 듣고 떡볶이를 연상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포슬포슬하고 크림이 올려진 빵이 기름에 튀겨진 흉악스런 이미지를 떠올리겠죠. 떡볶이는 토막낸 떡을 고기 및 채소와 함께 고추장이나 간장에 볶아낸 음식입니다. 떡볶이란 '떡'에 대한 이해가없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인 것입니다.
하나 더 봅시다. 어묵이 fish cake입니까? 어묵에 대한 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에게 fish와 cake의 조합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겁니다. 이게 뭡니까... 어묵은 어묵입니다. 물고기로 만든 케익 같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서울메이트' 김숙 씨 편에 나온 사례입니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도토리묵을 먹이려던 김숙 씨는 도토리의 영어인 acorn에 젤리를 붙이고 마는데요.. acorn jelly?
서양문화에서 젤리는 디저트입니다. 한국에서 누가 도토리묵을 디저트로 먹습니까... 서양사람들이 도토리로 만든 젤리라는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겠냐는 말입니다. 도토리 젤리라니.. 실제로 도토리묵을 먹어보기 전에는 맛이며 모양이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조어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세계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준이 있다는 생각과 그 표준은 서양의 것이라는 생각. 둘째, 우리 것은 세계의 표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수준 낮은(?) 우리 것들을 외국인(대개 서양인)들이 이해할 리 없으니 그들이 이해할 만한 개념을 들어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니라구요? 아닐까요?
우리는 같은 대상이라도 한국어로 표현하면 왠지 촌스럽고 후진 느낌을, 영어로 표현하면 세련되고 있어 보이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계피는 아저씨 냄새 날 것 같고 시나몬은 향기롭다는 얘기가 있지요. 이런 예는 하나둘이 아닙니다.
특히 '있어보이고 싶은' 욕구가 절정에 이르는 패션계의 언어는 정말이지 가관입니다. 이는 보그병X체라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기까지 했지요; 제가 몸담고 있는 업계(학계)도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가깝게는 구한말 들어온 사회진화론적 세계관으로부터일 가능성이 큽니다. '진화하지 못해서' 나라를 잃었다고 생각했던 당대 사람들은 우리말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모든 것들을 서양에 비해 낙후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광복 이후,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세계의 표준(standard)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같은 현상은 더 심화되었습니다. 현대 한국을 일궈낸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미국에서 들어오다보니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영어를 섞어쓰면 왠지 있어보이는 느낌을 주게 된 것이죠.
이러한 경향은 멀리서 찾자면 조선시대 이전으로도 올라갑니다. 양반들은 한글을 언문, 암클이라 무시하고 일상 생활에서도 어려운 한자말을 섞어쓰며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했지요. 더 올라가자면 삼국시대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게 되니 여기까지만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것을 외국의 개념을 사용하여 이해하는 것은 정작 우리 것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뿐 아니라, 우리 것을 알고자 하는 이들이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까지 제한하는 행위입니다. 나아가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문화적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내팽개치는 짓입니다.
위스키는 위스키이고 와인은 와인입니다. 보드카는 보드카고 꼬냑은 꼬냑이죠. 막걸리는 라이스 와인이 아니라 '막걸리'입니다. 라이스 와인이라면 포도주에 쌀가루라도 섞은 술입니까? 막걸리를 막걸리라고 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막걸리를 라이스 와인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옆나라 일본은 자신들의 문화를 외국에 소개할 때 일본어를 그대로 씁니다. 그 결과, 외국인들은 스시면 스시로 알고 마끼면 마끼, 덴뿌라면 덴뿌라, 와규면 와규, 기모노면 기모노를 떠올리고, 그 문화를 소비하려 일본에 갑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의 관광수지가 괜히 적자가 나는 게 아닙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문화적 자산들을 가지고서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고,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무엇을 보기 위해 우리나라에 오겠습니까?
올 겨울에 새로나온 하겐X즈 '모찌' 아이스크림입니다.
이걸 사먹는 사람들이 '찹쌀떡'을 알게 될 일은 영원히 없을 겁니다. 찹쌀떡은 오직 '모찌'로만 기억되겠죠.
말은 곧 정신입니다. 정신을 잃은 이들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옛날 자신들의 언어가 있었으나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언어를 잃고 영어만 써야 하는 아일랜드 출신 교사의 말로 오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