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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Sep 11. 2018

진상 보존의 법칙

개저씨들만의 문제일까?

진상이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저지르는 골칫덩이를 뜻하는데 진귀한 물품을 나라에 바치는 진상(進上)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나라에 갖다 바쳐야 하지 않을까 싶게 희한한 짓들을 하는 인간들을 진상이라 부르지 않았나 한다.


진상짓 하는 아저씨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개저씨라는 말도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정 수 이상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진상이 있기 마련이다. 조직 내의 진상의 비율은 거의 진상 보존의 법칙이라고 할 만큼 일정하게 유지된다. 


실없는 소리 같지만 진상보존의 법칙을 뒷받침할만한 실험이 있다.  프랑스 낭시 대학의 행동생물학 연구소에서는 쥐 여섯 마리를 가지고 재미난 실험을 했다. 쥐들이 있는 곳과 먹이통 사이에는 넓은 수영장이 있었다. 먹이를 구하려면 헤엄쳐 건너야 하게끔 만든 것이다. 배가 고픈 쥐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했을까?

연구자들은 곧 쥐들의 역할이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여섯 마리의 쥐들은, 열심히 헤엄쳐 먹이를 구해오지만 다른 쥐들에게 먹이를 빼앗기는 피착취형 쥐 2마리와 이들의 먹이를 빼앗는 착취형 쥐 2마리, 헤엄쳐서 구해온 자기 먹이를 빼앗기지도 않고 남의 먹이를 빼앗지도 않는 독립형 쥐 1마리, 그리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헤엄치지도 않고 남의 먹이를 빼앗지도 않는 천덕꾸러기형.. 쥐 1마리로 나뉘었다. 


쥐들을 바꿔가며 실험을 반복해도 결과는 같았고, 더 재미있는 것은 피착취형 쥐 여섯 마리나 착취형 쥐 여섯 마리로 실험을 해도 피착취형: 착취형: 독립형: 천덕꾸러기형의 비율은 동일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천덕꾸러기 여섯 마리로 실험을 해도 결과는 같았다. 


이 실험은 사회적 역할이 쥐들의 타고난 성향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그룹 내에서 필요한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눠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혹시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군대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우리 소대에는 ‘고춧가루’로 불리는 진상 말년 병장이 하나 있었다. 보통 제대가 얼마 안 남은 말년들은 군대 일에 굳이 관심을 두지 않고 전역 준비나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이 인간은 달랐다. 기상시간부터 취침점호까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문제를 일으키며 사람을 괴롭혔는데 어찌나 악랄했는지 온 소대원들이 그 인간이 제대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드디어 그 말년이 제대를 하고 소대에 평화가 찾아오는가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말수 적고 일 잘 하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지내던 병장 중 한 명이 똑같이 진상 짓을 시작하는 게 아닌가. 마치 ‘이 일은 이제 내가 이어 받겠어’라는 듯이 말이다.      


이 경험은 꽤 인상적인 것이어서 그 뒤로 몸담게 되는 조직에서마다 사람들의 행태를 면밀히 관찰하게 되었고, 그 결과 조직에는 일정 비율의 진상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진상이 졸업, 이직, 퇴직 등의 이유로 사라지면 그 빈 자리는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다른 이에 의해서 채워졌다. 


나중에 각계에 있는 지인들과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이런 일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었다. 언론계에 있는 선배는 진상과 보통사람의 비율이 1:4라는 경험적인 통계를 제시하기까지 했다. 다섯 명이 있으면 그 중 하나는 진상이라는 얘기다. 컨설팅 쪽 일을 하는 한 후배는 다음 말을 덧붙였다. ‘우리 조직엔 그런 사람 없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바로 진상이라고.     


낭시 대학교의 실험과 군대에서의 경험, 사회인들의 관찰이 의미하는 바는 같다. 일정한 수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는 특정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게 진상이라도 말이다. 

이것이 진상 보존의 법칙이다.


일정 수 이상의 집단에 진상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추정컨대 그런 개체들의 존재가 구성원들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진상이 주는 스트레스는 지루한 일상에 긴장을 주기도 하고, 진상의 존재 때문에 다른 구성원들의 결집력이 향상되는 효과도 있을 수 있겠다.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목적을 가진 집단이라면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 악역을 담당하는 구성원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저씨는 조직에서 필요한 역할을 떠맡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즐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사건건 트집잡고 잔소리하는 역할이 즐겁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낭시 대학의 연구자들이 쥐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살펴보기 위해 쥐들을 해부했을 때, 가장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은 착취형 쥐였다. 쥐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조직을 운영하지는 않았겠지만 피착취형 쥐들을 몰아붙여 먹이를 가져오게 하고 독립형 쥐들과는 긴장을 유지하는 등 현상유지에 드는 에너지만도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4,50대의 스트레스 지수는 위험수준이다. 암 사망률 1위가 4,50대 남성인 것이 이유 없지는 않을 것이다. 


대개 개저씨들은 과장이나 부장급의 조직의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는다. 대표적인 개저씨 캐릭터인 미생 마부장도 부장이다. 과장이나 부장은 부서를 통솔, 관리하여 조직의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다. 그들 입장에서 부하직원들에 대한 참견과 잔소리는 하기싫어도 해야 하는 업무에 속한다. 한 부서와 업무의 중간 관리자로서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처음이라 업무가 낯설고 서툰 후배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 가르쳐주고 싶지 않아도 가르치지 않으면 일이 안 돌아간다. 일이 제대로 안 됐을 때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맡은 건 중간관리자인 개저씨들이다. 


개저씨들의 잔소리와 꼰대질에 시달려가며 오늘도 죽지 못해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나는 그들의 위치에 섰을 때 그들과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을까? 왜 시간이 지나도 조직의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을까? 


군대생활의 부조리를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막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 승영(서장원 분)은 고참들의 구타와 욕설에 몸서리치며 자신은 나중에 절대 저런 고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인간적으로 잘 대해준 후임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그 때문에 자신의 입지가 곤란해지자 승영은 예전에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고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후임병을 구타하고 만다.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개저씨들이 모두 사라지면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찾아올까? 전망은 회의적이다. 개저씨 하나가 없어지면 또 다른 개저씨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그 개저씨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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