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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Oct 09. 2018

아저씨는 왜 개가 되는가

충직한 개 vs 위험한 개

“물라면 물고, 놓으라면 놓고, 조직을 위해서 개처럼 살았습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의 대사다.      


개는 충직함의 대명사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빗대기에는 개만한 동물이 없다. 예로부터 일의 대명사는 마소, 즉 말과 소가 있지만, ‘개처럼 일했다’가 주는 처연함은 따라갈 수 없다. 


개가 가장 안된 점은 아무도 개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덩치도 크고 표정도 시크한 말과 소와는 달리, 개는 정말 체면도 자존심도 다 던져놓은 것처럼 물고 핥으며 주인을 따른다. 

게다가 개는 대체가 쉽다. 새끼도 많이 낳고 덩치가 작아서 크기도 금방 큰다. 그래서인지 덩치가 커서 힘도 세고 몸값도 비싼 소와 말과는 달리 사람들은 개의 필요성을 금방 잊는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개도 같이 삶아 버리는 것이다. 귀엽다고 키우기 시작한 개를 귀찮다는 이유로 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이 군대를 다녀오며 어쩔 수 없이 개가 되었다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스스로 개가 된다. 검사씩이나 되지 않더라도 남의 돈을 버는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개인적 자존심을 어느 정도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의 명을 잘 따라야 출세도 하겠지만 직장생활의 목적이 출세가 전부는 아니다. 대개의 남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고, 가장이 되면 출세가 문제가 아니라 짤리지 않기 위해서 자존심 다 버리고 그야말로 개처럼 일한다. 


실적의 압박, 상사의 잔소리, 거래처와의 갈등, 고객과의 신경전.. 사회생활에서 자존심 상할 일은 많고 많지만 그럴 때마다 사표를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 '약장수' 중

혼잣몸일 때야 그깟 직장 때려치우고 새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지만, 가장의 어깨에 지워진 짐의 무게는 총각 때와는 다르다. 상사 얼굴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은 어떡할 것인가 말이다.


결혼한 남자들이 개처럼 변해간다는 은유는 옆나라 일본에서도 보인다. 일본 만화 <시바 아저씨>는 시바야마 타로(43세)라는 개의 얼굴을 한 남자를 통해 중년의 일본 샐러리맨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시바 아저씨는 출퇴근 4시간의 만원 지하철을 견뎌야 하고 직장에서는 실적으로 몰아붙이는 상사와 자기 주장 강한 부하 직원 사이에서 골치를 썩이기도 한다. 집에서는 걸그룹을 꿈꾸는 사춘기 딸에게 무시당하고, 아내에겐 늘 쓰레기봉투만 들려지는 신세지만 그래도 가족을 생각하며 힘을 내는 평범한 가장이다.     

시바 아저씨

남자가 개가 된다는 것은 첫째, 가정과 회사에 충성을 다한다는 의미이고, 둘째 그러기 위해 개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직장생활은 총 없는 전쟁터다. 여기서 제 자존심을 세우다간 회사의 이익이 물건너갈 수 있고, 그런 일이 발생했다간 대번 밥줄이 끊길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이 그랬듯이 남성이 경제적으로 가정을 부양하는 사회에서 가장이 직장을 잃으면 가정은 위기에 빠진다. 따라서 가장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존심은 끝까지 포기할 수만은 없다. 아무튼, 자존심은 인간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가치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최후의 보루다.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존심을 유지하려고 하며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는 정신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한다. 우울, 불안, 자살 등의 결과로 이어지는 정신병리의 상당부분은 자존감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존심을 우아하게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4,50대 아저씨들은 직장에서 대개 중간관리자에 해당하는데, 중간관리자란 부서의 실무를 통괄하며 조직원들을 통솔하고 조직의 실적과 방향성을 책임지는 자리다. 대해야 할 사람도 많고 신경써야 할 일도 많으며 따라서 자존심을 버려야 할 일도 많다.     


직장에서 상한 마음을 집에서 위로받자니 그것도 마음 같지 않다. 어느새 아이들은 머리가 굵어져서 아빠와는 말도 섞지 않으려 하고, 바쁜 일상에 멀어진 아내와의 관계도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지치고 외롭고 자존심 상한 아저씨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참는 것뿐이다. 그리고 사실상 많은 아저씨들이 이렇게 산다. 다음은 월드스타 싸이의 <아버지>라는 노래 중 일부다.     


너무 앞만 보며 살아오셨네

어느새 자식들 머리 커서 말도 안 듣네

한평생 처자식 밥그릇에 청춘걸고

새끼들 사진 보며 한 푼이라도 더 벌고

눈물 먹고 목숨 걸고 힘들어도 털고 일어나

이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아빠는 슈퍼맨이야

얘들아, 걱정마

위에서 짓눌러도 티 낼 수도 없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도 피할수 없네

무섭네 세상 도망가고 싶네

젠장 그래도 참고 있네 맨날

아무것도 모른채 내 품에서 뒹굴거리는

새끼들의 장난 때문에 나는 산다

힘들어도 간다 여보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그러나 인간은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너무 많이 쓰면 다른 방향의 결핍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융의 그림자(shadow) 개념이 생기는 이유다. 지나치게 억눌린 자존심은 강렬한 자존심 회복의 욕구로 나타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극에 달할수록 통제감의 욕구는 커진다. 


거래처의 갑질은 참지만 부하직원의 실수는 참지 못하고, 상사의 꾸지람은 견디지만 후배의 지적은 견디지 못한다. 집에서는 묵묵한 가장이지만 회사에서는 내 말이 곧 법인 폭군으로 돌변한다. 

조직과 가족의 충성스런 개로 살던 아저씨들이지만, 참고 참다가 어떤 한계에 부딪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개가 된다. 이 개는 앞서의 그 충성스런 개가 아니다. 입 안의 뼈다귀를 지키기 위해 아무에게나 이빨을 드러내는 위험한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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