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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pr 29. 2019

한국인의 '자기가치감'

한국인 자기개념의 특징

앞에서 한국인 자기와 자기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자기인식에는 기존의 이론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점이 또 있습니다. 여러 사회현상들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이 특징은 한국인들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객관적 사실보다 높이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Higgins의 자기불일치self discrepancy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객관적 현실에 근거한 현실적 자기(actual self)와 자신이 도달했으면 하는 이상적 상태를 뜻하는 이상적 자기(ideal self),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의무와 관계된 의무적 자기(ought self)를 갖습니다.


서양인들의 자기self는 그 개념부터가 제3자적 관점에서 객관화된 것이기 때문에 자기self는 곧 현실적 자기actual self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강한 자기고양 경향과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자기현시적인 행위양식 등을 고려해보면 한국인들은 현실적 자기보다는 이상적 자기에 가까운 자기상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다시 말해, 현재 자신의 객관적인 상황보다는 자신이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신의 모습을 자기로 인식하는 것이죠.


즉, 한국인들의 자기인식은 ‘실제의 자기가치보다 높은’ 자기가치감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치감이 높다는 것은 시쳇말로 ‘근자감’, 즉 ‘근거없는 자신감’이라 할 수 있는 자기인식인데 이러한 자기인식의 방식이 한국문화에 유형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최고다 윽박 뮤비, 근자감 중..

이는 우선적으로 자기관의 영향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인들은 주체성 자기가 우세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주체성 자기가 우세한 사람은 자신의 지향을 중시하며, 이상적인 자기상(ideal self)에 근거한 자기인식을 하고, 대인관계에서도 주도적 혹은 지배적 위치를 점하려 하며, 자기현시적인 행동양상을 보입니다.


반면, 대상성 자기가 우세한 사람은 상대의 지향을 존중하며, 의무적인 자기상(ought self)에 근거한 자기인식을 하고, 대인관계에서 순종적이고 협조적인 측면이 강하며, 자기억제적인 양상을 보이지요.   

(한국인과 일본인의 심리적 차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6)


높은 자기가치감은 한국인 자기의 중요한 특징이라 가정되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저 집단주의 문화의 일원으로만 고려되고 있지요. 여기서는 한국인의 자기가치감이 높다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긍정적 환상과 자존심

최근의 문화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자신에 대한 강한 긍정적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긍정적 환상이란 '남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사건들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는 좋은 일들이 나에게는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믿음을 말하는데요.


심리학에서는 이 긍정적 환상이 개인주의 문화의 특징이고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해왔지만, 최근의 여러 연구에서 한국은 같은 집단주의 문화에 속하는 일본과 달리 개인주의 문화권인 미국이나 캐나다 수준의 강한 긍정적 환상을 가지고 있음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한민, 이누미야 요시유키, 김소혜, 장웨이, 2009

한국인의 자신에 대한 긍정적 환상이 높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객관적 사실 이상의 높은 평가와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연구자들은 한국인들의 자기가치감은 현재의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라기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으면 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이미지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자기가치감이 손상당하는 경험이 한(恨)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논의들로 미루어,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자존심 관련 표현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자기가치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자기가치를 높게 유지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자존심 상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자존심 경험의 맥락은 크게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과 회복되는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자존심 관련 표현의 대부분이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 및 손상된 자존심이 회복되는 상황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역시 한국인들의 심리경험에 자존심 상함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손상된 자존심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는 동기 및 행동체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기가치감과 자기애

한국인의 자기가치감은 정신역동이론의 자기애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Freud에 따르면 자기애는 유아기에 형성되는데, 자기애의 일차적 형태는 유아가 자기 자신과 대상(object)을 구분할 능력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르키소스, 카라바지오 작

만족의 근원이 외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유아가 배고플 때 어머니가 젖을 주는 것) 이를 구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충족된 욕구가 자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죠.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는 전능한 자신에 대한 사랑이 유아기 자기애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유아는 성장하면서 ‘적절한 좌절’을 통해 만족의 근원이 자신이 아닌 대상임을 깨닫고 현실적인 자기 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때 아이들은 잃어버린 자기애에 대한 대체물로서 자아 이상(ego ideal)을 형성하는데 자아 이상은 감탄, 희망, 소망의 대상이 되는 이상화된 기준과 목표, 정체성으로 구성됩니다.


즉 자아 이상은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계획하는 내면의 자신인데요. 이상의 성취는 자존감과 만족을 높여 주지만, 반대로 이상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수치심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높은 자기가치감은 한국 부모들의 양육태도에 기인할 것이라 추정되는데, 부모의 (무조건적) 긍정적 태도는 유아기 자기애의 형성의 선결 조건이죠. 이상적 자기(ideal self)와 현실적 자기를 일치시키는 경향이 큰 한국인들의 자기인식은, 성장하면서 유아기 자기애에 대한 대체물로서 갖게 된 이상적인 자기상의 반영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한국인이 민감한 ‘자존심 상함’이나 ‘한’ 등은 현실의 삶이 이상적 자기상과 일치하지 않을 때 경험하는 수치심과 관련이 있어 보이며, ‘무시당했을 때’의 격렬한 분노나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한 속성 등도 자기애의 병리적 측면과 유사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이야기는 심리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생각은 아닙니다. 문화심리학에서도 토착심리를 전공한 극히 일부의 저 같은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이죠. 하지만, 동양 집단주의 문화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인들의 여러 특성들이 '높은 자기가치감'으로 상당 부분 해석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4년차가 된 한선생 문화심리학에서도 슬슬 심도있는 이론적 내용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특히 '한국인 마음사전'의 이야기들은 문화와 문화이론에 대한 여러 기본 지식들을 필요로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앞의 글들도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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