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생 Jul 27. 2019

웰빙(Well-being)은 안녕(安寧)인가?

한국인은 언제 '잘 지내'는가?

심리학에서 행복 척도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주관적 안녕감은 Subjective Well-being의 번역어입니다. 주관적 만족도와 긍정적 정서, 부정적 정서 점수로 계산하는 이 척도는 행복 연구의 아버지 Ed Diener가 1984년 개발했죠.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이 척도를 사용한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으나 이 용어를 처음 번역한 이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파릇파릇하던 대학원생 시절.. 처음 이 낯선 용어를 접했던 때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군요.

웰빙이 안녕이라고?


웰빙은 번역이 애매한 단어입니다. 보통 복지, 행복으로도 번역되고 지금 말한 안녕으로도 쓰이죠. 직역하자면 잘(well) 있다/지낸다(being)는 뜻이 될 겁닌다. 우리말로 ‘잘 지내냐’는 인사를 안녕이라고 하는데 설마 이런 이유로 이 용어를 쓰게 된 것일까요?


최초 번역자가 누군지 모르니 그 이유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언어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학자들이 언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온 이유가 있지요. 언어는 세계를 보는 눈이며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고 심지어 무의식의 가능조건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언어를 통해 마음을 경험합니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데는 많은 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being이란 무슨 뜻일까요. 번역에 있어서 용어의 의미는 그 언어를 쓰는 이들 입장에서 생각해야만 합니다. 영어의 be 동사에는 여러 가지 뜻과 수많은 활용이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being이란 단어에는 어떠한 존재는 본래부터 주어진 고유한 속성이 있으며 이전에도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well-being이란 자신의 본래 모습대로 잘 존재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따라서 subjective well-being은 나 스스로가 잘 존재하고 있는가 주관적으로 지각하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국인 같은 동양인들은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동양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수많은 인과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믿습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arising으로 번역됩니다. 일어나다, 피어오르다는 뜻이죠.

동양적 사고에서 사람들은 나 자신의 존재 역시 무수한 인연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늘 나의 존재가 계속 일관된 모습으로 있을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그때그때 바뀌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적절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러니 불변하는 나의 모습은 바람직한 나의 상태를 규정하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동양인들은 서양인들과는 다른 이유로 만족스럽고 바람직한 나의 상태를 인식하는데,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해당 문화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경우, 내가 잘 지내는 상태를 안녕이라 표현합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침이나 저녁이나, 만날 때나 헤어질 때나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말이 안녕입니다.

안녕 자두야!

안녕! 편안할 안(安)에 편안할 녕(寧). 편안함이 두 번 겹쳐 있습니다. 이 정도면 한국인들에게 편안한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편안하다는 말은 거북하거나 괴롭지 않고 마음이 놓인다(안정되다)는 뜻인데요.


안녕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 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편안함. 거리낌이 없는 상태


탈이란 뜻밖에 일어난 변고나 사고와 그에 따른 어떤 좋지 않은 결과 또는 그 원인으로 되는 일을 말합니다. 탈이 날까봐 불안해하는 것이 걱정이죠.

다시 말해, 안녕이란 탈도 없고 걱정도 없는 상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안녕에는 ‘나’라는 개체가 본래의 모습대로 잘 존재한다는 의미는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편안한 상태를 가장 바람직하게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한국인들은 정서를 표현할 때, ‘느낌’ 혹은 ‘감(感)’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 느낌은 생각이 개입되기 전의 즉각적 경험입니다. 느낌의 첫 단계에서 사람들은 무엇인지 명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움직였음을 ‘느끼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반추적 (reflective) 사고를 합니다(한국인 마음사전의 다른 글들을 참조해주세요).


반추적 사고란 자신이 한 경험을 되새겨 자신을 중심으로 경험의 의미를 파악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입니다. 정서 2요인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든 생리적 각성을 하고 나면 그것을 인지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이 어떤 정서를 느끼고 있는지 설명하려 하는데, 반추적 사고가 바로 이러한 과정을 뜻한다.


물론 반추적 사고는 문화보편적으로 일어나겠지만 언어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이유로 한국인들에게 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한국문화에서는 다양한 관계와 맥락에서 일어나는 불분명한 느낌들을 해석해야 할 필요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인의 마음에는 늘 어떠한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 느낌이 들었지? 이런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거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러다보면 불안(근심, 걱정)으로 이어지고 번민하기 쉬워지겠죠.


이러한 느낌은 한국인들에게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편안하기 어려운 마음을 갖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것이 한국인들이 안녕을 바람직한 상태로 생각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인의 '자기가치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