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우리 개념에 대한 뜻밖의 고찰
‘우리’는 자신을 포함하여 자신과 관련있는 무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모든 집단은 ‘우리’가 될 수 있으며, 내집단 구성원 모두가 ‘우리’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한국문화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모든 문화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한국문화에서 ‘우리’라는 말은 ‘we’라는 말이 영어권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것보다 보다 ‘한국적인’ 의미와 행위양식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우리(we)'를 내집단(in-group)과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내집단의 경우 집단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예, 가족, 고향, 모국), 적극적으로 자신을 전체 집단의 한 부분으로 관련시키고자 할 때 존재하게 되는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죠.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we)’는 우선, 구성원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출생과 더불어 결정되는 ‘귀속적(ascribed) 우리’와 자신의 능력, 노력, 의지 등으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성취적(achieved) 우리’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각 문화권의 ‘우리’가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관계와 연합된 구성원들의 인지적, 감정적, 행동적 지향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구 개인주의 문화에서의 개인들은 스스로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합니다. 이들이 모여 이루어진 우리(We)는 집단내에서도 개인의 고유성이 소멸되지 않는 군집(collective pool)을 의미한다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동양문화권, 특히 한국에서는 개인이 집단 상황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집단에 맞추어 변화시키고 전체에 융화됨으로써, 단순한 개인의 합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집단성’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한국적 집단주의의 성격은 ‘우리’라는 말의 일상적 쓰임새에서 잘 드러나는데요.
‘우리끼리..’라는 표현은 서로간의 친밀하고 독특한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상호 친밀감을 고조시키거나 어떤 것에 대한 배타적 공유의식을 확인시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예, 우리끼리 얘긴데...) 또한 ‘우리 사이에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느냐’라든가, ‘우리 사이에 그렇게 따지면 섭섭하지’라는 표현은 우리란 분리될 수 없는 일체이며, 우리에서 분리되는 것은 ‘우리’ 관계를 위협하는 요소임을 드러내지요.
그리하여 상호관계에 대한 기대가 실제와 어긋날 때 사람들은 ‘우리 사이에 어떻게 그럴 수가..’라는 표현으로 기대가 깨어진 것에 대한 애석함, 섭섭함, 절망감, 배신감 등의 감정을 표출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간 혹은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뿐 아니라 구성원들 사이의 인간관계의 특성 및 그 관계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감정적, 행동적 특성까지도 함축하는 말로 넓은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우리’가 강조되는 집단 상황에 접하게 되면 개인의 개별적 특성의 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자체의 독특한 특성과 역동성이 나타납니다.
집단 상황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집단 상황에서 자기 정체가 상실되는 몰개성화(deindividuation)로서 집단 상황에서 개인은 개별성을 잃고 집단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경우입니다. 전체주의 시대의 독일이나 일본 국민들을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하구요.
두 번째는 탈개성화(depersonaliization)인데, 이는 몰개성화와는 달리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 속에 상실되지 않으며 집단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자기 정체성과 개별성의 확인이 가능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 스포츠 팀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을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집단 문화가 개개인의 개성을 말살한다고 생각하지만(몰개성화) 한국인의 ‘우리’는 탈개성화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고교 동창이다’라는 집단적 정체성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각 구성원의 존재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때 형성됩니다.
이는 개인의 개별성이 ‘우리’ 형성의 필요조건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성원 각자가 개인적 수준을 넘어서 고교 동창생 ‘우리’라는 통일된 전체를 이루기 위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력할 뿐 아니라 그 통일성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우리 요소가 아닌 개인적 요소의 상쇄는 암묵적으로 용인됩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 정체성으로 전환되는 것을 뜻하며, 우리가 되려는 개인의 노력과 변화가 ‘우리’형성의 충분조건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경우,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니라 곧 내 자신이 됩니다. 즉 한국인의 '우리’는 집단 속에 개인이 함몰되어 '나'는 사라지고 '우리'만 남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가 통합된 존재로서, ‘내가 우리이고, 우리가 곧 나’인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죠.
한국문화에서 개인은 ‘우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시킵니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있어 ‘우리’란 확장된 자기(extended self)를 뜻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쉬운 표현으로, "나 oo대학교 다녀", "여기가 우리 회사야.."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속한 집단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 확장된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한국문화에서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이 속한 특정 집단을 수식하거나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우리 가족,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 나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때 사용되는 ‘우리’는 반드시 소유의 개념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화 중에 ‘우리 아내’라는 말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가 공유하는 아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일 날 말씀입니다. 이때의 ‘우리’는 소유격으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말하고 있는 나(남편)과 그의 아내로 이루어진 우리입니다.
즉, 대화 속에 ‘우리’로서의 나와 아내의 관계가 등장하는 것이죠. '우리 아내'의 의미는 정확히 말하면, '나를 대표하는 집단으로서의 우리 아내'라는 뜻입니다. 아내와 나로 이루어진 '우리'는 곧 '나'이기에 이런 표현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 관계는 듣는 이들이 당연히 알고 동의하는 관계겠죠.
그렇다면 나경원 원내대표의 '우리 일본'이 어떤 의미인지는 답이 나왔습니다. 나와 동일시하는, 나를 대표하는 집단이 일본이라는, 그리고 듣는 사람들도 이를 알고 있고 동의할 거라는 강한 믿음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언어는 습관(문화)이니까요.
맞습니다. 언어는 습관입니다. 나경원 대표는 본인의 습관대로 말한 것이겠지만 한국인들의 언어습관으로는 매우 이해하기 힘든 표현을 한 셈입니다.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모르시겠다면,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대한민국 네티즌이 남긴 이 댓글을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