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다 똑같다'와 '사람마다 다 다르다'의 사이 어디쯤..
문화를 공부하면서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온 말들이 있습니다.
어떤 문화가 이렇다고 이야기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안 그러냐? 사람들 다 똑같다”, 또는 “사람마다 다 다르지 그렇게 일반화할 수 있느냐?”는 말들입니다.
과연 어떤 나라의 고유한 심리적 특성이 있을까. 어떤 나라의 문화적 개념은 다른 나라에는 없을까. 내가 아는 그 나라 사람은 그렇지 않던데.. 이런 의문들이죠.
사람들은 어떨 때는 다 똑같고 어떨 때는 다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문화 이해의 어려운 점인데요. 처음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도 많이 하고 나중에는 억울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비교적 차분하게 응대하는 편입니다. 나름의 해답을 찾았거든요.
인간의 행동은 크게 세 차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편성과 특수성 그리고 개별성의 차원입니다. 보편성이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의 유사성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DNA에 새겨진 유전적 정보들이 이런 종류의 행동들을 만들어냅니다.
먹고 자고 싸고 보금자리를 만들고 짝짓기를 하는, 생물이라면 다 하는 행동들과 권력을 쥐려 하고 권력자에게 복종하는, 사회성이 있는 동물들이 보이는 행동들이죠. 인간도 생물이고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기에 인간 사회에는 보편적으로 이러한 행동들이 관찰됩니다.
두 번째 차원은 특수성입니다. 인간 행동의 보편성은 그들이 사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다양성을 띄게 됩니다. 똑같이 먹고 자고 집을 짓고 짝짓기를 하지만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과 사막에 사는 사람들, 숲이나 극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특수성이 나타나죠.
여기가 바로 문화의 차원입니다. 문화란 사람들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유/무형의 생산물들의 총체입니다. 집, 생활도구, 의복 등으로부터 가족, 결혼, 계급 등의 사회제도, 규범과 법령, 가치관 등이 특수성의 차원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부분이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옷을 입지만 옷의 형태나 입는 방법, 의미는 문화마다 같다고 할 수 없고, 사람들이 음식을 먹지만 음식의 재료나 조리법, 먹는 방법과 의미가 문화마다 다르다는 것이 이 말씀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개별성의 차원입니다. 개개인을 떼어놓고 보면 사람들의 행동은 모두 다릅니다. 먹고 입는 것만 해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먹고 입는 방식도 차이가 있죠. 문화적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농경문화 사람들이 쌀농사를 짓지만 소 키우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고 해양문화 사람들이 바다에 익숙하긴 하겠지만 모두 배를 타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효(孝)를 숭상해왔지만 5000만 국민 모두가 효자효녀인 것은 아니죠.
인간의 종(種)적 보편성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 특수성을 만들어내고 문화적 특수성은 개개인의 성향 및 생물학적 보편성과 만나 무수한 개별성을 만들어냅니다. 개별성 차원에서 보자면 인간 개개인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똑같다’나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사람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 전제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죠. 우리가 진정 가져야 할 의문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왜 차이가 나타나는가’, ‘개개인의 행동들에서 왜 특정한 행동의 패턴이 관찰되는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의문에 답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있으니 바로 유형(pattern)입니다. 유형이란 문화에는 어떠한 유형(pattern)으로 분류될 수 있는, 구성원들에게 공유된 방식이 있다는 뜻으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창안한 개념인데요.
베네딕트의 제자이자 문화와 성격 학파의 또 다른 학자인 마가렛 미드의 저서 ‘남성과 여성(Male and Female; Mead, 1949)’에는 이 패턴의 의미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장을 요약하면 남녀의 성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생물학적으로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양성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사회가 남자의 행동과 여자의 행동을 나누어서 유형화시킨다는 것이죠. 아이들에게 각각의 성별에 맞는 적합한 행동이 있다는 것을 교육시킴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내재화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이 베네딕트가 말하는 패턴화입니다.
개인은 원래 동일하게 태어나지만 문화가 개인들을 그 문화에 맞게 교육시키고 결국 개인은 그 문화에 패턴화되는 것입니다. 보편적 존재인 인간이 문화적으로 패턴화되어 문화적 특수성을 갖게 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문화는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그 환경에서 계속해서 잘 살아가려면 이러한 것들을 후속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교육을 통해 후속세대는 해당 문화에서의 요구에 부응하는 공통적인 삶의 방식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화의 유형(패턴)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기본적 욕구(Basic needs)를 가집니다. 인간이라는 종(種)으로서 갖게 되는 생물학적 보편성 때문이지요. 교육을 받는 어린 아이들의 욕구와 교육이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문화 내에서의 어린이들의 성격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성격이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욕구, 능력, 교육,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린 아이들이 성격에 맞는 어린이들의 행동(child behaviors)이 발달하게 되는데요. 그 예로, 어리광, 투정, 떼쓰기, 놀이 등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자신의 욕구를 충족해가는 과정에서 특정 유형의 행동들이 나타나는 것이죠.
따라서 문화는 것은 일종의 투사체계(projective system)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들이 주로 읽는 동화나 이야기, 꿈꾸는 환상, 많이 하는 놀이에는 그들의 바람과 희망, 좌절이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성장하게 되면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인들의 성격이 되고 이를 국가 같은 큰 집단으로 확대하면 그 나라의 문화적 성격이 되는 것이죠. 성인들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들의 행동(Adult behaviors)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특정 유형의 범죄나 자살율, 여가활동 등이 그 예들이겠구요. 또 이러한 성격이 투사되면,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설명인 종교나 종교적 신념, 정신병의 원인과 치료에 관한 병인론(etiology) 등의 문화적 산물들이 파생됩니다.
저는 바로 이 관점, 특수성의 차원에서 유형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문화를 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보편성의 틀 안에서 규정되지만 문화에 따른 특수성으로 구분되고 개개인은 개별적 존재지만 문화는 사람들의 행동을 패턴화시키니까요.
그러니 이제 '사람들 다 똑같지 뭐~'나 '사람마다 다 다르지 뭐'라는 이야기는 잠시 잊어주세요. 다 똑같은 사람들이 달라지는 부분, 다 다른 사람들이 같아지는 부분. 그 차원이 바로 문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