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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May 10. 2020

반일(反日)의 이유 vs 혐한(嫌韓)의 이유

한일은 왜 서로를 미워하는 걸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사이는 좋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는 두 나라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삼국시대 이래로 임진왜란에 이르기까지 왜구들에게 시달린데다 끝내는 나라를 빼앗기기까지 했으니까요.     


해서 지금도 스포츠 한일전이라도 있을라치면 일본에는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된다며 투지를 불태우는 한국인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사실 인접한 국가들끼리 사이가 껄끄러운 것은 세계사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 같은 나라들도 오랫동안 치고받아온 역사 때문에 축구 같은 데서 맞붙게 되면 한일전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죠.     

그러나 한국의 반일감정은 단순히 오래된 이웃 사이의 해묵은 감정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징용피해자, 위안부 할머님 등 일제강점기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 여전히 생존해 계시는데다가 일제강점기는 6.25와 분단 등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이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역사, 영토, 산업 등 다방면에서 지속적인 도발을 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제강점기의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엄연한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최근의 무역제재(?)와 같이 조선이나 반도체 등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산업들에 끊임없이 부당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은 왜 이미 끝난 문제를 계속 걸고 넘어지느냐, 이미 사과했는데 왜 계속해서 사과를 요구하느냐..며 불만입니다만, 역사 왜곡 같은 사안은 결코 끝난 문제가 아닐 뿐더러 앞서 사과한 내용도 내각이 달라지거나 하면 순식간에 뒤집으니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일본은 왜 한국을 싫어하는 것일까요? 일본 정부는 과거사나 영토 문제 등에 대한 한국의 입장에 ‘어린아이처럼 떼쓴다’, ‘감정적으로 나온다’ 등으로 반응하고 있는데요. 이런 반응은 일본의 문화적 배경에 따르면 상대를 아주아주 낮게 평가하는 어법..입니다.     

 

일본 문화에서 떼를 쓰거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나 할 행동으로 평가받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해도 부모의 엄한 훈육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죠. 다시 말해, 일본은 한국을 ‘어린 아이’로 본다는 이야기입니다.      


과거사나 영토 문제 등 양국 간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본인들이 듣게 되면 한국 쪽이 나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죠. 세상에 국가 간의 문제에 어린애처럼 떼를 쓰다니 말입니다.      


한국을 떼쓰는 어린아이쯤으로 보는 일본의 인식은 근대 이전으로 올라갑니다. 다음은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이자 게이오 대학의 설립자이며 만 엔짜리 지폐에 실려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조선에 대한 평가인데요.     

후쿠자와 유키치 in 만 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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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아시아의 일소 야만국으로서  그 문명의 상태는 우리 일본에 미치기에는 너무 멀리 뒤떨어져 있다. 이 나라와 교류해서 우리가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조선인의 완고 무식함은 남양의 미개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조선은 상하 모두가 문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학자는 있지만 다만 중국의 문자만 알 뿐 세계정세는 모르고 있다. 그 나라의 질을 평가한다면 글자를 아는 야만국이라 하겠다.     


조선인은 고집이 세고 인정하려 하지 않고 약속을 안 지키고, 편협하며. 사리에 어두우며 밥만 축내는 냄새가 나는 더러운 기생충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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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이 근대화하여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조선과 중국같은 나라들이 있는 미개한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의 기술은 그의 책 [탈아론]의 구절들인데요. 후쿠자와 유키치의 이러한 생각에는 제국주의 시대의 비서구 지역을 미개 사회로 보고 유럽을 인류 문명의 정점으로 보는 사회진화론적 인식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제공한 이론을 근거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산업화에 성공하고 당대 유럽처럼 제국주의의 길을 걷습니다. 그 대상이 된 것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이죠.     


이 과정에서 일본과 다른 아시아 나라들을 구분짓는 인식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모든 나라들은 ‘각자 알맞은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인용문들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삼국동맹

삼국동맹(1940년, 독일, 이탈리아, 일본) 당시의 선언문

"대일본제국 정부와 두 나라는 세계 만방이 각각 알맞은 자리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항구적 평화의 선결 요건이라고 본다. 각국이 각자에게 알맞은 자리를 찾아내는 것, 그리하여 만민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과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진주만 공격 당일 일본의 성명서(1941년)

"모든 국가가 세계에서 각자 알맞은 자리를 취하도록 하려는 일본 정부의 정책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일본 정부는 현 사태의 영구화를 참을 수 없다. 그것은 각국이 세계에서 각자 알맞은 자리를 지키도록 한다는 일본의 기본 정책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


일본 육군성 중령의 발언(1942년)

"일본은 그들의 형이며 그들은 일본의 아우다. 이 사실을 점령지역 주민들에게 철저히 인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때 주민들에게 지나친 배려를 표시하면 그들에게 일본의 친절에 편승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일본의 통치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



일본에게 있어 세계 여러 나라들의 ‘알맞은 자리’란 일본이 형이 되고 다른 나라들은 아우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은 아우를 돌보고 아우는 형을 따릅니다. 이 얼마나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세상일까요.     


한편 형과 아우란 강자와 약자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강자는 약자에게 무슨 일이나 해도 되고 약자에게는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 강자와 약자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기도 하죠. 약자가 당한 일들은 그들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강자에게는 이것을 뉘우치거나 사과할 의무가 없는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혐오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동생이 건방지게 형한테 맞먹는 것은 물론, 약자가 강자에게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죠. 이는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한국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의 위상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살던 시대와 전혀 다릅니다. 군사력 세계 7위의 군사강국이자 IMF가 발표한 세계 10대 선진국에 드는 한국은 일본이 절대 만만하게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죠.      

일본과의 GDP는 1965년에는 무려 9배의 차이가 있었으나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이 3만1362달러, 일본이 3만9286달러로 그 격차가 상당히 좁아졌습니다. 올해 3월 OECD가 발표한 구매력 평가(PPP; Purchasing-Power Parity) 기준 GDP(2017년 통계)는 한국이 4만 1001달러로 일본(4만 827달러)을 앞질렀습니다.


여기에 한류 등 증가하고 있는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전통적 문화강국 일본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고 최근 진행되고 있는 남북협력의 분위기 또한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우위가 더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일본의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경제의 활력을 상실한 소위 ‘잃어버린 20’년이 계속되는데다가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유증으로 좀처럼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일본은 여전히 세계 3대 경제대국이며 여러 분야에 걸친 일본의 영향력 또한 여전히 막강합니다. 그러나 WTO화이트리스트 배제나 무역제재 등 최근 일본의 연이은 한국 때리기는 이러한 우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일본의 불안이 반영된 행보로 보입니다.      


나카지마 다케시(中島岳志) 도쿄공업대 교수(근대 일본 정치사상사)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경제성장으로 국력을 키우는 한편 세계에서 일본의 상대적 지위가 하락한 것이 최근 한국에 대한 부정적 논조가 확산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자세도 '일본에 할 말은 한다'로 변화해 갔다. 일부 일본인은 자신을 상실하는 가운데 이웃 나라인 한국이 자기주장을 강화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수파, 특히 장년층에서 (혐오 감정이) 더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에 대한 혐오 감정이 젊은 세대보다는 노년층에서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나카지마 교수는 "한국을 과거에 얕본 듯한 중·노년 세대에 그런 경향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이 세대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않고 있다. 그것이 지금 일본 내셔널리즘의 모습"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형성된 한국에 대한 인식을 현재에도 이어가려는 일본의 속마음이 혐한의 주요 이유인 것입니다.      

혐한코너의 책들

사실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에서는 한국의 이미지가 크게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류를 즐기는 청년들도 많고 한국에 여행오는 일본인들도 많이 늘었죠. 그러나 일본의 주요 서점에는 여전히 혐한 코너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대도시의 거리에서는 혐한 시위가 벌어집니다.     


물론 혐한 시위에 맞불시위를 하는 일본인들도 있고 일부 지자체에서 헤이트 스피치 방지법을 입안하는 등의 노력도 있지만 한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한다거나 언론과 방송에서 지속적으로 한국을 헐뜯는 기사와 프로그램들이 방영되는 것을 보면 혐한이 일본 중, 노년 세대에 한정돼 있다고 보기만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의 혐한에는 또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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