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문화심리학의 유래와 한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만 심리학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 같은 주제는 연구하지 않습니다. 물론 심리학에도 ‘비교문화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만 비교문화심리학은 주로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지 더 세부적인 문화 차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문화로 함께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비교문화심리학은 문화를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개인주의는 행위의 기준이 행위자 자신(개인)이 되는 문화를 의미합니다. 대개 미국과 캐나다 같은 북미나 서유럽(영국, 프랑스, 독일 등) 나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여겨집니다. 집단주의는 행위의 기준이 자신이 속한 집단이 되는 문화입니다. 동양,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나라들이 언급됩니다.
사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동양과 서양처럼 지역을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닙니다. 개인주의 vs 집단주의 개념을 심리학으로 가져온 그리스의 심리학자 트리안디스는 항상 친척들끼리 북적대는 그리스의 문화에서 집단주의를, 상대적으로 핵가족 중심의 미국 문화에서 개인주의를 읽어냈습니다.
개인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는 사람들이 맺는 관계의 종류와 그 관계 내에서의 행동이라는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요. 요점만 말씀드리자면, 개인주의 문화는 개인 행동의 근거가 개인 스스로에게서 나온다는 것이고 집단주의 문화는 그 근거가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사람들은 집단으로부터 더 분리되어 있으며 자율적으로 행동합니다. 사회적 행동의 목적은 개인적 만족을 최대화하려는 것이며, 사람과의 관계는 그러한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 만약 관계성을 유지하는 비용이 거기서 얻는 만족 이상이라면 그 관계는 자연히 파기되죠.
반면,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집단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많은 상황에서 개인적 목표보다 집단의 목표를 우선합니다.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은 규범, 의무, 책무의 결과로 나타나며 관계를 유지하는 데 터무니없는 비용이 들지 않는 한 사람들은 관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집단주의 문화에서 내집단 성원을 대할 때의 행동과 잘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의 행동이 꽤 달라집니다. 개인의 독특성을 찾고 일관적인 개성을 유지하기보다는 집단 내의 조화를 중시하고 그때그때 자신이 처한 사회적 맥락에 적합한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개인주의 문화 사람들이 내집단 성원을 대할 때의 행동과 잘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의 행동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관계 자체가 개인적 필요에 따라 계약적으로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행동의 기본이 되는 자기 자신의 독특성을 찾고 그것을 일관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 집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제 다른 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11)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개념이 동양과 서양을 비교하는 기준이 된 것은 90년대에 들어 비교문화연구에서 일본이 집단주의의 대표적 나라로 선택되면서부터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의 특수를 이용하여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고 80년대부터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위협하는 위상을 갖게 됩니다.
80년대에 나온 헐리우드 영화에는 일본과 일본인들은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미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본 자본에 넘어가던 시절이었죠.
그 결과, 미국인들은 무섭게 부상하는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런 노력 중 하나가 심리학에서의 비교문화 연구들이었던 것입니다. 개인의 만족과 성취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에게 기업과 국가를 앞세워 도전해오는 일본은 실로 ‘이상한 사람들’이었고 집단주의는 그들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좋은 이론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과는 별 관계없던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는 동서양을 구별하는 문화적 특성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세계의 수많은 문화들이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로만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독립적 자기 vs 상호의존적 자기'의 기타야마 시노부나 문화와 인지 연구의 데이빗 마츠모토 등 일본인(일본계) 심리학자들이 수많은 연구로 이 이론을 뒷받침했고,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로, 미국과 일본은 서양과 동양을 대표하는 나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에는 집단주의 문화 안에 존재하는 문화 차이,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의 심리적 차이에 대해 이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애초에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란 서양(미국)과 동양(일본)을 비교하기 위한 구분일 뿐이었으니까요.
문화심리학을 하겠다고 대학원에 들어간 제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이 바로 요 지점입니다. 한국인들은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을지, 일본과 중국 같은 이웃나라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등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에 심리학은 답해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이게 맞는 일입니까? 동북아시아의 한복판에서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여 치열한 생존경쟁을 해 나가야 하는 한국인들이 참조할 연구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들이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연구결과밖에 없다는 것이?
동양인으로서, 집단주의 문화의 일원으로서 서양인에 대한, 개인주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 물론 필요하겠습니다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동양인들의 행동이 궁금했던 것은 그 동양인들(일본인)에게 자국의 이익을 위협받는 서양인(미국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서양을 비교하는 비교문화심리학을 만들었죠.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의 심리가 궁금하다면 일본인들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걸 궁금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미국에서 연구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들을 연구하지 않는 풍토를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한국에게 있어 중요한 이웃입니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밀접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관계로 지낼 수는 없습니다. 역사 왜곡과 영토 도발, 경제에 대한 공격과 혐한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누가 봐도 적의를 품은 행위들을 계속하고 있는 이웃을 ‘이웃’이자 ‘친구’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일본은 왜 이러는 걸까요? 일본인에 대한 이해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중요합니다. 일본인들을 이해해야 그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그들의 행동에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일본인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국익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문제입니다.
덧붙여 일본인에 대한 이해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비춰줄 대상이 필요한 법이죠.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 정체성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 확고해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집단주의 문화권이고 유교적 가치관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권위주의적 사회의 일원입니까? 그건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인걸요. 개인주의 vs 집단주의와 유교적 가치관으로 우리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충분할까요?
한국인과 일본인. 과연 비슷한 사람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