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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Feb 11. 2021

우긴다고 남의 문화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문화의 고유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중국의 한국문화 훔치기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최근 주UN대사가 김치 담그는 영상을 올려 논란이 된 김치로부터, 한복, 태극기, 판소리, 농악, 심지어 윤동주 선생같은 사람도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인데요. 어디부터 딴지를 걸어야할 지 말 그대로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한국인들이야 이러한 시도들이 말도 안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인해전술 식으로 밀어붙이는 중국의 문화공정에 세계인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저는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중국의 문화공정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 봅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정보환경입니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인터넷은 가짜 정보를 퍼뜨리는 데도 유용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찾는 데도 쓸모가 많거든요. 서로 상충되는 정보들이 있을 때 교양과 상식을 갖춘 지성인이라면 교차검증을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받아들이려 할 겁니다.


게다가 한국문화가 중국의 것이라는 중국의 주장은 허점이 많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이 올린 영상이나 자료들도 제대로 된 자료나 근거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막무가내식 우기기가 대부분입니다. 정상적인 교육을 이수했다면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이런 소리까지 나오는 것이 중국 주장의 한계입니다.

ㅇ병..

둘째, 한국인들의 기질입니다. 기질은 타고나는 것을 의미하므로 문화적 성격이라고 합시다. 대놓고 우리 것을 빼앗아가는 이 상황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억울한' 상황입니다. 한국인들은 억울한 상황을 못 견딥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자존심과 관계된 거라면 개싸움도 마다않는 한국인입니다. 또한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다양한 개싸움 기술?들은 연마했다는 점도 강점이죠. 역사적으로 중국의 인해전술에 대처해 본 경험도 많고요.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문화의 본질에 있습니다. 문화를 심리학적으로 풀어 말하면 습관, 가치관, 욕구의 체계라 할 수 있는데요. 김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인들은 밥먹을 때 김치를 먹습니다. '밥'으로 통칭되는 모든 식사류에 김치가 등장하죠. 카레에 김치, 피자, 스파게티에 김치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느끼하거나 텁텁한 음식을 먹었을 때 김치를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더 맛있고 새로운 김치를 먹고 싶은 욕구는 수백 가지 종류의 김치를 만들어냈죠. 새로운 식재료가 도입되면 한국인들은 곧 김치를 담급니다. 케일 김치, 파인애플 김치, 고수 김치, 망고 김치.. 듣도 보도 못한 김치들이 수두룩 빽빽입니다. 이렇게 김치를 자주 또 많이 먹다보니 김치를 보관할 필요가 생깁니다.

있습니까 김치냉장고 당신의 집 안에?

땅에 김칫독을 묻어 김치를 보관하던 한국인들은 현대사회 들어 주거형태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김치냉장고를 만들었죠. 더 신선한 김치를 더 오래 먹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죠. 외형적인 생활은 바뀌었지만 문화적 습관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김치가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나라에는 집집마다 김치냉장고가 있는지 묻고 싶군요.


이렇듯 문화란 오랜 시간 동안 구성원들의 의식/무의식 수준에서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있는 습관입니다.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김치가 '절인 채소'의 한 종류라는 이유로 중국의 '파오차이'에서 유래했다는 중국인들의 주장은 어이없음을 넘어 실소가 나올 지경입니다.


중국이 자기들 것이라 주장하는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복이 명나라 때 의복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중국에도 원나라 때부터 '고려양'이라는 한국식 복장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문화의 기원을 따지는 게 의미가 없다는 얘깁니다. 아니 기원을 추정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게 다 자기 거라고 하는 게 문제죠.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문화변용 또는 문화접변(acculturation)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서로의 문화 요소를 받아들여 새로운 양식의 문화로 변화한다는 뜻입니다.

문화변용의 차원

비교문화심리학자 존 베리는 '본래 문화를 지키려는 정도'와 '새 문화에 적응하려는 정도'의 차원에 따라 분리, 통합, 주변화, 동화 네 유형의 적응전략이 나타난다고 보았는데요. 중국이 주장하는, 한국이 중국의 영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동화(assimilation=외부문화에 흡수)'에 해당합니다.


본래 문화를 지키려는 정도가 낮고 적극적으로 외부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얘긴데, 한국이 고유 문화가 없었다는 주장에서만 가능한 주장입니다. 자기 문화를 지키면서 외부 문화를 수용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통합(integration)입니다.


분리(separation)나 주변화(marginalization)처럼외부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문화의 교류는 대개 통합의 유형으로 나타납니다. 기존 문화와 현재 사람들의 욕구가 합쳐지면서 그 문화의 고유성이 나타나는 것이죠.


따라서 이 문화는 원래 어디서 유래했기 때문에 우리 거다.. 라는 주장은 근본부터가 틀렸습니다. 문화의 교류가 쌍방향이라는 전제를 어딘가 팔아먹었기 때문이죠. 그러면 알파벳은 그리스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지금 알파벳을 쓰는 모든 나라들은 그리스에 저작권이라도 내야 하는 건가요?


알파벳을 쓰지만 영어는 영어고 불어는 불어, 독일어는 독일어입니다. 영어는 영국이라는 환경에서 영국인들의 심성에 맞게 발달해 왔고 불어는 프랑스에서, 독어는 독일에서 같은 과정을 거쳐 발달해 온 독자적인 언어입니다.


김치가, 한복이 한국인의 것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이 한국인의 삶, 한국의 역사와 함께 해 왔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드라마 <킹덤>으로 한국의 '갓'이 주목받자 다급하게 갓을 쓴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를 찍어내는 얄팍함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봐도 억지스런 주장을 중국이 하는 데는 복잡한 내부적 문제에서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기 위한 목적이다, 수십년 동안 이어 온 동북공정의 마무리 단계다 등 여러 분석이 있습니다. 물론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고 당의 목적에 의해 문화공정의 흐름이 만들어진 것은 당연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인들의 욕망이 아닐까 합니다. 아편전쟁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억눌려 왔던 중화의 자부심이 최근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커지고 있는 것이죠. 14억의 인구, 세계 2위의 경제력. 그 위상에 걸맞는 자아상을 중국인들은 갖고 싶은 것 같습니다. (참조: 중국의 영웅은 누구인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18)


뭐 그럴 수 있죠. 저도 중국인들이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맞는 모습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남의 문화가 내 꺼라고 주장하는 거라면 곤란합니다. 무협지에 나오는 호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와 싸우며 대의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던데요.


저는 중국인들이 다 그런 줄 알았지 뭡니까. 오랜 무협지 팬으로서 중국이 보여왔던 '대국'의 면모를 하루빨리 되찾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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