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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an 26. 2023

한국의 괴물이 의미하는 것

괴물의 문화심리학_한국편

한국에는 괴물영화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현실을 중시한 유교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죠. 지금도 한국 관객들은 한국에서 나오는 SF나 크리쳐물(괴물 나오는 장르)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해외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잘들 보지만서도 말이죠.


한국에서 영화화된 괴물로는 전통의 불가사리(송도 말년의 불가사리(1962), 불가사리(1985북한))와 이무기(디워(2007)), 창작 괴수 용가리(대괴수 용가리(1967), 용가리(1999))가 있구요. 현대물로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 7광구(2011), 최근의 물괴(2018) 정도입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상처입은 자연을 상징하는 미국 괴물과 거대하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 대한 동경이 반영된 일본의 괴물(괴물의 문화심리학(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83)참조)과 구별되는, 한국 괴물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문화콘텐츠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사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려 한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여러 번 영화화 되었다든가 흥행에 특별히 성공한 작품이라면 그러한 욕망을 읽어내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 오른쪽은 북한판 불가사리

우리나라 괴수영화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1962년에 제작된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인데요. 이 영화는 고려말 배경의 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고려 말 한 과부가 몸을 간지럽히는 벌레를 잡아 밥을 주자 먹지 않고 바늘 등 쇠붙이를 먹으며 몸을 키웠고, 몸집이 커진 괴물은 집을 떠나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쇠붙이를 먹어치웠습니다.


피해가 심해지자 나라에서 군대를 동원해서 괴물을 잡으려 하였으나 칼과 창 등의 쇠붙이를 먹어치웠고 불에도 죽지 않아 죽일 수 없다는 뜻으로 불가살(不可殺)이라 부르게 되었죠. 결국 한 스님이 나타나 부적을 붙이자 불가사리는 지금껏 먹은 쇠붙이를 토해놓고 사라졌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행패를 부리는 사람을 가리켜 '불가사리 쇠잡아먹듯 한다' 혹은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영화 <송도말년의 불가사리>는 원래 불가사리 설화와는 딱히 관계가 없구요. 고려 말 무예가 뛰어난 청년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불가사리로 환생하여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입니다. 

북한영화 <불가사리>

불가사리는 1985년 북한에서 신상옥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요. 이 영화에서 불가사리는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서 관군의 무기를 먹어치우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관군을 몰아내고 백성들의 세상이 열렸으나 쇠를 먹는 불가사리는 백성들의 농기구까지 먹어대기 시작하고 결국 불가사리까지 없애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형 괴수 용가리는 일본 괴수 고지라(1954)의 영향을 받은 괴물로 보입니다. 실제 고질라 제작진이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고요(고질라 제작진은 북한영화 불가사리에도 참여했다는군요).  1967년작 <대괴수 용가리>는 '먼 나라'의 원폭실험으로 태어난 용가리가 판문점에서 땅을 뚫고 나타나 남한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대괴수 용가리>

용가리가 나타난 곳이'판문점'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용가리는 북한(공산권)의 위협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실제로 이 영화는 반공영화로 평가되기도 했답니다. 참고로 대발이 아버지,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 선생님도 나오십니다.


1999년 영화화된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는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스토리입니다. 고대 괴수 용가리가 외계인들의 광선을 맞고 깨어나 외계인들의 뜻대로 방사능 에너지를 얻기 위해 핵발전소를 공격하다가, 지구인들에게 감화되어(?) 지구인의 편에서 외계인과 싸워 승리한다는 내용인데요;

<용가리>

크고 거대한 괴수가 왠지 우리편이 돼서 함께 싸워주는... 후기 고지라 영화(요새 미국에서 리메이크 되고 있는)들의 특징, 다시말해 괴물을 경외하고 사랑할 대상으로 보는 일본 괴물영화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디 워(2007)>에서 은근슬쩍 차용된 이무기는 우리나라 전통의 괴물인데요.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천년을 수행하는 집념의 수도자입니다. 보통 용이 되기 전의 인물, 역적이나 나라를 세울 만한 잠재력이 있는 인물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디 워의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왜 뭐

2011년 나온 <7광구>의 괴물은 인간의 욕망으로 상처입은 자연의 복수라는 전형적인 미국식 괴물 영화입니다. 전(체)적으로 실패했지만 말이죠.


2018년 작 <물괴>는 조선왕조실록 중종 22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역사 괴물 영화인데요. 물괴는 연산군 시절 연산군이 수집하여 기르던 괴수 중 한 마리로 추정됩니다. 반정이 성공하고 연산군이 쫓겨나면서 관리할 사람이 없어(?) 풀려난 괴수가 사람들을 습격하고 뭐 그랬다는 내용입니다.


덧붙여  권력자들의 음모와 암투, 희생되는 이름없는 백성 등도 버무려 넣으려 했던 모양인데 결과는 그저 그랬고, 괴물 자체는 뭐 굳이 말하자면 인간의 욕망에 희생된 자연을 상징한다 하겠습니다.

뭐 왜

요약하자면, 한국의 괴물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괴물의 상징은 딱히 없습니다. 불가사리가 전통적 괴물상에 가깝긴 하지만 영화화되면서 그런 부분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구요. 용가리는 고지라의 한국판, 디 워의 괴물들은 감독이 그냥 괴물영화를 찍고 싶어서 만든 괴물들로 보입니다.


<7광구>의 괴물과 <물괴> 또한 얄팍한 미국식 괴물스토리에 한국적인 뭔가를 넣으려 했으나 그 결과는 흥행성적이 말해주고 있죠. 괴물 나오는 장면을 넣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면 안된다는 교훈만이 남았을 뿐.


일단, 한국에서 괴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공감을 얻기 어렵습니다. 한국인들이 워낙 현실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야 그 나라 감성으로 몰입해서 볼 수 있지만 한국인들이 우리말 쓰면서 나오는 영화에 나오는 괴물을 그만한 이유와 타당성이 있어야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영화가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입니다. 미군 실험실에서 몰래 버린 약품 때문에 변이한 생물체인 괴물은 백주대낮에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습니다. 한강 공원을 활보하는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은 괴물을 만들어낸 부조리한 사회와 참사를 대하는 관료와 언론, 학계의 태도였습니다.

네 덕에 우리가 이렇게 모였구나

괴물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각종 부조리들을 상징합니다. 괴물과 괴물에 얽힌 사람들의 무섭고도 슬프고 웃기면서도 씁쓸해지는 이야기들에 관객들은 공감했고 괴물영화는 흥행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깨고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작품성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괴물>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괴물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만, 현대에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런 점이 그다지 일관적인 패턴으로 나타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과거의 괴물설화들을 보면 한국사람들이 무엇을 '괴물'로 지칭했는가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이 나타나는데요.


가장 전형적인 괴물, 불가사리 이야기는 '손쓸 수 없이 행패를 부리는' 사람을 불가사리라고 부른다는 결론으로 끝이 납니다. 불가사리처럼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대상을 괴물이라고 생각해 왔다는 건데요. 실제로 불가사리가 먹는 '쇠'는 돈 그 자체나 백성들이 농사짓는 농기구, 먹고 살아야 하는 식기 등의 재료입니다.


그런 것들을 뜯어가는 탐관오리나 악독한 부자 등이 불가사리의 모델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불가사리의 탄생은 버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가난한 집의 백성이 밥을 뭉쳐 만들었다는 설을 따르자면, 백성이 농사지은 녹을 먹는 자(관리)들이 결국 백성을 수탈하는 괴물이 되었다는 점에서 불가사리는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로 보는 게 맞을 거 같군요.

더 줘!

불가사리 이야기의 배경이 송도 말년=고려 말이라는 점에서 불가사리는 이 시기 고려를 괴롭혔던 외적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고려말은 원나라의 잔당, 홍건적, 왜구 등 외침이 끊이지 않는 시기였죠. 적과 싸우기 위해 쇠붙이도 많이 걷어갔을 겁니다. 나라 입장에서야 국운을 건 총력전이었겠으나 민초들 입장에선 당장 농사짓고 밥해먹을 도구들을 뺏어가는 이들은 누구건 괴물이었겠죠.


어디서도 영화화된 적은 없지만, 백성들을 괴롭히는 유명한 괴물에 '강철이'(깡철이, 꽝철이)라는 놈이 있습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당대에 "강철이 가는 곳은 가을도 봄 같다"는 속담이 있었는데, 이수광이 그 유래가 궁금하여 시골 노인에게 물었더니 근방 몇 리의 식물을 모두 태워죽이는 강철이라는 괴물을 알려주었다는 겁니다.

강철이(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신동아)

강철이는 이밖에도 <어우야담>, <성호사설> 등에 언급되고 있는데요. 백성들이 열심히 농사지은 작물을 태워죽이는 강철이는 가뭄이나 태풍, 우박 등 자연재해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비바람을 다스린다는 점에서 용이 되는데 실패한 이무기라는 설도 있는 모양이네요.


어느 시대에선가 용(왕)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백성들에게 심한 피해를 끼친 일들이 이런 식으로 남아 전승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줄요약**

한국의 괴물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나 사회부조리 등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불가사리'가 그 원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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