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는 왜 중국에서 발달했을까
화산파, 아미파, 무당파, 소림사, 개방 등 다양한 문파와 허공을 걷고 물 위를 달리는 화려한 무공.. <용문객잔>, <동방불패>, <의천도룡기>, <백발마녀전>, <동사서독> 등등 이름만 들어도 각 장면이 떠오르는 유명한 영화들까지.. 무협지 한번 안 읽고 무협영화 안 본 분은 안 계실 줄 압니다.
무협지는 중국에서 시작된 장르입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삼국지>, <서유기>, <수호지> 등 충(忠)과 의(義), 협(協)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 널리 사랑받아왔는데요. 장대한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현대에 본격적으로 재창조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무협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용(1924~2018)의 업적입니다.
첫 작품 <서검은구록(1955)>을 비롯,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천룡팔부>, 영화 '동방불패'의 원작 <소오강호> 등 그의 작품은 실제 역사와 중국대륙을 배경으로 하여 그 스토리가 웅장할 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아 대학 교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아시다시피 영화화된 작품도 많습니다.
중국 무협이 인기를 끌다보니 비슷한 색채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름없는 작가들부터 꽤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무협지는 현재도 웹툰과 웹소설에서 꾸준히 생산되는 장르입니다. 저도 옛날에 종이책 만화 <열혈강호>, <용비불패> 등등을 열심히 읽었었죠.
한국에서 쓰여진 무협지는 중국 무협지와는 세부 설정이나 문파의 종류, 쓰는 무공이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많은 공통점들이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대개는 중국이 배경이라는 점, 저마다의 특수한 무공을 가지고 있는 '문파'와 '세가'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무협지가 어색한 이유는 우리 역사에서는 문파와 세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고려시대까지는 지방의 유력한 가문들(호족)이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이게 어찌보면 문파 내지는 세가라 할 수 있는데, 조선의 3대 왕 태종이 사병을 본격적으로 혁파하고 조선의 군사조직을 중앙군 중심으로 편제하면서 한국인들의 기억에서는 멀어진 얘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무협지가 중국에서 나온 데는 중국만의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삼국지연의>나 <수호지>부터 중국인들에게 무협의 의미는 손상된 자존심의 회복입니다. 두 소설이 널리 사랑받았던 시기는 원나라 말기였는데요.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중국인(한족)들은 화려하고 강력한 무공으로 적을 무찌르고 한족의 나라(삼국지연의에서는 한(漢), 수호지에서는 송(宋))를 다시 세우는 두 소설에서 적지 않은 위로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겁니다.
이러한 무협지의 기능은 현대사회에서도 이어지는데요. 1920년대 경부터 두드러지는 무협물의 발전은 근현대 들어 아편전쟁과 청일전쟁, 중일전쟁 등으로 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혔던 중국인들에게 중국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무공으로 대표되는 중국적 정체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무협지의 일반적인 의미와 기능이라 할 수 있겠고요. 좀더 심층적인 부분은 바로 '문파와 세가'의 존재, 그리고 무림과 관(官)의 관계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드넓은 영토와 자주 교체되는 왕조, 패권을 다투는 수많은 전쟁으로 중국의 민초들의 삶은 매우 팍팍했습니다.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했고 도적떼들과, 때로는 도적과 구별하기 어려운 정치세력들 틈에서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야 했죠.
그렇게 중국인들은 국가(官)보다는 가족과 친척들(씨족/부족),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맺은 사적 관계망(꽌시)에 의지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꽌시는 지금도 중국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해야 하는 개념이죠. 중국인들은 아무하고나 꽌시를 맺지 않지만 일단 꽌시가 되면 가족 이상의 친밀감과 헌신을 보입니다.
땅덩어리가 큰 만큼 각지의 물산을 이동시키는 교역도 중요했는데 국가의 치안이 미치지 못해 도적(비적)떼가 털어가기 일쑤니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사들을 고용하거나 스스로 무술을 배워 자경단을 조직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것이 바로 각지에 자리잡은 '문파'와 '세가'들의 정체입니다. 지방의 유력 가문들 또는 종교의 도관이나 사찰 등지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사병집단이라 할 수 있죠. 거대한 나라 중국은 현대사회가 된 지금도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거나 관리들이 해당 지역의 토호(세가)들과 결탁(꽌시)한 경우가 많아 여전히 과거와 비슷한 문화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계투((械鬪)입니다. 계투란 무기를 갖고 싸운다는 뜻으로, 여러 이유로 부족이나 마을 사이에서 벌어지던 싸움을 의미합니다. 어쩔 때는 수천에서 수만 단위의 사람들이 수년씩 참여하는 실제 전쟁 규모의 계투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계투에 지방정부나 경찰은 개입하지 않거나 오히려 사람들이 개입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지방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거나 지방정부의 관리가 특정 지역/부족 사람과 특별한 사이(꽌시)일 때 공정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단골 대사가 떠오릅니다.
"관(官)은 무림의 일에 개입하지 마시오" (OO세가 가주 아무개)
무협지에서 관은 무림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쩌다가 개입을 하면 무림인들은 관군에 속절없이 털려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행정력이 구석구석 미치지는 못하지만 중앙정부의 행정력은 지방의 일개 자경단들(문파)의 수준을 아득하게 초월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설정(?)이 아닌가 합니다. 땅도 크고 사람도 많으니만큼 그들 중에 가려 뽑은 관군들의 실력도 대단하고 장비도 엄청나겠죠.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향유하는 문화예술(좁은 의미의 문화)은 해당 문화(넓은 의미의 문화)의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그들이 살아왔을 환경과 역사에서 기인하죠. 무협지는 분명 중국의 문화적 배경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