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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Nov 27. 2021

한국의 어울림 vs 일본의 와(和)

조화에 대한 문화적 인식의 차이

   

‘집단주의 문화의 사람들은 집단 내에서의 조화를 우선시한다’. 비교문화심리학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설명입니다. 집단 내의 조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을 전체적으로 살피고(한국의 눈치 vs 일본의 '공기를 읽는다'), 공적인 맥락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개인의 성취를 남들 앞에서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국과 일본은 대표적인 집단주의 문화권의 나라고 한국인과 일본인들 역시 집단 내에서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누차 말씀드리듯이 비슷한 문화가 있다고 해서 그 원리나 양상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 


문화의 구성원들의 생존과 사회유지를 위한 것이기에 문화의 진화는 생명체의 진화와 유사하다는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요. 따라서 문화는 각자가 처한 환경적, 역사적 조건에 따라 진화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됩니다. 진화론의 수렴진화라는 개념처럼 말이죠.


조화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조화(調和)는 영어 Harmony를 번역한 것인데요. 그러나 각 문화 사람들이 표상하는 조화의 의미에는 미묘한 차이들이 있습니다. 먼저 개인주의 문화권에서의 조화(Harmony)의 의미는 서양 음악에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출처: 금세 공부방

음악시간에 배우셨다시피 서양음악은 리듬(Rhythm), 가락(Melody), 화성(Harmony)의 3요소로 이루어지는데요. 화성(Harmony)은 그리스 어 harmonia에서 유래된 말로 음악에서는 여러 음이 동시에 울리는 화음의 결합을 뜻합니다. 


화음은 높이가 서로 다른 음이 동시에 울릴 때의 조화에서 발생하며 동시에 울리는 다른 음들은 더 이상 개개의 음이 아닌 하나의 화음으로 인식되죠. 바로 이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에서 서양문화에서 생각하는 조화(Harmony)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가 합니다.


다시 말해, 서구문화에서 조화란 서로 다른 음들이 합쳐져서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 내듯이, 서로 다른 개인들이 저마다 맡은 역할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내는 단일한 질서를 의미합니다. 


집단을 중시하는 동양문화에 비해 서양문화는 개인이 모든 판단과 행동의 주체가 됩니다. 어떻게 보면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고 할 수 있죠. 따라서 서양문화는 개별적인 개인들에게서 조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엄격한 역할분담과 역할에 따른 책임을 요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화성을 중시하는 서양음악에서 연주자가 멋대로 다른 음을 연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두가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역할에 충실할 때 비로소 전체는 하나로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서양 개인주의 문화에서의 조화(Harmony)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집단주의 문화는 어떨까요? 일본에는 사회의 통합과 조화에 관한 ‘와(和)’라는 전통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와(和)는 고대 일본의 기틀을 닦은 쇼토쿠(聖德)태자가 강조한 사상으로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빠져나갈 길이 없는 일본의 지정학적 조건, 그리고 무(武)를 숭상하는 문화에서 파생된 사회 질서 유지의 원리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100엔 지폐에 그려진 쇼토쿠 태자

일본의 와(和)는 전체가 우선하는 조화입니다. 개인은 전체 속에서 전체의 부속처럼 기능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 내에서의 와(和)란 같은 회사의 구성원이라는 연대의식 하에 동일한 목표와 가치관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같은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양의 Harmony가 각자의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어떤 목표를 위해 집단을 구성하고 일시적으로 정해진 역할에 따르는 것이라면 일본의 와(和)는 이미 정해진 집단의 목표를 위해 지속적으로 개인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성격이 짙죠.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는 개인적인 행동을 하거나 개인의 본심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와(和)를 해치는 것은 엄청난 민폐로 받아들여지고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들은 따돌림(이지메)을 당하게 되죠.


따라서 일본인들은 본심인 혼네(本音)와 일종의 사교적 태도라 할 수 있는 다테마에(建前)를 구분하여 발달시켜 왔습니다. 일본문화가 전체주의적 양상과 개인주의적 양상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집단(전체)이 우선시 되는 상황에서 일본인들은 쉽게 전체주의적으로 행동합니다. 반면에 그런 분위기에 반발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는 매우 개인적인 특성을 보이는 것이죠.


그러면 한국의 조화는 어떤 의미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로 통합의 부재를 꼽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인터넷만 봐도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 노와 사, 남과 여, 노인과 청년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준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학자는 한국음악에는 화성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과격한 분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러나 한국에도 분명 조화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울림’입니다. Harmony가 그렇듯 어울림도 음악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요. 국악학자 최종민은 한국음악의 조화는 ‘소리의 어울림’에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음악은 화성이 없습니다. 다양한 박자체계(Rhythm)를 바탕으로 가락(Melody)이 진행되는 음악이죠. 화성은 없지만 음색의 차이와 연주법의 차이 등이 우리음악만의 독특한 어울림을 이루는 것입니다.      


최종민 선생의 다음 비유는 서양음악과 우리음악에서의 조화의 개념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서양사람들은 초록색을 표현하고자 할 때에 먼저 캔버스에 노란색을 칠하고 그 위에 파란색을 칠한다. 또 보다 더 변화있는 색깔을 나타내고자 할 때는 그 칠한 색깔 위에다가 자꾸만 덧칠을 해서 원하는 색깔을 얻는다. 여러 가지 색깔을 더해서 한가지 색깔을 얻기 때문에 개별 색깔은 안 보이고 결과로 표현된 전체 색깔만 보인다. 서양음악의 화성이라는 것도 서양화에서 색깔을 섞는 이치와 흡사하다. 여러 개의 음을 섞어서 하나의 결과되는 음을 만들어 낸다. 여러 음이 모여서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냈을 때 그 화음은 개별적 음들의 집합체인 덩이로서의 음향만 남지, 각 악기에서 내는 개별적 음들은 거의 소멸되는 것이다. 전체성은 살아나지만 개별성이 소멸된다. 

한국화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이다. 우리의 그림은 색깔을 덧칠하는 법이 없다. 하나하나 존재하는 개별적인 색깔은 뭉개고 다른 색깔을 얻는 법도 없다. 그냥 한 가지 색깔만을 칠해 나간다. 그래서 전체적인 통일과 조화를 가져오게 한다. 우리나라의 산수화가 그러하고 건축물의 단청이 그러하며 색동저고리의 색상이 또한 그러하다. 여자들의 한복도 가령 남치마에 노랑저고리 입는 것이 참 자연스럽다. 양장의 색깔 배합을 이와 같이 하여 옷을 입었다면 어색할 것 같다. 우리의 색깔 사용법은 개별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전체성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개별성과 전체성이 다 함께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어울림의 의미는 전체성과 개별성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서양의 Harmony나 일본의 와(和)가 전체성을 위해 개별성이 소멸되는 방식이라면 어울림은 개별성과 전체성이 공존하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이 내용은 사회심리학의 몰개성화(deindividuation)와 탈개성화depersonaliization)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몰개성화란 집단 상황에서 개인은 개별성을 잃고 집단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서양음악을 몰개성화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구요. 2차 대전 당시 독일이나 일본에서 나타났던 전체주의적 모습을 떠올리시면 될 듯합니다.


반면, 탈개성화란 몰개성화와는 달리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 속에 상실되지 않으며 집단 상황에서도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자기 정체성과 개별성의 확인이 가능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스포츠에서 한 팀을 응원하는 군중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죠. 

개별성과 전체성이 공존하는 탈개성화

따라서 어울림은 ‘탈개성화의 조화’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개의 주체들이 각자의 소리를 내지만 전체적으로는 어우러지는 모습이죠.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조화스럽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보이지만 거기에는 분명 나름의 법칙과 흐름이 존재합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고 해서 그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죠. 자유로운 자기표현과 전체를 위해 지켜야 할 어느 정도의 선. 그 선을 넘나드는 맛이 어울림의 묘미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비빔밥은 이러한 어울림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종 나물과 고기, 계란, 밥, 참기름, 고추장 등 모든 재료들이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지만 그들이 섞여 또 다른 하나로 완성되는 것이죠.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 스시인 것 역시 인상적입니다. 얇게 저민 생선살은 밥과 섞이지 않고 정확히 경계지어 있습니다. 가츠동, 텐동 등 덮밥 종류도 그렇구요. 물론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겠지만 일본인들이 무엇이든 명확히 나뉘어있는 것을 선호한다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전체와 개인의 역할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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