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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Oct 29. 2021

한중일(韓中日) 중 가장 집단주의적인 나라는?

그리고 가장 개인주의적인 나라는?

심리학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을 모두 집단주의 문화로 묶어 이해합니다. 서양 개인주의 문화에 대비되는 동양 집단주의 문화로 말이죠. 그렇다면 한중일 세 나라 중 가장 집단주의적인 나라는 어디일까요? 몇년 전 대학원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은 '중국'일 거라고 응답했습니다. 이유는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고 공산주의는 집단을 강조하기 때문에(당, 집단농장, 개인적 가치를 배제하는 분위기 등) 집단주의적 속성이 가장 강할 거랍니다. 한국은 중간쯤 되고 일본은 가장 덜 집단주의적일 거라는군요.


일본이 가장 덜 집단주의적인 이유는 일본이 한중일 세 나라 중 가장 선진국이고 서구화가 되었기 때문에 개인적 가치를 가장 강조할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이 가장 개인주의적이고 한국은 또 중간, 중국이 가장 덜 개인주의적인 나라일 거라는 것이 대학원생들의 추정이었습니다.


얼핏 맞는 말도 같은 이 '추정'은 결론적으로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질문부터가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잘못된 질문을 던졌습니다.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라는 개념이 갖는 허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죠.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라는 개념은 동서양 비교를 위해 쓰이고 있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제 질문은 집단주의 문화권 내의 나라들을 비교하는 것이었죠. 바로 이 지점이 문제입니다. 물론 집단주의 척도의 점수를 비교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 점수가 세 나라의 집단주의 정도를 제대로 반영할 지는 미지수입니다.


실제로 한국, 중국, 일본의 개인주의, 집단주의 점수를 비교했을 때 그 결과는 뒤죽박죽입니다. 심지어 어떤 연구에서는 한국의 개인주의 점수가 미국보다도 높게 나옵니다. 이런 결과들로 어느 나라가 가장 집단주의적인지, 가장 개인주의적인지 '검증'할 수 있을까요?


문화적 현상을 봐도 답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도쿄의 신주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패션은 놀랄만큼 개성넘치고 자유분방합니다. 과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일본 대학생들의 집단체조 장면을 보면 또 저렇게 집단주의적일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과연 군국주의의 후예들이구나 싶은 생각도

일본 한 대학의 집단체조

집단체조, 매스게임 같은 건 역시 공산권 국가들의 트레이드 마크죠. 중국이나 북한(?)의 매스게임을 보면 과연 저 나라가 집단주의 나라라는 느낌이 팍팍 옵니다. 그러나 중국의 거리나 해외 여행지에서의 중국사람들의 행동들을 보면 또 그렇게 개인주의적일 수가 없습니다. 

매스게임 원조 맛집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들은 한국이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집단주의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숨쉴 틈 따위는 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세계에 출렁이고 있는 한류는 분명 한국인들의 자유로운 표현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자, 과연 어느 나라가 가장 개인주의적이고 어느 나라가 가장 집단주의적입니까? 저는 이제 이런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질문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물론 질문은 제가 했었지만요; 제 말씀은 더이상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라는 기준으로 세상의 모든 문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변인(variable)으로서 개인주의 vs 집단주의의 문화구분이 갖는 가장 큰 단점은 이것이 너무나 이분법적이라는 점입니다. 어느 나라든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있고 또 집단주의적인 면이 있을 수 있죠. 그것을 하나의 차원으로 보고 개인주의의 정도나 집단주의의 정도로만 이해하려는 것은 사실 학자로서 연구자로서 너무나 게을러터진 접근입니다.

이분법적 사고

또 하나의 단점은 이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라는 개념이 원래의 의미에서 너무나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처음 제안한 홉스테드는 직장이라는 맥락에서 '개인적 선택의 폭'을 개인주의, '기술의 향상이나 숙련을 위한 기회의 제공'을 집단주의라고 정의했고,


이 개념을 심리학으로 확장한 트리안디스는 개인주의를 '자신과 직계 가족'을 중심에 놓는 문화로, 집단주의를 '자신이 속한 친족집단(대가족)'을 중심에 놓는 문화로 상정했습니다. 여기서 행위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게 두느냐(개인주의)와 자기가 속한 집단(가족)에 두드냐(집단주의)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이 나온 것이죠.(참고: 개인주의 vs 집단주의의 유래와 의미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11)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이 위에 온갖가지 잡스러운 의미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것도 제국주의 시절의 서양 우월주의가 동양에 대해 가졌던 가장 저급한 의미들까지 말입니다.

미개한 동양이 숭배해야 할 서양

우리는 마치, 개인주의는 개인의 가치와 성취, 표현을 숭앙하여 개인은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즐겁게 시도하고 창의적으로 자신의 일에서 스스로를 느끼고 매사에 행복이 넘치는 문화로, 집단주의는 일체의 개인적 가치와 개인의 표현을 억누르고 억압하며 집단이라는 틀 안에서 스스로를 옥죄고 전체의 목표를 위해 개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문화인 것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 수업의 학생들이 일본을 가장 개인주의적인 나라로 보고 중국을 가장 집단주의적인 나라로, 한국을 '중간쯤'인 나라로 생각한 데는 개인주의 vs 집단주의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과 편견들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이분법적 개념의 틀에 갇혀 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놓치는 우를 범한 것이죠.


통계쪽에서 쓰는 말로, '이분변수는 많은 데이터를 잃게 만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O아니면 X, 참 아니면 거짓, 좋은 거 아니면 나쁜 거로 보게 되면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현상들을 놓치게 되는 셈입니다. 


방법론적으로 이분변수가 쓰이는 경우는 집단 비교입니다. 심리학이 워낙에 과학적 접근을 강조하다보니 실험법이 방법론의 대세가 되었고, 개인주의 vs 집단주의의 문화구분도 마치 '실험집단 vs 통제집단'처럼 적용되어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동서양 비교 같은 주제가 아니면 개인주의 vs 집단주의는 거의 무용한 개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위 질문을 던졌던 그 수업을 매우 뜻깊게 기억합니다. 학생들은 열의에 넘쳤고 많은 대화와 토론을 나눴습니다. 문제는 그토록 재치있고 지적이며 의욕 넘치는 학생들을 이분법적 틀에 갇히게 만든 학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자들이 진정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은 어느 나라가 집단주의고 어느 나라가 개인주의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집단주의 문화권인 한중일의 문화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나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주의적 행동들이 나타나는 전제조건들을 찾는 것이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덧, 저는 한중일이 집단주의 문화가 아니라던가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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