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 스승들이 가르치려고 했던 것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분야 중 하나가 ‘스승’에 대한 생각입니다. 먼저 가볍게 운을 띄우자면 일본의 스승은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지만 한국의 스승은 제자들이 스승을 넘어서 스스로의 것을 찾는 것을 권장한다는 것인데요.
일본의 스승과 제자 관계는 ‘이에모토(家元)’ 제도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에모토는 일본의 전통적 전승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예술이나 기예 등을 가르치고 이어받아 운영하는 다양한 규칙이 포함된 일본의 전통적 제도로서 예술과 기예 분야 외에도 종교, 사업, 학교, 공장, 사무실 등 일본 사회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매우 일본적인 문화입니다.
인류학자 프랜시스 슈가 정리하고 있는 이에모토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이에모토(최고 스승)의 절대적 권위입니다. 이에모토는 조직의 비법을 보호하고 조직의 실력 수준을 유지, 관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제자들의 세력을 조정하고 비위를 행한 이들을 파문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에모토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을 요구받는데, 특히 제자에 의한 예술, 기예 내용의 해석이나 수정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교습의 핵심은 하라게이(腹藝)라고 하는, 스승이 구체적인 지도를 하는 방식이 아닌 제자들이 스승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교습 내용은 엄격한 비밀에 부쳐지고 구두로 전달됨으로서 스승의 지위는 우위성과 신비성을 고수하게 됩니다.
제자는 스승에 대한 헌신적 봉사의 의무를 지니며 스승의 말을 거역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스승을 바꾸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프랜시스 슈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로 이에모토 제도의 스승 제자 관계를 요약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습니다. 한국인들도 스승님을 꽤나 존경하던 사람들인데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임금과 스승, 아버지는 동격이었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죠. 그러나 조금 깊게 들여다보면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한국에는 왕실이나 관(官)에 소속된 공방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일본의 이에모토처럼 제도화된 전승체계가 없습니다. 뜻이 있는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구하면 웬만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스승은 제자를 거두어 가르치는 시스템(?)이지요.
때문에 전승체계에 대한 문서화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는 꽤 옛날부터 발견됩니다. 바로 가야의 악성(樂聖) 우륵과 그 제자들 이야기입니다.
우륵은 가야사람으로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의 12지역을 상징하는 12곡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야가 어려워지자 우륵은 신라로 망명하는데요(522년).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진흥왕은 우륵의 음악에 감명을 받고 계고, 법지, 만덕이라는 3명의 제자를 우륵에게 보내 음악을 배우도록 합니다.
어느 정도 음악을 익힌 제자들은 우륵의 음악을 번잡하고 음란하다며 12곡을 5곡으로 줄여버리는데요. 처음에 우륵은 화를 냈지만 제자들의 곡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즐거우나 절제가 있고 슬프지만 비통하지 않으니 바르다고 할 만하다”며 탄식합니다. 자신을 뛰어넘은 제자들을 인정한 것이죠.
이 사례는 힘없는 나라에서 온 망명 음악가였던 우륵을 무시한 제자들의 월권이었을까요? 시간이 좀 뜨긴 하지만 가야금 명인 심상건(1889~1965)의 일화는 한국 스승의 제자를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어떤 학생이 심상건에게 산조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배운 것을 밤새 연습해 다음날 그대로 연주하면 그때마다 심상건은 산조는 그렇게 타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 ‘선생님이 어제 분명히 이렇게 가르치셨다’고 항변했지만 심상건은 한사코 자신은 그렇게 가르친 일이 없다고 뻗대었다는데요.
이런 스승의 태도에 어이가 없던 학생은 그 다음날 녹음기를 가져다 선생의 연주를 녹음했습니다. 다음날도 스승이 가야금 연주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며 또 핀잔을 주자 학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날 녹음한 것을 틀면서 자신은 선생님의 어제 연주를 똑같이 재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심상건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건 어제 소리지 오늘 소리가 아니야”.
스승이 말하고자 한 것은 배운 것을 바탕으로 그날그날 생생한 자신만의 연주를 해야한다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요?
음악에 한정된 사례들이긴 합니다만 한국의 이러한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는 한국 문화의 어떠한 점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점인데요. 주체성 자기가 강하고 자기가치감이 높은 한국인들은 남이 이래라저래라 나를 통제하려 드는 것을 못 견뎌하는 것 같습니다. (참조: 한국인의 자기가치감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92)
자유로운 표현은 한국음악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힙니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는 천년 전의 연주법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반면, 한국은 같은 곡이지만 시대에 따라서 그 연주법의 변화가 눈에 띈다고 하죠. 국악학자 이혜구 선생은 이러한 속성이 한국인의 심성과도 맞닿아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유분방하고 속되게 표현해서 제멋대로 한다는 것, 자기를 숨기지 않고 기교없이 자기를 그대로 내놓는 것이 한국음악의 특색이 아닐까 그렇게 봅니다. 한국인은 선생이 가르친 대로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똑같은 것을 둘로 만들자고 해도 모양을 똑같이 만들지 않는 것이 한국사람의 기질인 듯이 보입니다...
어쩐지 개성이 강하고 자기 멋대로 해야 신명이 풀리지 남이 하라는 대로 하면 잘 되지 않는 그런 것이 한국인의 심성인 것 같습니다. 제자도 스승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기 싫어할 뿐더러 제자가 스승의 음악을 그대로 연주해도 오히려 스승에게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스승도 “이제 배울 만큼 배웠으니 내려가서 네 소리를 찾아라”는 식이죠.
스승이 한 제자에게 일정한 가락을 일정하게 가르치는 법도 없고 제자마다 같은 커리큘럼의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자의 역량에 맞게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도 이에모토와는 다릅니다. 전통음악의 교수법은 결국, 제자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제자가 스스로 자신의 소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독립된 음악가가 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라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간간히 발견됩니다. 한국 바둑의 전성기를 이끈 이창호 9단의 스승은 조훈현 9단인데요. 이창호 9단이 처음으로 스승을 이긴 날 “이제야 스승님의 은혜를 갚았다”고 말했다고 하죠. 제자는 궁극적으로 스승을 넘어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명인으로 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본적인 전승과 한국적인 전승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엄격한 전승체계의 결과로 일본은 세계에서 전통이 가장 잘 지켜져 오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일본을 방문하는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은 변치 않는 일본의 예스러움에 탄복하곤 하죠. 일이년이 멀다하고 스카이라인이 바뀌는 한국의 풍경과는 분명 다른 일본만의 장점입니다.
반면, 한국의 전승은 소위 콜라보와 융합에 적합한 방식입니다. 어느 정도 기본이 됐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자기 소리를 내기 바쁘니까요. 남과 조금이라도 구별되려면 남들이 이제껏 하지 않았던 시도들을 하게 됩니다. 세계인이 공감하는 한류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또 확산되어가는 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국의 장점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