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선생 Dec 12. 2021

‘찢었다’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신명 연구자 한선생입니다~

요즘 예능에서 유행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찢었다’라는 말인데요. 보통 ‘무대를 찢었다’처럼 주로 가수나 댄서의 퍼포먼스에 대해 감탄하는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많이들 들어 보셨고 일상에서도 가끔 쓰시는 분들 계실 텐데요. 대체 뭘 찢었다는 뜻일까요?


‘찢었다’가 수식어로 나왔다는 얘기는 일단 그 퍼포먼스는 ‘대단했다’, ‘굉장했다’는 의미입니다. ‘보통이 아니다’, ‘평범하지 않다’라는 뜻도 포함되죠. 하지만 ‘찢었다’의 어감에는 뭔가 더한 것이 있습니다. 


천이나 종이를 찢으면 ‘쫙 소리와 함께 그 뒤에 있는 것들이 단번에 드러나게 되는데 대략 그런 느낌에 가깝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뭔가를 찢는 것처럼 강렬하고 충격적인 임팩트와 함께 일상의 분위기, 퍼포먼스 이전까지의 분위기가 한순간에 다 바뀔 정도로 그것이 대단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어떤 현상이 유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유행어도 마찬가지죠. 이 ‘찢었다’는 표현이 한국에서, 특히 예술적 퍼포먼스를 형용하는 말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신명 연구자입니다. 학계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아 가면서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서이자 동기로 이해되는 신명의 심리학적 의미와 과정을 연구해 왔는데요. 신명의 경험 과정에서 ‘찢었다’와 관련 있어 보이는 지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제가 ‘파격’이라고 이름 붙인 신명의 측면입니다.


신명은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좋고 가장 이상적이라고 인식해 왔던 상태인데요. 신난다, 신명 난다라는 상태는 일상적인 즐거움과 기쁨보다 한참 더 위에 있는 기분을 뜻합니다. 우리가 싱그러운 아침 햇살 속에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한 손에 방금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아이, 신난다”라고 하지는 않잖습니까?

아이 신나!

신(명)이 날 때는 일단 생리적 반응부터가 훨씬 격해집니다. 가슴이 터질 듯 뛰고 숨이 가쁘며 자기도 모르게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소리를 지르는 등 격렬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격렬한 반응이 동반되죠. 마치 초자연적인 존재, 신(神)이 내 몸에 깃든 것 같은 상태. 사실 신명의 어원이 이겁니다.1


그러한 격한 기쁨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지만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요. 제가 찾은 신명의 조건 중에 ‘파격’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파격이란 격식이 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선 한국인들은 일상을 지배하는 어떤 규칙이 깨어질 때 격렬한 기쁨을 느낀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찢었다’라는 감탄사가 의미하는 바가 여기 있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퍼포먼스가 이전까지의 분위기를 ‘찢고’ 내게 새로운 감동과 쾌감을 줄 때 사람들은 ‘찢었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죠. 


신명이란 명절의 전통놀이 한마당 같은 데서나 있는 줄로 알 청년들이 무의식적으로 ‘찢었다’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에게 신명의 DNA가 얼마나 깊게 또 널리 자리 잡고 있는지 나타내 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찢었다’라는 표현은 보통의, 일반적인, 일상적인 것들로는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쾌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파격의 즐거움을 알기에 한국인들은 더 새로운, 더 멋진, 더 강렬한 표현을 찾으려 했고 그것이 현재의 한류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요. 저는 한류의 본질이 이 표현성에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잠깐. 중간에 뭐가 하나 빠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전에 없던, 더 강렬한 것이 다 신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죠. 우리는 새롭기만 한, 전에 없기만 한, 강렬하기만 한 수많은 시도들을 목격해 왔습니다. 그러한 시도들로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죠. 비웃음을 사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따라서 신명을 위한 파격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공감’입니다. ‘찢었다’는 표현 역시 새롭고, 강렬한 퍼포먼스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되는 표현일 것입니다. 


신명의 또 하나의 조건인 공감은 파격을 가능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나의 퍼포먼스, 나의 행위가 주위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안정감을 주죠. 내가 또 다른 뭔가를 해도 그들이 다 이해해 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바로 그 느낌이 들 때 자유로운 표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나를 표현하기 위한 몸짓 말이죠. 그 몸짓에 다른 이들이 다시 한번 공감해 줄 때 신명의 쾌감은 극대화됩니다. 


그 전까지의 쾌감,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쾌감이 흥(興)이라면 나의 흥을 인정받고 거기서 내 안의 잠재력까지 마음껏 펼쳐 놓은 쾌감이 신명입니다. ‘나의 무엇인가를 마음껏 남김 없이 펼쳐 놓는다는 것’이야말로 신명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데요.

한국인들이 흥이 많다는 이야기는 자기 표현의 욕구가 강하다는 뜻일 겁니다. 그리고 자기 표현의 욕구는 멍석이 깔릴 때, 즉 자신의 표현이 다른 사람들의 공감과 인정을 받을 때 그 진정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죠. 퍼포머(?)의 흥을 이해하고 교감해 줄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여기가 신명의 집단화가 이루어지는 지점인데요. 


신명은 퍼포머(행위자)의 신명처럼 개인적으로 경험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퍼포머의 행위를 감상하고 참여하는 이들에게 이어지는 집단적 신명도 있습니다. 퍼포머의 입장에서 ‘찢는다’는 것은 내 표현의 한계, 나를 제한해 왔던 한계를 찢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의미, 감상자 혹은 참여자들의 ‘찢는다’는 지금까지의 일상적 감상과 역할에서 벗어나 퍼포머가 창조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퍼포먼스가 짧게 끝났다면 단순히 퍼포머의 짧은 신명과 감상자들의 일시적인 감상으로 끝나겠지만(보통 예능에서는 이 정도만 나오죠) 좀 더 전통적 의미의 신명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찢어진’ 일상과 신세계의 경계, 퍼포머와 나의 경계를 뚫고 들어가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이들과 하나가 되어 나의 행위와 나를 구별할 수 없고 행위자와 참여자, 나와 네가 구분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나를 표현한다는 즐거움, 남들이 나를 알아준다는 뿌듯함, 저 사람을 이해한다는 즐거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이라는 행복감. 지금 여기에는 이 사람들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가수들의 공연에서 관객들의 떼창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의 느낌일 것입니다. 노래 한 곡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앵콜을 연호하고 다시 노래가 시작되면 가수와 관객이 한 덩어리가 되어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너 나 없이 일어서서 뛰어오르는 시간들. 경험하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아시겠죠.


그렇게 후회 없이 모든 것을 풀어 내면 그간의 스트레스나 한으로 표상되는 부정적인 감정들마저 다 쓸려나간 상태가 되는데 이 또한 신명의 한 국면입니다. 후련함과 시원한 해방감이 찾아오고 자신감과 뿌듯한 행복감이 빈 곳을 채우는 느낌이 들죠. 그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경험입니다. 


한국인들은 문화적으로 이러한 상태를 경험해 왔고 또 이러한 상태가 되고자 하는 동기를 지닌 것 같습니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 즐거움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그것을 극복하여 마침내 신명을 맛보고 말겠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죠. 


이것이 신명이 예술의 영역을 넘어 한국 문화와 한국인들의 삶에 미친 영향입니다. 한국인들이 자기 앞에 쳐진 경계(선)를 자꾸 넘(찢)으려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인들이 남과 대립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