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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pr 13. 2022

한국인은 언제부터 빨랐을까?

왜 빨라졌고 언제까지 빠를 수 있을까

한국은 빨리빨리의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빨리빨리는 한때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어였을 만큼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의 성정을 대변한다 할 수 있죠. 가장 먼저 닳아빠지는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이나 자판기에 손을 넣고 커피를 기다리는 한국인의 모습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화 <부산행>, 드라마 <킹덤> 등에 등장하여 한류의 한 축을 이끈 K-좀비의 특징 역시 미친 듯한 스피드입니다.

<킹덤>의 좀비들


과연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빨랐을까요? 기원을 거슬러보면 의외로 빨리빨리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제국주의와 진화론적 사고가 섞여있긴 하지만 구한말 외국인들의 기록에는 한국인들이 상당히 느긋하고 심지어 ‘게으르다’는 기술들이 남아있으며, 한국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은근과 끈기’ 또는 천천히 끓고 오래 가는 ‘뚝배기’라는 말로 수식하던 때도 있었죠. 

기억날 분들 계시겠지만, 이미 빨리빨리 문화가 만연하던 1980년대, 90년대 초중반까지도 이른바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존재하기도 했었습니다.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코리안 타임이란 약속 시간을 30분에서 1시간까지 넘나드는 시간 계산법입니다. 요즘의 한국인들을 생각해보면 예전에 그랬다는 사실조차 믿어지지 않지만.


코리안 타임은 농경문화적인 시간 계산법입니다. 농사는 분명 부지런해야 하지만 분초를 다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옛 시간법은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누고 한 시간은 삼등분을 합니다(초/정/말). 가장 짧은 단위가 40분 정도인 셈이죠. 대충 그 안에 있으면 시간을 지킨 게 되는 겁니다.


그러고보면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이 산업화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듯한데요. 한국인들을 게으르다고 묘사했던 19세기의 방문객들은 이미 분 단위의 삶에 익숙한 유럽 산업사회 출신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한국인들은 늦었던 만큼 서두를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미 누군가 선점하고 있는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어야 했고 일본의 오랜 수탈과 전쟁으로 자원도 인재도 변변히 없었던 시절에 한국인들의 유일한 경쟁력은 부지런함뿐이었으니까요. 그들이 3달 걸린다면 우리는 한 달, 그들이 저녁 5시까지 일한다면 우리는 밤 10시까지 일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그 방법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바뀌어갔습니다. 수천 년을 이어오던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며, 농사짓던 땅을 갈아엎어 공장을 지으며, 꼬불꼬불 산길을 뚫어 신작로를 내며 한국인들은 희망을 보았고 삶의 재미를 느꼈죠. 뭐든 간에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었고 바꾸면 곧 성과로 이어지는 시대였습니다. 그렇게 빨리빨리는 한국의 문화가 된 것입니다.

빨리빨리의 이점은 분명합니다. 빨리빨리 하는 사람들은 변화와 대처에 능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손에 쥘 수 있었던 빛나는 성취들과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한강 공원으로 배달되는 짜장면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빨리 엔데믹으로 전환되는 감염병 대처까지도, 빨리빨리 문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서도 재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물론 세상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고 이런 상황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능력은 중요죠. 빨리빨리는 앞으로도 한국인들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임기응변만으로 살아갈 수만은 없습니다.

지속가능성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장기적인 시각도 필요합니다. 변화에 대응하는 일 만큼이나 지금의 변화가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도 중요한 것이죠. 그 언제보다도 변화의 속도가 빠른 지금 ‘지속 가능성’이 화두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적인 듯도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빨리빨리는 어느새 한국인들의 욕구로 자리잡았습니다. 한국인들은 뭔가가 진행되는 것이 느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구마 백개'쯤 먹고 있는 답답함을 느끼며 '사이다'를 찾습니다. 일거에 상황을 하루아침에 '싹 다 갈아엎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한강의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지던 시대를 살아왔고 짓고 있던 아파트가 2022년이 된 지금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특히 불확실성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빨리빨리'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이다만 마셔서는 살 수 없습니다. 사이다는 목구멍 수준에서는 시원함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심한 목마름, 체중과 혈당의 증가, 영양 불균형과 치아 건강의 악화를 가져옵니다. 사이다를 먹지 말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이 또 건강식만 먹고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요는 균형을 찾자는 겁니다. 사이다가 가장 맛있을 때는 삶은 계란이나 고구마, 돈가스처럼 퍽퍽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과 같이 먹을 때란 말씀이죠. 중요한 것은 영양과 '건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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