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선택인 시대의 사랑법
결혼율과 출생율이 역대급으로 떨어졌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결혼적령기 이성교제 비율도 29.4%로 역대 최소 수준이다. 결혼적령기를 무려 19세에서 49세로 잡았는데도 그렇다. 사람들은 우선 경제적 부담감을 꼽는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버린 현실에서 살 집을 구하기도 난망하거니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대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육비 또한 만만치 않으니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느냐는 것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데이트도 하고 밥도 먹고 놀러도 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한창 연애할 나이인 2,30대는 취업 준비에 몰두하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경력을 쌓고 또 기본적인 독립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다. 연애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 않는 이유를 경제적인 쪽에서만 찾아서는 부족하다. 옛날 사람들은 전쟁통에서도 사랑을 속삭였고 단칸방에서도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연애와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돈이 많고 부족한 것이 없어도 혼자 살기를 선택한 이들이 많다.
또한 ‘요즘 젊은이들은 이기적이다’라는 결론도 매우 잘못되었다. 시대가 달라졌고 사회가 변화했다. 비혼과 저출생, 무연애는 수많은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회적 현상의 원인을 특정 집단의 이기심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게으르기 짝이 없는 사고방식이다.
이 모든 현상들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리 오랜 과거도 아니지만 옛날 사람들은 나이 들면 으레 결혼하고 아이낳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학교 나올 거 다 나오고 직장을 다니면 슬슬 결혼을 생각했고 맞선이다 소개팅이다 하면서 적당한 사람 만나 늦기 전에 결혼하는 것이 인생의 정해진 경로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일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아진 이유는 삶의 이유가 개인의 선택으로 옮겨왔다는 데 있다. 과거 사람들의 삶은 자연환경, 왕과 귀족들,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신념과 제도에 의해 결정되었다. 더욱이 전근대 시대에는 인구가 곧 경제력이요 군사력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는 구성원들의 결혼을 권장했고 심지어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을 죄악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개인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시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종교와 사상, 주의와 주의 등의 온갖 다툼과 우여곡절 끝에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개인주의라고 한다. 즉, 개인주의는 개인 행동의 이유가 개인에게서 비롯되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대에서 사랑과 결혼도 개인의 선택이 되면서 사람들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선택은 결국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한번 결정하면 수십년 혹은 남은 인생 전부를 변화시킬 중요한 선택을 하기 전에 내가 가진 자산과 능력, 잠재가치와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야 하는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결혼을 선택함으로써 경력단절과 같은 좁아지는 인생의 가능성이라든가 미디어에서 보여지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결혼 가족(시댁/처가 등)과의 갈등, 쉽지 않은 배우자와의 관계와 길고 험난한 육아 등을 고려하면 결혼과 출산은 결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비혼과 저출생, 무연애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사랑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예전(?) 같으면 일단 사귀어 볼 사람도 서로 고려해야 하는 점들이 많아지다보니 쉽게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한다.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가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애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또한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의 기회비용이 될 수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섣불리 사랑을 시작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이 당연한 일이 아니다 보니 심리적 어려움도 커졌다. 관계의 기술이 성숙할 기회도 얻기 힘들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관계는 어떻게 진전시켜야 할지, 갈등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사랑이 식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별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반면 연애 프로그램은 역대급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솔로>, <솔로지옥>, <환승연애>, <남의 연애>, 심지어 돌아온 싱글들을 대상으로 한 <우리 이혼했어요>나 <돌싱글즈>도 여러 시즌이 나올 만큼 인기다. 육아프로도 마찬가지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유명인들의 자녀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여 비혼과 저출생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새로운 아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화제가 되고 있으며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에게 푹 빠진 랜선 이모와 삼촌들 역시 많다.
비혼 저출생, 무연애 시대에 이러한 연애 및 육아프로그램의 인기는 연애하고 싶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다는 욕구를 반영한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했지만 인간에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보듬고 싶은 욕구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는 옛날 사람들에 비해 대단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간은 과거에 비해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수만 년 내외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이 인간은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생 인류는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 나타난 후로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해 온 결과다.
인간을 다른 종들에 비해 훨씬 경쟁력 있게 만들어 준 뇌는 수렵, 채집시대의 산물이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뇌기능이 떨어지고 땀을 흘리고 염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뉴런을 작동시킬 전기 신호를 발생시킬 수 없다. 뇌의 구성 성분과 기능은 무리 생활과 사냥, 그리고 단백질과 지방에 의해 결정되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동물이다. 성행동만 해도, 특정 나이에 이르면 남자는 정자를 만들어 내고 여자는 난자를 배출한다. 남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의 작용으로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진 근육을 만들고 무모한 행동마저 서슴지 않고,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행복을 느끼고 애착을 갖게 한다. 이는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 판단과는 별개의 일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진화해 온 것이다.
이러한 뇌와 호르몬의 작용은 비혼과 저출생, 무연애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현대인들이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에게 설렘과 짜릿함,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 주었던 작용들이 멈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사랑을 포기한 만큼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그만한 행복을 느껴야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오롯이 내가 찾은 삶의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면서 점점 길어지고 있는 평균 수명만큼의 시간을 살아낼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얻은 행복은 생각보다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
예로부터 시대와 문화, 국가를 관통하는 예술의 주제가 사랑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랑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가슴을 뛰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살게 하고 또한 죽게 하는 것이다. 사랑을 포기한 이들이 어디에서 영감과 설렘과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인가.
지금은 삶의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할 때다. 현대 사회 들어 인간의 주체성이 조명되면서 사람들은 인간의 주체성을 제한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기 원했다. 인간은 그렇게 종교로부터 벗어났고 왕과 귀족들에게서 독립했으며 그동안 삶을 의존했던 자연을 지배하려 했다. 자신들의 삶을 구속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 사람들은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이제 삶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되어 모든 것이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두려워졌고 심지어 무한한 선택의 자유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다. 에리히 프롬이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의미다.
어떤 이들은 부와 명예를, 어떤 이들은 약물을, 어떤 이들은 죽음을 선택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기왕에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어떠한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사랑은 나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내야 할 길고 긴 인생에서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인간에게 목적은 중요하다. 방향도 없이 떠도는 것보다는 기약은 없어도 목표를 갖는 편이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삶에서 목적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뇌의 작용 때문이다. 뇌과학자 사이먼 사이넥은 인간의 뇌가 부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스키 선수들이 산에서 수많은 장애물들을 피하면서 내려올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장애물에 ‘부딪치지 말아야 한다’는 부정적 명령이 아니라 ‘길을 따라 내려간다’는 긍정적 목적을 따르기 때문이다. 부정에 익숙지 않은 뇌는 장애물에 부딪치지 말아야 한다는데 집중하는 순간 장애물들을 더 신경쓰게 되고 결국 제대로 된 판단과 움직임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인생에는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수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실패와 좌절, 예기치 않은 불행... 연애로 예를 들자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과 다툼, 이별, 이혼, 식어버린 사랑, 힘들고 지친 생활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부정적 결과들을 피하는 것으로는 결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불행과 부정적 결과들만을 생각하며 그것들을 막으려 애를 쓴들 인간이 모든 불행을 막을 수는 없다. 예상되는 부정적인 사건들을 모두 막아냈다고 하더라도 그 삶이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행복은 예기치 않은 시점에서 예기치 않은 일로도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누려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삶에 목적을 주고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다. 초가삼간(?)에서라도 둘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말은 이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와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서, 사랑하는 이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사람들은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현실을 개선하기도 한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사랑만으로 결혼한 부부의 현실 후기’라는 글이 화제였다. 대학 때 만나서 바로 동거에 들어간 이 부부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지원조차 없이 월급 200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했던 장애물들을 차례차례 극복하며 손수 마련한 내 집에서 사랑하는 아이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임대주택이라 몇 년 뒤에는 새 집을 마련해야 하고 차 할부금은 매달 나가고 뱃속의 둘째를 키울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설렘을 만나고 행복을 경험해 나갈 것이다. 사랑이 삶의 목적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랑을 포기한, 또는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들이 다시 사랑을 선택지에 올리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살아갈 의미도 찾고 행복도 찾으시기를 바란다. 사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가치있는 것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