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시대
결혼과 출산이 개인의 선택이 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선택이 최선일까? 이 선택이 나에게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까? 더 나은 선택이 있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선택을 하기에 적당한 시점일까요?
1. 기후위기와 환경재난
날씨가 갈수록 심상치 않습니다. 올 봄 동남아시아의 기온이 50도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남미 브라질에서는 홍수로 6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프로축구 리그도 중단될 지경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며칠 전 강원도에 대설주의보가 내렸습니다. 기후 재난은 이미 현재 진행형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늘어나는 초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 오염물질, 방사능.. 먹거리 걱정은 물론 마음놓고 숨쉴 걱정을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2. 불안해져가는 세계정세
1990년대 독일의 통일과 구소련의 해체 이후, 세계에는 꽤 오랫동안 평화로운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국지적 분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지만, 적어도 근현대사에서 이 정도로 눈에 띄는 위기가 없었던 시기도 없을 겁니다.
지난 30년 간 지속된 평화 위에 다양한 문화들이 꽃피었고 IT산업의 발달과 세계화로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시기가 계속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등 분쟁의 씨앗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이는 이미 상호의존도가 커질 대로 커진 세계 경제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3. AI의 발전과 산업구조의 개편
AI의 발전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미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을 AI와 기계가 대체 중입니다. 빠른 속도로 산업구조가 개편되면서 인간의 불안 역시 점점 커지고 있죠.
AI는 끝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예술과 창작까지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시작된 이후 우리에게 익숙했던 모든 것, 환경, 국제정세, 산업, 이 사라져가고 모습을 바꿔가는 중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청년들이 발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을까요?
과도한 인구 밀집, 수도권 집중, 지나친 경쟁,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 등 이미 가진 문제만으로도 결혼과 출산을 고려하기 어려워진 한국의 현실에 더해, 이러한 전세계적인 변화는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하는 조건입니다.
똑같은 현실인데 왜 한국의 출생율만 유독 가파르게 떨어지느냐는 의문이 있을 법 합니다. 한국인들의 대학진학율과 평균 학력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한국인들은 현실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중입니다. 이 현실에서 무작정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이 합리적일 수는 없는 것이죠.
당분간 출생율은 계속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도 당연히 줄어들겠죠. 하지만 이것을 대한민국의 소멸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한국의 인구는 과거 '비정상적'인 출생율에 힘입은 것입니다. 6.0의 출산율은 분명 현대 사회의 그것이라 할 수 없죠. 삶의 조건이 변화해 가는 만큼 삶의 형태도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중'입니다.
한국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5000만 인구가 1000만명 이하로 떨어져도 나라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을 것이고 그 시점의 인구에 맞는 방식의 변화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지구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후재난'이라 부르는 사건들은 일어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 고통받겠지만 '지구'는 수십억년 후에도 아마 존재할 겁니다. 인류도 아마 멸종하지 않을 겁니다. 환경재난과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구가 줄어들 수는 있겠죠. 하지만 80억 인구가 수억 명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인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지구는 언젠가 수명을 다할 겁니다. 태양이 수명을 다하는 수십억년 후겠죠. 그때는 인류도 사라질 겁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다른 행성계로 이주하지 않는 한은 말이죠. 하지만 '어차피' 지구가 사라지고 인류가 멸종한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변화를 종말의 신호라 생각하고 현실을 살아갈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개인의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이 관점에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픈 내용이 있는데요.
'합리적'인 선택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삶은 합리적으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는 우리를 행복으로, 진정한 삶으로 이어줄 것들이 많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을 살아갑시다. 오늘을 '충실히' 살아갑시다.
어차피 사라질 지구를 걱정하며 남은 삶을 허비하기에는 당장의 오늘 하루가 너무나 소중하지 않습니까.